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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죽지않는돌고래 Oct 07. 2020

인간의 취향 형성과 쵸콜렛, 그리고 아빠는 고민한다

새벽의 육아잡담록 

1.
아내와 잡담하는데 친구였던 시절, 혹은 애인이었던 시절의 내 패션에 혹평한다. 자주 듣는 말이긴 하지만 요약하면 인간이 어떻게 저렇게 입고 다닐 수 있을까, 다.

이런 말은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고 많이 들어 "그렇군" 하고 생각한다. 불편을 느낀 적은 없다.

기억에 남는 말로, 총수(회사 대표, 츤데레)는 '넌 옷 살 때 좀 물어보고 사라', UMC(힙합가수, 츤데레)는 '저런 사람은 서울시 조례를 제정해서 돌아다니게 하면 안 된다', 마사오(필진, 그냥 싫음)는 '진짜 바보같이 입고 다닌다', 필진들은 '스님룩인가', 등등인데 내 보기에 다들 이러쿵저러쿵 평가할 패션 센스의 소유자는 아니다. 

모두 주제넘는다고 생각한다. 남의 패션에 신경 쓸 시간이 있으면 본인들이나 남을 생각해서 다시 태어났으면 한다. 
 
2.

해도, 인간은 남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편이 좋다. 스스로를 알아가는 느낌을 준다. 몇 년 전 일이다. 나는 근 30년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쵸콜렛을 먹는 습관이 있다. 이를 본 어머니가 '내가 참 니 버릇을 잘못 들였어' 하길래 설명해 달라했다.


3.

아이들은 호기심이 많듯 나 또한 그랬다. 뒤지거나 분해하는 걸 좋아했다. 표현 그대로 옮기면 "뒤질 수 있는 건 다 뒤지고 열 수 있는 건 다 열었다". 어머니가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항상 가방과 지갑을 열어 보았다. 3살인가 4살 정도 때의 이야기다. 


퇴근하면 매일 가방을 열어보는 아들이 있으니 기대감을 충족시켜주고 싶었다. 어느 날부턴가, 쵸콜렛을 하나씩 넣어왔다. 아들은 매일 어머니의 가방을 뒤져 쵸콜렛을 발견하곤 좋아했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보고 좋아했다. 


매일매일 퇴근 후 이어진 모자지간의 놀이였다. 


4.

인간이라면 스스로에 대한 의문이 있다. 짬날 때 하는 나의 놀이는 왜 이런 취향을 가지게 되었는지, 왜 이것을 좋아하는지, 기억을 더듬거나 이유를 찾는 것인데(이 놀이의 장점은 일할 때 놀고 있어도 다른 사람이 눈치채지 못한다는 겁니다) 쵸콜렛을 특별히 좋아하는 이유가 있을 거라곤 생각해 본 적 없다.


문명과 문명이 만날 때 100%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진 거의 유일한 물질이 설탕이었고 한 인간이 문명이나 문화라는 걸 덮어쓰기 전, 그러니까 본능적으로 원하는 건 단 것이기 때문이다. 


더하여 친구들 가방이나 지갑을 잘 뒤적거리는데(아, 물론 허락을 받긴 합니다) 그게 왜 궁금하냐 물어보면 잘 모르겠다. 본능적인 끌림이 있다.


5. 
아마도 어릴 때의 영향으로 뭔갈 뒤지면 달달한 게 나온다는 것이 오랫동안 학습되었을 수도 있다(파블로프의 개인가. 그 친구도 몇 번 해서 안 나오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간다던데 말입니다). 단 걸 좋아하는 건 어릴 때 기억이 행복해 더 오래 가져가려는 무의식적인 발로일 수도 있다. 물론 이 모든 건 내가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걸 수도 있다.


스스로의 성향이나 취향이 어떻게 조합되고 완성되었는지 100% 알 수 없지만 의심해보지 못했던 걸 의심하거나 여러 가지 가능성이 확장되는 느낌은 재미가 좋다.


부모와 친하면 나름 얻는 것이 많은 법이다. 


6.
이쯤 되면 하루(내 자식, 아마도 99%의 확률로)의 취향이 궁금해진다. 이래저래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나의 취향은 부모, 조부모에게 영향을 받았으나 꽤나 다르다. 좋아하는 인간 유형도 다르고 인생을 즐기는 방법도 다르다.

어디서 어떻게 형성됐는지 과정을 짐작할 뿐, 절대라고 확신할 만한 건 없다.

하루가 나를 닮아 아무것도 안 하고 멍하니 누워 생각하거나 하루에 1시간씩 욕조에서 가만히 있으면 돈이 덜 들 텐데, 아무래도 엄마를 닮아 활동적일 것 같아 걱정이다.

대책 없이 활동적인 엄마와 비활동적이라 무척 경제적이고, 에너지를 함부로 낭비하지 않아 지구환경에도 적합한 데다 쵸콜렛을 하루도 빠짐없이 먹기에 감정적 기복도 없는 아빠 사이에서 누구를 닮을지, 고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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