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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죽지않는돌고래 Feb 01. 2019

산후관리사, 신화인가 실화인가

새벽의 육아잡담록 18

1. 산후관리사란 무엇인가 

산후관리사란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미천한 인간의 거주지에 강림, 손수 아기를 돌보아주는 것도 모자라 산모의 케어와 식사, 집안일 마저 도와주는 초월적인 존재를 뜻한다(아, 물론 강림 시간은 각자 다를 수 있습니다).


안타까운 건 다른 종교의 많은 신과 마찬가지로 산후관리교의 신인 산후관리사도 돈을 받는다는 점이며, 다행인 건 다른 신과 달리 돈만 받는 것으로 끝이 아니란 점이다.   


은총을 받은 자로서 짧게 간증기를 써 널리 산모를 이롭게 하고자 한다.  


2. 산후관리사의 강림 조건 및 강림 시점 

산후관리사라는 초월적 존재를 자신의 집으로 소환하기 위해서는 연금술을 익혀야 한다. 일단 200에서 300만 원 정도의 현금이 필요하다(2018년 기준입니다). 아침 9시에서 저녁 6시까지, 토 일요일을 뺀 주 5일, 4주 기준이며 시간에 따라 필요한 현금은 달라진다. 


산후관리사의 비용은 매년 가파르게 상승중이며 입주를 원하는 경우, 가격이 훌쩍 뛰기도 한다. 나로선 입주 산후관리사를 소환할 레벨의 연금술사가 아닌지라 얼마나 굉장한 현금이 필요한지 알 도리가 없다(시무룩). 


소환 의식으로는 계좌 이체가 있으며 이 조건을 충족하지 않으면 소환이 불가능하다. 왜냐고 묻는다면 자본주의 사회 신들의 특징이라 나보고 어쩌라고, 라는 말로 답해주고 싶다.

  

이 신의 강림 시점은 조리원을 나온 후이며, 조리원을 가지 않았다면 출산 후 집으로 돌아온 시점이다. 짧게는 2주, 길게는 3달간 은총을 내리는 특징이 있다. 


산후관리사라는 신은 집안 어디에나 존재하며 모든 것을 굽어살피나 출산 후 100일 전까지만 등장, 그 후에는 베이비시터라는 또 다른 신이 있다는 정도만, 일단, 알아두자.  


3. 산후관리사 소환의 강점 

소환 조건과 소환 의식을 모두 마쳤다면 육아 세계관 최강자로 군림한다는(그리스 세계관의 제우스, 도교 세계관의 옥황상제 정도 느낌입니다) 신과의 계약에 성공한 셈이다. 


아기를 굽어 살피는 것이 주능력으로 청소, 식사 준비, 산모의 낮잠보장 등 초자연적인 현상을 시시때때로 일으키는데 친정엄마, 시엄마, 남편 등이 가진 소소한 능력을 한데 때려 박은 초월자가 온다고 이해하면 된다.  


내가 지켜본 그녀의 신화, 아니, 실화는 다음과 같다.

 

1) 수면보장

가장 중요한 능력이다. 산모는 산후관리사가 은총을 내린 틈을 타 짧은 수면을 취할 수 있다. 집으로 돌아온 순간부터 수면 패턴은 고사하고 수면 시간도 길지 않은 신생아와 대적하려면 만성 수면부족으로 우울증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런 산모에게 오로가즘 보다 더한 환희가 이 능력이다.

    

수면보장, 좀 더 정밀히 말해 낮잠보장으로 이 은총은 베프랑 남편이랑 산후관리사가 물에 빠지면 당연히 산후관리사를 구하고 그다음을 고민한다, 라는 느낌이다. 


2) 오병이어의 기적 

나의 가족으로 예를 든다. 엄마는 아기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빠, 즉, 나는 가족의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 직장에 간다. 엄마는 아빠가 돌아올 때까지 오롯이 혼자 신생아와 대적한다. 


신생아라는 건 배달음식을 시켜도 밥을 못 먹게 하고 밥을 짓는 건 더 못하게 하는 존재. 부모의 시간을 지배하는 능력이 가히 절대적이며 어찌 됐든 시도 때도 없이 울어 밥을 못 먹게 한다(그런 주제에 자기는 밥을 안 주면 세상을 불태울 기세로 운다!).

 

엄마는 전날 새벽, 2시간마다 깨 모유수유를 하거나 신생아의 지속적이고도 절대적인 울음에 잠을 설쳐 머리가 멍한 상태. 아빠가 출근하면 대신 아기를 봐줄 사람이 없기에 밥을 제대로 먹을 수도 잠을 제대로 잘 수도 없다. 이렇게 살다 죽겠다, 라는 실존적 고민이 눈앞에 온다.

 

영화나 드라마 혹은 이야기로 들었을 때는 남일이지만 이제는 자신의 일, 육아의 혹독함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와 닿기 시작하며 매 순간 쪽잠을 자느냐, 뭐라도 한 입 먹느냐의 갈등이 우주를 지배한다. 둘 중 하나는 반드시 포기해야 한다. 


허나,       


산후관리사가 존재한다면 밥을 먹을 수 있다!(앞서 설명한 대로 잠도 잘 수 있다!) 


엄마가 잠시 아기를 보는 동안,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며, 산모가 식사를 하는 동안 아기를 철저히 마크하기 때문이다. 


이게 얼마나 기적적인 일인지는 인간의 언어로 다 설명할 수 없기에 안타까울 뿐이다.

 

3) 유어 베이비 이즈 언더 컨츄롤 

지구 상에서 첫 출산한 엄마가 아기를 완벽히 컨츄롤 한 학계의 보고는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 해서 영혼을 계속 으깨어 생면연장의 꿈만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산후관리사는 이런 아기를 컨츄롤하여(유어 베이비 이즈 언더 컨츄롤! ... 천조국의 언어를 써보고 싶었습니다...) 엄마의 영혼이 으깨어지는 속도를 최대한 늦추는 마스터의 관록을 보여준다.

  

처음이라 서툰 목욕, 잠재우기, 분유 먹이기, 기저귀 갈기 등 신생아를 산모에게서 분리, 인간이라면 반드시 가져야 하는 개인의 시간을 보장해준다.



사진은 95일 된 하루입니다. 산후관리사님의 케어 아래, 뿌잉뿌잉이라는 신기술을 연마 중입니다. 

   

4) 산모가 산책을 할 수 있다! 그것도 혼자서!

산모는 주구장창 집 안에만 처박혀 말이 안 통하는 신생아와 함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운이 나쁜 경우, 그러니까 남편 직장에 야근이 많거나 출장이 잦으면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하며 몇 달간 집 안에만 있어야 한다. 몸이 먼저 가느냐, 영혼이 먼저 가느냐의 제로섬 게임이 시작된다.

 

허나,


산후관리사가 존재한다면 산모는 산책을 할 수 있다!


집 앞이라도 나갈 수 있다는 말이며, 잠시 편의점도 갈 수 있고 커피를 마시러 까페도 갈 수 있다. 물론 그 시간에 잠을 자거나 밥을 먹는 게 우선이지만 짧은 시간이나마 할 수 있다, 라는 기분과 실제로 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5) 마사지도 있다

이따금 산후관리사가 갖추신 주능력을 가뿐히 넘으시어 다른 세계의 능력까지 겸비하는 경우가 있다. 이 중 특이할 만한 것이 마사지다. 


산모는 계속 수유를 해야 하므로 젖이 불어 아프다. 헌데 이것도 남편이 어설프게 조물조물했다가는 더 아파서 한 대 때리고 싶기 마련. 다행히 우리가 소환한 신은 가슴 마사지가 출중하여 가히, 은총의 꽃다발이라 불릴만했다.

 

흔히, 각 지역별로 맘까페라 불리는 곳에 간증기가 많으니 다른 세계의 능력을 알고 싶다면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마사지가 서비스 내용에 포함되어 있다고 해도 힘들거나 서툴기에 기피하는 신들도 있다는 점, 대외비지만 널리 알린다(줄리안 어산지가 된 느낌입니다, 에헴).

  

6) 대화 상대 

말이 안 통하는 상대, 게다가 분노하는 능력이라면 세계구급인 신생아와 몇 시간도 아니고 며칠도 아니고 몇 달 동안 지내야 한다면 자칫 성격마저 바뀔 수 있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좋아지는 경우는 드문 일로 원래 더러웠다면 더 더러워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운이 더 나쁜 경우를 생각해보자. 남편의 직장에도 그런 상사가 존재한다면? 해서 몇 시간도 아니고 며칠도 아니고 주구장창 그 상사와 지내야 한다면? 


남편과 아내 두 사람이 집에서 만나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두둥.

 

옛날 가족들은 호환, 마마, 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으나, 현대의 가족들은 무분별한 언행을 사용함으로써, 가정 불화라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데 바로 이러한 경우가 발생한다. 

  

산후관리사는 인간에게 꼭 필요한 권리, 즉, 잡담과 위로라는 능력도 소유하고 있기에 대화 상대가 되어 심신의 안정을 도모한다.

 

아아. 경배하라. 


4. 산후관리사 소환의 주의점

전지전능한 신을 일개 인간이 평가하여 자칫 화를 입을까 두렵다. 인격신이 모두 그렇듯 단점 또한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니 역사가의 입장에서 이를 기록하지 아니할 수 없다.


앞서 추천한 지역 맘까페의 간증기를 참고해 신의 소환 의식에 성공했다 치자. 근데? 으응? 아아, 나랑 안 맞는다!


이 종교가 좋아 죽겠으니 너도 믿어라 주구장창 말하는 이가 있는데, 아 씨앙, 그러니까 그건 알겠는데, 나랑은 안 맞는다고!, 소리쳐야 하는 경우, 있지 않은가. 어떤 정치인은 내가 보기에 최곤데 친구가 보기엔 최악이고, 저 친구는 내가 보기에 좋은데 남이 보기엔 쓰레기인 경우, 흔한 일 아니던가.

 

해서 신을 소환하기 전에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누군가 간증기에 ‘아아, 이 산후관리사님의 음식은 마치 제가 프랑스 파리에서 즐겨먹던 마카롱 드슈 셰프님의 맛이군요!’라고 적어 놓았는데 그 산모는 짭짤한 걸 아주 좋아하지만 나는 싱거운 걸 좋아하는 사람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집안 청소에 마에스트로의 경지를 보이지만 너무 친근하게, 지속적으로 잡담하는 걸 좋아하는 산후관리사라면, 외향적인 사람에겐 좋을 수 있지만 내향적인 사람에겐 육아보다 더한 스트레스일 수 있다.

 

음식은 잘하는데 아기 케어가 부족할 지도, 아기 케어는 굉장하지만 잔소리를 늘어놓을 지도, 신이라 해도 인격신인 이상 완벽할 순 없는 법이니 변수는 상시 존재한다.

  

자신이 무엇을 최고의 가치로 치는지, 그리고 내가 케어를 받아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보고 간증기를 검토, 또 검토해야 함이 마땅하다. 

  

산모와 육아에 관한 생각이나 지향점이 같지 않을 경우, 어쩌면 당신은 돈을 내고 스트레스를 살 수도 있다는 점, 마음 깊이 새겨두어야 한다.  


스타워즈의 명대사를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May the force be with you"


… 


아, 아니,


“May the 좋은 산후관리사 be with you”


...


네. 산후관리사 영어로 뭔지 몰라요... 알게 뭐야... 좋은 사람이랑 함께만 하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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