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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만난 경찰의 센스

언어 장벽을 뛰어넘다

by 김채원

대학교 여름 방학 때 같은 과 동기 3명과 함께 일본 여행을 갔다. 해외여행은 처음이었다. 모든 처음이 다 그렇듯 설렘 반 걱정 반이었지만 같이 가는 동기들은 모두 해외여행 유경험자였으므로 그녀들만 믿기로 했다. 전주에서 인천공항까지는 인천공항에서 나리타공항까지만큼이나 오래 걸렸다. 한 친구가 자신 있게 수첩만한 일본어 회화책을 꺼냈다.


"난 일본어 공부도 했어. 잘 들어봐. 보쿠노 이누가 시니마시타."

"그게 무슨 뜻이야?"

"우리 집 개가 죽었습니다."

"그걸 일본에서 쓸 일이 있을까?"

험난한 여행이 될 것 같았다.


드디어 비행기에 탔다. 우리는 가난한 대학생이었으므로 저가 항공을 선택했다. 책도 읽고 이야기도 하고 있는데 승무원 한 분이 승객 한 명 한 명에게 말을 걸며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그 승무원은 우리 일행한테까지 왔고 내 친구에게 상냥한 미소로 말을 걸었다.

"한국 분이시죠?" 하고 물은 뒤 한국 사람이라는 게 확인되면 한국말로 말했다. "한국 분이시죠?"를 세 번 듣고 나니 드디어 내 차례가 됐다.

"Excuse me"

나는 당황해서 "저도 한국 사람..."이라며 말을 채 끝맺지도 못했고 지켜보던 친구들은 숨도 못 쉬고 웃었다. 이국적으로 생겼다는 말은 자주 들었지만 excuse me라고 할 정돈가.


도쿄에 있는 저렴한 숙소에 짐을 풀었다. 점심때라 밥부터 먹어야 했다. 3박 4일 동안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일단 처음에는 돈을 최대한 아껴 쓰기로 했다. 그래서 첫 끼니는 도시락 전문점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식당에는 미리 만들어둔 도시락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우리는 도시락을 손으로 하나하나 가리키며 주문했다.

"이거 데워주라고 할까?"

"그러자."

일본어라고는 우리 집 개가 죽었다는 말밖에 못 하는 우리는 영어로 음식을 데워주라고 했다. 젊은 남자 점원은 전혀 못 알아듣겠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봤다. 우리는 최대한 그가 알아들을 수 있게 요점만 말했다.

"heat up!"

못 알아 들었다.

"microwave!"

여전히 못 알아들었다. 우리는 생각나는 대로 막 던지기 시작했다.

"hot! hot! hot food!"

hot을 못 알아들을 정도면 포기해야 하나 싶던 찰나, 갑자기 주방 문을 열고 중년 여성이 얼굴을 내밀더니 정확한 발음으로 물었다.

"뜨거운 음식?"

우리는 환호성을 질렀다. 중년 여성과 남자 점원은 일본어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제야 우리 의도를 이해한 점원이 말했다.

"아~ 호또~"

덕분에 우리도 일본에서는 hot을 '호또'라고 발음한다는 걸 알게됐다. 세계 공용어인 영어도 발음이 다르니 무용지물이었다.


발음의 장벽을 뛰어넘고 의사소통에 성공한 일도 있었다. 다음 목적지로 가는 길을 몰라 헤매던 때였다. 도와줄 사람을 찾다가 경찰로 보이는 남자를 만났다. 우리는 제발 말이 통하길 바라며 영어로 길을 물었다. 다행히 그는 우리 말이 끝나자마자 검지 손가락으로 길을 가리키며 알려줬다.

"라이또! 레프또! 라이이이이이이~~~또!"

설명이 너무도 명쾌해서 우리는 박수를 치고 엄지를 들어보였다. 오른쪽으로 갔다가 왼쪽으로 갔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쭉 가면 된다는 걸 '라이이이이이이~~~또'로 표현한 그의 센스에 진심으로 감탄했다.


3박 4일은 짧았지만 즐거웠다. 우리는 다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번에도 승무원 한 분이 다가왔다. "한국 분이시죠?"를 세 번 듣고 또 내 차례가 됐다.

"니혼진 데스까?"

"아니요. 저도 한국 사람이요."

숨죽이며 지켜보던 친구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웃었고 나는 excuse me와 니혼진 데스까 중에 뭐가 더 나은걸까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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