라면에 파를 넣는 이유
나이를 실감하는 순간들
아침에 입맛이 없다는 말은 언제쯤 공감할 수 있을까?
"밥 먹자 오빠!"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웠다. 아뿔싸, 그런데 밥이 없다. 식빵을 꺼내 굽고 딸기잼을 바르고 있는 남편을 보고 있자니 벌써부터 느끼하다.
'나는 밥을 먹어야 된다구'
빵이 영 내키지 않아 주방을 빙빙 돌다 아쉬운 대로 라면 하나를 꺼내 끓였다. 파 송송 계란 탁. 꼬들꼬들 적당히 익은 라면을 식탁 위에 냄비째 올려놓고 한 젓가락 먹다가 잘 익은 파김치 하나 얹어먹으면 더 맛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숟가락으로 국물도 떠서 한 입 먹었는데 송송 썰어 넣은 파가 국물에 섞여 입 안으로 들어왔다. 개운하게 퍼지는 파의 향과 씹을수록 느껴지는 달짝한 맛. 파가 이렇게 맛있는 거였어? 그때부터 내 젓가락은 파를 찾아 헤맸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듬뿍 넣을걸. 난생처음 라면에 넣은 파 맛에 푹 빠져있을 때쯤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까는 파김치를 찾더니 이제 파가 맛있다고? 이거 혹시 늙었다는 증건가?'
그럴 리가 없다. 나는 원래 한식을 좋아하고 채소를 사랑한다. 버섯이라면 종류를 안 가리고 좋아하고 열무와 양배추의 아삭함을 좋아하며 고기나 회에는 생마늘을 올려 먹는 걸 좋아한다. 그러니 내가 파를 좋아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내가 늙어서 파를 맛있어하는 게 아니라는 걸 이렇게나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도 찝찝한 기분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25살에 파의 맛을 알게 됐다면 그건 그냥 기분 좋은 발견이었을 텐데 35살에 알게 된 대파의 맛은 씁쓸함을 동반했다.
어렸을 때는 급하게 먹다가 체할까 봐 국에 파를 띄워놓은 줄 알았다. 파가 한 조각이라도 숟가락에 올라오면 숟가락을 비우고 다시 신중히 국물만 떠서 먹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는 국에 파가 있건 말건 신경 쓰지 않고 먹을 만큼 자랐고 이제는 파를 찾아 먹을 만큼 늙어버렸다. 그래. 그냥 인정하자. 서른다섯, 내가 파의 맛을 알게 된 나이다. 라면에 파가 데코레이션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것도 맞는 말이다. 주황색 국물에 넣은 초록색 파가 라면을 더 먹음직스럽게 보이게 하는 건 확실하니까. 하지만 라면에 파를 넣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라면에 넣은 파는 환상적으로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