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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에서 공개수업을 하면 생기는 일

긴장과 당황의 대환장파티

by 김채원

신규 때 일이다. 5학년 아이들에게 내일은 공개수업을 한다고 미리 말했다. 한 아이가 대뜸 물었다.


"공개수업 잘하면 뭐 해주실 거예요?"


너무 당연하게 묻는 걸 보니 공개수업에 협조하고 포상받은 경험이 있는 것 같았다. 순간 솔깃해서 뭐라도 걸고 아이들을 내 편으로 만들어볼까 하다가 너무 없어 보이는 것 같아서 있어 보이게 대답했다.


"잘 안 해도 돼. 그냥 하던 대로 하자."


아이 얼굴에 실망한 빛이 서리는 걸 보고 혹시라도 보복하겠다고 수업 때 깽판을 칠까 봐 걱정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더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아이들이 모두 입을 꾹 다문 것이다. 발문을 해도 대답도 없고 무슨 말을 해도 반응이 없었다. 제발 도와달라는 눈빛을 보냈지만 자신 없다는 눈빛만 돌아왔다. 누군가 지켜본다는 건 아이들에게도 부담스러운 일이었을까? 40분이 4시간 같았다.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뒤 다른 선생님께 하소연하다 뜻밖의 대답을 들었다.


"선생님이 긴장하면 애들도 같이 긴장해."


덜덜 떠는 내 모습이 아이들마저 얼어붙게 만든 거였다.


희한하게 공개수업 때는 별 게 다 말썽을 부린다. 두 시간 전에 잘 되는 걸 확인했던 파일이 열리지 않는다거나, 갑자기 스피커가 안 나온다거나. 지켜보는 눈이 많을 때 그런 일이 생기면 정말 진땀이 난다. 교실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온몸으로 공개수업을 거부하는 느낌이랄까. 평소와 가장 다른 건 역시나 아이들이다. 저학년은 특히 더 그렇다. 평소와 달라지는 유형도 여러 가지인데,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해 평소보다 바른 자세로 눈을 크게 뜨고 있는 아이들이 제일 고맙다. 낯선 환경에 적응을 못 하고 활동도 하기 싫다, 발표도 하기 싫다며 싫어병에 걸리는 아이들을 보면 애가 탄다. 그중에서도 끝판왕이 있었으니 그들은 공개수업을 '관심받을 절호의 찬스'로 여기는 아이들이다. 이런 아이들은 갑자기 소리를 지르거나 의자 위에 올라가거나 발표할 기회를 주면 엉뚱한 소리를 해서 나를 당황하게 한다.


한번은 2학년 아이들과 해충에 관한 수업을 했다. 수업 초반에 해충과 관련된 경험을 나누고 있었는데 한 아이가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발표했다.


"저는 바퀴벌레를 먹어본 적이 있어요."


다른 아이들이 끔찍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우웩 우웩" 소리를 냈다. 친구들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 친구는 한 마디 덧붙였다.


"바삭바삭하고 아주 맛있었어요."


아이는 관심 끌기에 성공하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고 수습은 내 몫이었다.


'바퀴벌레 섭취 경험 사건'은 1학년 아이들과 했던 '층간소음' 수업에 비하면 약과였다. 우리는 이웃집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대해 알아보고, 그 소리를 듣기 좋은 소리와 듣기 싫은 소리로 나누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이웃 간에 지켜야 할 예의에 대해 이야기만 하면 수업은 계획대로 끝나는 거였다. 평소에 발표를 거의 안 하는 아이가 손을 번쩍 들길래 기특해서 얼른 이름을 불러줬다.


"다른 집에서 듣기 싫은 소리가 나면 그 집에 가서 칼로 찔러서 다 죽여버릴 거예요."


아름답게 마무리할 일만 남은 수업에 아이가 갑자기 재를 왕창 뿌렸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그 아이와 길게 이야기하고 있을 수도 없었다.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고 서둘러 수업을 마쳤다.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같은 시간, 옆 반 선생님도 공개수업을 하셨다. 그 반에서는 한 아이가 수업 중 바지에 똥을 쌌단다. 평소라면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말했을 텐데 지켜보는 눈이 많아서 말을 못 했던 것 같다. 옆 반 선생님과 나는 서로를 뜨겁게 위로했다.



공개수업은 늘 긴장된다. 보는 눈이 많아서 긴장되기도 하지만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에 더 긴장된다. 실제로 공개수업 한번을 위해 우리는 며칠 동안 영혼을 갈아 넣는다. 수업 설계부터 자료 준비까지 꼼꼼히 하고, 사전협의회를 한두 번 거쳐 수업 내용을 보완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추가한다. 수업 준비가 거의 된 것 같으면 수업 시나리오를 작성해 연습해보고 아이들 반응도 예상해본다. 이 과정에서 또 수정할 부분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계획은 계획일 뿐. 실제 수업은 크고 작은 돌발상황에 당황해 진땀을 흘리다 아쉬움을 남긴 채로 끝나버린다. 그래도 좌절하지는 않으려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배울 점은 있고 나는 꾸준히 성장할 테니까. 언젠가는 공개수업을 마치고 나서 '이번 수업도 완벽했어.'라며 자아도취에 빠질 날이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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