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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죽지않는돌고래 Oct 11. 2020

육아 무재능자를 위한 단 하나의 룰

새벽의 육아잡담록


1.

‘육아는 부부 사이만 좋으면 된다. 부부 사이가 좋으면 육아는 끝이다.’ 


벨기에인 크리스의 말이다. 


2.

크리스는 부부 사이의 감정이 아이에게 미치는 호르몬 변화와 장래 아이의 자존감에 미치는 영향을 장기추적, 뇌과학적으로 인과관계를 밝혀낸 것도 아니고 세계적으로도 안 유명한, 그냥 수원에서 프랑스어학원을 운영하는 내가 좋아하는 형이다(체스는 제가 더 잘 두는 것 같습니다). 


크리스형은 이렇게 생겼다. 웹에서 이름을 검색해 보니 이런 사진이 나온다. 체스를 더 잘 둔다는 말은 취소합니다. 출처: 와일드 복싱 매탄관 까페

다만 위 말은, 아이가 커갈수록 옛 로마의 시멘트처럼 내 마음속 금과옥조로 굳어간다(로마 시절의 시멘트는 지금도 강도를 더하고 있지요. 지금 시멘트도 그렇게 만들 수 있으면 좋으련만). 


3.

현대인의 육아가 슬픈 이유는 첫째, 사람이 없고 둘째, 돈이 없고 셋째, 둘 다 없기 때문이다.

  

최근의 호모 사피엔스 유전자 분석을 토대로 인류 역사를 퉁치면, 대충 35만 년이란 계산이 나온다. 이 35만 년 동안 오직 부부가 아이를 책임져야 한다, 라는 사회분위기가 형성된 시기는 짧게는 30년, 길면 50년이다.

 

우리 집 아이가 문 앞에서 기다리면 옆집 남봉이 엄마가 문을 벌컥 열며 ‘우리 집에서 기다리래이’ 하지도 않고 놀이터에서 옆집 종범이 엄마가 ‘하루야. 느그 집에 오늘 사람 읍따카데. 우리 집에서 밥 무라’ 하지 않는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대부분, 같이 살지 않는다.

 

그렇다. 사람이 없다. 


4.

한 사람이 평범한 직장에서 돈을 벌면(대개 아버지) 4-5명으로 구성된 가족이 먹고살 수 있는 시대가 존재했다. 세상에 그런 일이, 에 나올만한 기적 같은 일이지만 못 믿겠으면 길가다 30대 후반 이상으로 보이면 물어보자(액면가 판단에 대한 실수는 전적으로 귀사의 책임입니다).

 

뭐? 집에 애가 둘이었다고? 

뭐? 재벌이 아닌데 엄마가 전업주부? 

뭐? 집에 할머니 할아버지도 있었어? 

뭐? 그런데 아버지 혼자 벌었다고?


...라는 마치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에 비견되는 판타지를 들을 수 있다. 해리포터와 다른 점은 킹스그로스역의 9 ³/₄ 플랫폼에 몸을 던지지 않아도 사실 확인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허나 1980년대 이후, 생계를 맡은 남성들의 실질임금이 정체, 세계는 압도적인 맞벌이 시대에 돌입한다. 인류 전체로 보면 다시금 어마어마한 부를 획득하게 한 고효율의 시대다. 문제는 그 돈이 내 돈이 아니라는 점이며 여성임금마저 빠르게 정체되었다는 사실이다.

 

지구의 부는 압도적으로 늘었으나 나는 점점 더 가난해진다. 맞벌이가 아니면 살기 힘든 구조만 남았다. 


그렇다. 돈이 없다. 


5.

사람도 있고 돈도 있으면 좋겠지만 둘 다 없을 때, 최후의 방어선은 오직 팀웍에 의해서만 구축된다. 


100권의 육아서적을 읽어도, 아동심리학 박사학위가 있어도, 인간의 심연을 꿰뚫는 통찰력이 있어도, 육아에서만큼은 남편과 아내 사이가 나쁘면 모든 게 나빠진다. 


육아를 어떻게 하는지 몰라도, 아동심리학에 대해 1도 몰라도, 인간의 심연은 물론, 나도 내가 좀 이상하지만, 육아에서만큼은 남편과 아내 사이가 좋으면 모든 게 좋아진다.

 

아이는 언제나 후순위다. 


아내와 남편이 서로의 1순위가 되는 순간, 이 길은 그제서야 걸을만하다. 


아이는 아버지의 등도, 어머니의 등도 아닌, 아빠와 엄마가 맞잡은 손을 보고 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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