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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죽지않는돌고래 Jan 13. 2019

아내와 장인 혹은 마음의 정산

새벽의 육아잡담록 15

1. 

아내는 두 가지 생각을 자주 했다 한다.


‘왜 아빠는 내가 원하는 사랑을 주지 않지?’

‘왜 아빠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지지해주지 않지?’


2.

2016년, 고용정보원의 한국 직업정보 통계에 따르면 연봉이 가장 낮은 직업 2위는 수녀다. 1천260만 원, 월급으로 계산하면 100만 5천 원이다.


1위는 연극, 뮤지컬 배우다. 연봉 980만 원, 월급으로 계산하면 81만 6천 원이다.


아내는 뮤지컬 배우로 10년을 살았다.


3. 

부모는 자식이 바늘구멍 같은 확률의 일, 특히 돈 안 되는 직업에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사회에서 꽤나 쓴맛을 봤기에 비참함을 알기 때문이라 추측한다.


그 쓴맛은 머리론 좀처럼 알 수 없고 피부와 뼈에 새겨져 대부분의 부모들이 비슷한 말을 하지 않나, 하고 나로선 추측할 뿐이다.


다만 자식의 입장에선 서운하기 마련이다. 과연, 아내는 서운했다.


‘왜 아빠는 내가 원하는 사랑을 주지 않지?’

‘왜 아빠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지지해주지 않지?’


4.

하루는 아내와 나의 몸을 부수어 키우고 있다. 특히 아내의 몸이 더욱 그러하다. 이 시기는 향후 몇 년간 지속된다. 하루는 이 시기를 영영 기억하지 못한다.


인간의 초창기 몇 년은 생물학적으로 그렇게 프로그래밍되어 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5. 

이따금 장인이 집으로 놀러 오면 놀랍게 하루를 잘 재운다. 놀랍도록 섬세하게 하루를 잘 달랜다.


아내는 생각났다 한다. 어릴 때, 아빠가 나와 참으로 잘 놀아주었구나. 아빠가 나를 사랑했구나. 거짓말처럼 모든 기억을 잊고 언젠가부터 아빠가 멀어졌고, 해서 무서워졌고, 해서 서운한 것만 생각했구나. 거짓말처럼 다 잊었구나.


어쩌면 아빠는 나랑 계속 놀고 싶었는데, 내가 계속 너무 좋았는데, 내 머리가 커서 친구랑만 놀고, 받은 건 다 잊고 받을 것만 생각해, 언젠가부터 멀어진 것은 아니었나, 생각했다 한다.


6.

아내는 하루를 낳기 전, 부모가 나에게 이것만 더 해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많이 했으나 하루를 낳고 나니 부모는 내게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주었다 생각한다 한다.


하루가 후에 결혼을 할지, 아기를 낳을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겪은 이 모든 일이 향후 3, 40년 사이에 반복될 확률이 높다.


7.

인간은 좀처럼 깊지 않으면 자족을 모른다. 자족을 모르면 행복이 없다. 아무리 굉장한 부모 만나도, 뼈를 내주고 피를 내주어도 자식은 그 이상을 바랄 뿐이다. 자족을 놓친다. 행복을 놓친다.


이 반복되는 삶, 아내의 사례를 보고 느낀 바, 이왕 이렇게 된 거, 3, 40년 뒤에 그 마음 정산받을 바에야 나는 하루를 엄청 괴롭혀야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루야, 너는 운이 나쁘구나.   


갓난쟁이 시절의 아내와 장인 어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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