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생일에 약밥을 했다.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재작년 여름, 100일도 안 된 둘째가 열이 났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덜덜 떨면서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에서는 피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이 작은 손등에 주삿바늘을 찔러 피를 뽑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나는 도저히 지켜볼 자신이 없어 남편한테 아이를 맡기고 검사실을 나와버렸다. 자지러지는 아기 울음소리가 귀에 선명히 박혔다. 분명 우리 아기 울음소리였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반복해서 중얼거리며 애써 눈물을 삼켰다. 하필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아빠였다. 얼마 전 엄마가 건강검진을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다고 했다.
"왜? 어디가 안 좋은데?"
"갑상선암이라는데 임파선까지 전이됐대."
결국 눈물이 터졌다.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냐고,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고 울부짖었다. 누구라도 원망하고 싶었고 누구한테든 따져 묻고 싶었다. 인생이 늘 순탄할 수는 없겠지만 힘든 일이 겹치니 마음이 무너졌다.
다행히 둘째는 금방 괜찮아졌다. 엄마도 암 중에서는 완치율이 높은 갑상선암이니 잘 이겨내리라 믿었다. 내 딸을 지켜줄 엄마가 되기 위해, 우리 엄마에게 든든한 딸이 되기 위해 내가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했다. 수술은 잘 끝났다. 수술 후 마취가 덜 깬 엄마의 모습을 볼 때나, 쇳소리 같은 목소리를 들을 때면 마음을 송곳으로 찔리는 것 같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수술만 하면 끝인 줄 알았는데 재발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방사성 요오드 치료도 해야 한다고 했다. 치료를 위해서는 2주 정도 저요오드식을 해야 했는데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바다에서 나는 건 먹을 수 있는 게 없었고 소금도 천일염은 안되고 정제염만 먹을 수 있었다. 그러니 시판 고추장, 된장, 간장 뭐 하나 먹을 수 있는 게 없었다. 먹는 즐거움을 빼앗긴 엄마는 힘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2주를 잘 참아내고 치료도 잘 받았다. 1년 뒤 같은 치료를 한 번 더 해야 하긴 했지만.
우리는 금방 일상으로 돌아왔고 1년은 참 빨리 지나갔다. 또다시 방사성 요오드 치료를 위해 저요오드식을 시작할 날이 다가왔다. 이번에도 2주 동안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못 먹을 테니 저요오드식을 시작하기 전에 먹고 싶은 걸 다 먹게 해주고 싶었다. 엄마한테 뭐가 먹고 싶냐고 물었지만, 엄마들이 늘 그렇듯 딱히 먹고 싶은 게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냥 그 기간 동안 못 먹는 음식 중에 몇 개를 골라 같이 먹었다. 며칠 뒤 엄마랑 통화하다가 엄마가 이런 말을 했다.
"저요오드식 하기 전에 김밥이 먹고 싶어서 어제 김밥 사 먹었어. 이제 약밥만 먹으면 먹고 싶은 거 다 먹는다." 나는 이런 순간에도 김밥이나 약밥 같은 게 먹고 싶은 엄마가 시시해 보였다. 맨날 "밥 더 먹을래?"를 입에 달고 살더니 밥 못 먹어 죽은 귀신이 들러붙은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엄마가 암 수술을 받은 지 1년도 더 지나서인지 나도 엄마한테 많이 소홀해졌다. 내 일상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방사성 요오드 치료도 끝나있었다. 약밥은 먹었는지 궁금했지만 이제 와서 너무 염치가 없는 것 같아 물어보지 않았다.
얼마 전, 엄마의 생일이 다가왔다. 코로나 때문에 외식도 못 하고 집에서 배달음식이나 시켜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케이크는 어떻게 할 거냐는 동생의 말에 순간 약밥이 떠올랐다. 가볍게 흘려들었던 '약밥 먹고 싶다'는 말이 내 마음속에 죄책감처럼 남아있었던 모양이었다. 한 번도 해본 적 없지만 케이크는 내가 만들어가겠노라 했다. 약밥으로 케이크를 만들 생각이었다. 유튜브며 블로그를 검색해서 약밥 레시피를 여러 개 찾아봤다.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레시피를 골라 메모까지 해가며 약밥을 만들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약밥 만드는 과정은 간단했다. 밥이 되는 동안 전기밥솥에서 새어 나오는 대추 향, 계피 향을 맡으며 설레기도 하고 걱정도 됐다. 다행히 밥은 간이 딱 맞았다. 완성된 약밥을 동그란 냄비에 눌러 담고 케이크 판에 뒤집어서 케이크 모양을 만들었다. 케이크 위에는 잣과 대추로 엄마 이름을 썼다. 그럴듯했다.
생각지도 못한 약밥 케이크를 본 엄마 얼굴이 환해졌다. 한 입 먹을 때마다 "정말 맛있다."는 말을 연발하는 엄마를 보니 귀엽기도 했다. 엄마가 조심스럽게 혹시 약밥 한 번 더 해줄 수 있는 지 물었다. 곧 있으면 외할아버지 생신인데 할아버지가 약밥을 진짜 좋아하신다고. 딸이 해준 약밥을 먹으면서 아빠를 떠올린 엄마의 마음이 어떤 건지 알 것 같았다. 우리 엄마도 나처럼 엄마이자 동시에 딸이구나 싶어 커다란 동질감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