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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죽지않는돌고래 Jan 20. 2019

아빠란, 먼 미래의 일도 걱정하는 법이지요

새벽의 육아잡담록 17

1.

아내와 나도 연애란 것을 하고 결혼했다. 가끔 연애를 안 하고 결혼만 하거나, 잠자리만 가지거나, 이혼만 하는 경우도 있지만(아, 이건 불가능하군요), 평범하게 순서대로 한 셈이다.


해서 남편 될 사람이 머리나 옷, 신발 같은 건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인간인 걸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연애시절, 정도가 제법 심했는지 가끔 그 이야기를 한다.


2.

미군 전용 이발소에 다녀온 후다. 굳이 다니려고 해서 다닌 건 아니고 혼자 산책하고 들르기 좋을 곳에 있어 가게 되었다.


나로선 동네에 있는 미군 전용 이발소에 묘한 매력을 느꼈는데 아내가 가지 말라해서 이제 가지 않는다. 이유는 ‘인간이 그의 인생을 통틀어 가장 못생겨질 수 있는 최대치를 찍어주기에’ 라고 한다.


으음. 


연애시절에 말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3.

집에서 가까운 미용실에 다녀온 후다. 무릇 사내란 가까운데 그런 곳이 생기면 갈 수밖에 없어진다. 가깝기 때문이다. 


나 같은 종류의 고객은 ‘이 녀석 호구구나’ 해서 이상한 실험을 자주 당한다. 마음대로 잘라달라고 하면 열 번 중 한 번은 정말 있는 힘껏 마음대로 잘라준다. 물론 이쪽이 그렇게 먼저 말한 게 잘못이긴 하지만, 여차저차해서 파마를 했다.


그런 기억력은 묘하게 좋은 편이라 지금도 당시의 여차저차가 생생하다.


‘손님. 부산 사람 같은데’


‘어. 맞아요. 어떻게 알았지!’


‘... 저도 부산인데 으데 사셨습니까’


‘잘 모르실 텐데 0서동이라고 고등학교 때까진 거기서 살았어요’


‘오! 저도 0서동!’


‘우와. 신기하다!’


‘그라믄 파마 한 번 하시지예’


‘넹’


이라는 좀처럼 보기 드문 흐름이었다. 엄청 큰 거 아니면 대충 하자는 대로 하는 편이라 그렇게 했다. 파마란 건 인생을 통틀어 몇 번 한 적 없지만 전문가가 있는 힘껏 권하는데 거절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나로선 집 앞 미용실이 묘한 매력을 느꼈는데 아내가 가지 말라해서 이제 가지 않는다.


이유는 ‘인간이 그의 인생을 통틀어 가장 모자라 보일 수 있는 최대치를 찍어주기에’라고 한다.


으음. 


연애시절에 말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4. 

파마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면 당시 아내와 회사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해 ‘아, 이상한 거구나’ 란 걸 눈치챘다. 필진 중 한 명은 ‘인생파탄 머리’라고 명명했는데 내가 안 좋은 일을 겪어 인생을 포기하기로 한 줄 알았다 한다.


그것이 계기가 된 건진 모르겠지만 결혼 후, 아내가 가라는 곳에 가게 되었고 스스로 조금 단정한 사람이 된 게 아닐까 내심 기뻐하고 있다.


크록스를 신을 수 있는 곳과 신을 수 없는 곳을 조금 구별하게 된 것, 회색 티와 회색 바지를 입고 회색 양말을 신고 나오면 스님처럼 보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것도 결혼의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5.

하루가 훗날, 나와 비슷한 스타일의 인간이라면 아무래도 좋을 이야기다. 다만 조금 외면적인 미학을 추구하는 인간이 되면 곤란해지지 않을까.


미래의 일이지만 아빠라는 책임감 있는 존재가 된 이상, 그런 것도 생각하게 된다. 학교에서 사고를 쳐서 한 번쯤은 내가 가게 될 테다(제 자식이니까 분명 그러겠지요). 그때, ‘아빠는 부끄러우니까 엄마가 왔으면 좋겠다’ 고 하면 어떡하지, 란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나로선 의외로 이런 점은 고집이 있어서


‘하루야. 인간의 내면이나 외면 따위는 아무래도 좋은 거야’


라고 말하겠지만 자식은 부모 말 같은 걸 듣지 않을 게 뻔하므로 부자지간에 금이 갔을 경우에 또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앞선다.


으음.


아빠란, 먼 미래의 일도 안심이 되지 않아 속이 타는 법입니다. 


추신: 인간의 내면과 외면 모두 아무래도 좋은 거면, 뭐가 중요한지 물을 분이 계실 텐데,  글쎄요. 그러고 보니 그 점에 대해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사진은 85일 된 하루입니다. 훗날, 저와 싸울 예정입니다. 지금으로선 아무 생각이 없어보이지만 경험상, 방심은 금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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