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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죽지않는돌고래 Feb 19. 2019

아기는 반드시 부모의 기대를 배신한다

새벽의 육아잡담록 20 


1. 

113일째.


113일 된 하루. 이 시기 아기는 자기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지요(이게 뭐지?, 하는 느낌입니다).


2.

최근 30일, 하루는 7시간에서 8시간 밤잠을 잔다(운이 좋으면 9시간에서 10시간이지만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요). 재워라, 밥 차려라, 놀아줘라, 기저귀 갈아라, 등 굉장히 주제넘은 짓은 계속하고 있지만.


7, 8시간을 잔다는 건 새벽 수유를 하는 아내가 4, 5시간은 연속으로 잘 수 있다는 의미이며 집 앞 까페에서 아메리카노를 산 후, 가볍게 산책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생활이 길 거라곤 기대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아아.


3.

하루가 이틀 전부터 1, 2시간 단위로 깬다. 낮잠도 30분 이상 자지 않는다. 마치 신생아로 돌아간 듯하다. 아내와 나는 더없는 좌절감, 패배감을 맛본다. 지나온 삶에서 어떤 죄를 지었는지 복기하는 시간이었다. 이 정도 사이즈의 고난은 천벌이 아니면 다른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선인들의 지혜와 연구가 쌓인 현대에 살고 있으므로 집 앞 도서관에서 빌린 “엄마, 나는 자라고 있어요(헤티 판 더 레이트, 프란스 X. 프로에이 저/북폴리오)”라는 두 학자의 육아 서적에서 해답을 찾았다.


4.

원더윅스. 폭풍 성장기. 잘 웃던 애가 웃지 않고 잘 자던 애가 자지 않고 잘 먹던 애가 먹지 않으며 재밌던 것이 재밌지 않다. 즉, 똑똑해진다.


이 시기 아기의 특성과 부모가 느끼게 될 감정이 놀랍도록 맞아떨어져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야, 30년 동안 밥만 먹고 아기만 연구하면 학자는 이런 레벨까지 가는구나.


5. 

육아에 관한 선인들의 지혜가 없었다면 뜬금없이 찾아온 어두운 터널일 뻔했다. 알고 맞는 것과 모르고 맞는 것의 차이는 꽤나 큰 법이니 말이다(둘 다 아프긴 하지만 말이지요).


아무리 그렇다 해도 ‘너무 교과서적으로 할 거 다 하잖아!’, 라는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처제의, ‘교과서 외의 것을 안 하는 게 어디야!’, 라는 말을 전해 듣고 ‘으음, 그것도 그렇군’, 이라는 생각을 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아아, 이 정도도 감사한 일이야!’,라고 까지 생각되는 건 딱히 아니니, 부모 심리란 게 묘하다. 


6. 

생후 20개월 동안 아기는 10번의 도약 단계를 거친다 한다. 하루는 4단계에 와 있다. 본인이 부모와 다른 독립체임을 자각하고 최초로 권력투쟁을 시작한다.


온갖 것에 참견하려 하고 있는 힘껏 자유롭게 되려 한다. 부모 그리고 세상과, 물리적, 정신적으로 싸운다(아직 물리적으론 제가 이깁니다만).


나의 퇴근까지, 하루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아내는 내가 느끼는 감정의 8배 정도를 느낀다. 이 와중에 정밀한 위로가 되는 책을 찾아낸 선구안이 놀랍다. 덕분에 나 또한 공부가 되었다. 


영혼을 믿지 않으나 만에 하나 정말로 그런 게 존재한다면, 육아는 에너지 보존 법칙에 의해 영혼을 곱게 갈아 넣어 새로운 영혼을 만드는 여정으로 보인다.


… … 


후우. 정말 그렇다니까요. 안 해 본 사람은 모른답니다.  



추신: 참고로 글 속의 하루는 113일 차지만 이 글을 쓰는 현재, 현실에선 354일 차입니다. 2019년 3월 3일에 돌을 맞이하기에 1년의 기록을 남긴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지요.  


‘새벽의 육아잡담록’은 당시에 틈틈이 써 놓은 고민과 느낌,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대해 훗날 스스로 참고하고자 기록한 내용을 보충해 올리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보이지 않던 것도 보이는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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