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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죽지않는돌고래 Jan 15. 2019

자식이 아프다고 3일을 울면 부모는 무슨 짓이든 한단다

새벽의 육아잡담록 16

1.

할아버지는 1923년생으로 본인의 분야에선 꽤나 유명한 사람이다. 드라이하게 한 줄로 요약하면  ‘국민보도연맹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평생 헌신한 인물’. 


현재로선 명예가 회복되었지만 시대가 시대였던 지라 고문, 감시, 징역 등 험한 일을 제법 겪었다. 이따금 과거의 언론이나 정부 자료를 찾아보곤 하는데 인생에 재미있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가족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 고등학생 때까지 함께 살았는지라 희로애락이 한가득,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비리도 제법 된다.   


그러고 보면 할아버지와 손자의 관계란 게 꽤나 재밌다. 


2. 

아버지, 어머니 모두 직장에 나가 있기에 방과 후엔 할아버지, 할머니와 시간을 보낸다. 대화의 시간이 많다.


중학생 때로 기억된다. 한 번은 할아버지와 잡담하는데 과거에 친구를 통해 아는 집 자식을 대학에 입학시켜 준 적이 있다 한다. 1960년대쯤의 이야기다.    


할아버지는 그런 일을 할 사람도, 인품도 아니라 놀랐다. 얼마나 놀랐냐면 매. 우. 놀랐다.


‘할아버지가 그런 일을 했다고요?’


손자를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아, 농담이었어, 할 법도 한데 할아버지는 그런 타입이 아니다.


‘자식이 배고파 아프다고 3일을 울면 부모는 무슨 짓이든 한단다’


라고 웃으며 말한다. 


살면서 경험한 할아버지(그래 봤자 당시는 중학생 까지지만 말입니다)와 그 말의 간격이 커 놀랐던 기억만 가지고 한동안 살았다. 


3. 

본인의 아버지는 억울하게 살해당했다. 자신은 정치적 이유로 감옥에 가고 재산도 몰수당했다. 남산에 끌려가 고문당하는 게 생활, 아내는 홀로 7남매를 키우다 어린 아들과(훗날 저의 아버지입니다) 함께 자살하러 바다에 갈 정도의 상황이면(참고로 안 했습니다, 현재 매우 건강하시지요), 그럴 수 있을 듯하다. 으음. 사실 말은 이렇게 해도 나라면 온갖 창조적인 나쁜 일이란 일은 다하고 살지 않았을까.


이따금 소름 끼칠 정도로 인간 사회를 냉정하게 봐서 화들짝 한 적은 제법 있지만 나로선 손자 어드밴티지를 510% 정도 먹고 들어가는 지라 할아버지가 냉랭한 소리를 할 때만 ‘엇, 할아버지에게 이런 면이’ 했지, 대체적으로 따뜻한 사람이고 정이란 정은 모조리 받았다.


어른 두 명이 누우면 꽉 찰 조그만 방, 할아버지 옆에서 이불 덮고 옛날이야기 들으며 히히, 웃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4.

일주일 전, 하루가 처음으로 열이란 게 올랐다. 원체 건강한 녀석이라 흔하다는 분수토 한 번 안 했는데 예방접종을 맞으면 종종 있는 일이라 한다. 


이틀에 걸쳐 몸이 뜨거워졌다 말았다 해 아내와 물에 적신 거즈로 밤새 하루의 몸을 닦아주기 반복했다.


20년도 전, 할아버지의 말이 떠오른다.


‘자식이 배고파 아프다고 3일을 울면 부모는 무슨 짓이든 한단다’


나 또한 자식 생기니, 할아버지의 그 말이 내가 막 깜짝 놀라고 그럴 정도는 아니구나, 한다. 


이것 참, 38 도면 별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사진은 70일 된 하루입니다. 지금은 언제 아팠냐는 듯 까불어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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