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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죽지않는돌고래 Oct 15. 2020

둘째를 10일쯤 앞두고 쓰는 초기 육아의 현실과 이상

새벽의 육아잡담록


1.

육아 3년 차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아내의 배는 어느 때보다 크고 강하다. 안타깝게도 대략 10일 뒤에 출산 예정이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이유는 자식이 하나 더 생기기 때문은 아니다. 그건 좋다. 


초기 육아를 한 번 더 하는 거, 그건, 


후우우우우우우. 


2. 

하루(나의 첫 번째 자식)는 많은 영감을 주는 녀석이다. 지식인인 나로서는(내가 그렇다는데!) 엄격한 학술적 기준을 정하는 버릇이 있는데 육아 경험을 바탕으로 ‘줸장 기준표’를 만든 바 있다. 검증된 임상실험으로 작성된 ‘줸장 기준표’에 따르면 초기 육아 1년의 가장 큰 특징은 잦은 내면의 ‘줸장’이다.

 

하아. 줸장. 

하아. 줸장. 

한 번 쉬고. 

하아. 줸장.

어이구. 내새끼! 

하아. 줸장.

하아. 줸장. 

한 번 쉬고. 


… 가 일반적 리듬이다. 


이따금, 작은 줸장들이 모여 더없이 격렬한 외면의 ‘줸장’이 발동하려 할 때는 침실로 들어가 조용히 문을 닫는다. 그리고 베개에 말을 건넨다.

 

줴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엔자아아아아아아앙!!!!! 


베개와의 짧은 대화가 끝나고 방문을 나오면 다시, 육아가 시작된다. 


한 번 해서 안되면, 한 번 더 베개와 대화하는 방법이 있다.  


3. 

나는 검도와 복싱을 책으로 마스터한 지식인으로, 육아 역시 그랬다. 


‘자, 일단 읽자, 20권!’


이라는 느낌이다. 


인간과 만나길 좋아하지 않지만 인간에 대한 책은 좋다. 육아는 좋아하지 않지만 육아에 대한 책은 좋다. 하루가 태어나기 전, 인간 본성과 양육, 수면, 진화론, 등에 대한 책을 기초로 나와 아내는 다음과 같이 정리한 바 있다.

    

1) 육아는 끊임없이 부모를 불행하게 하고 인내심을 시험한다. 아닌 척해도 소용없다. 데이터가 그렇다. 

2)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잠이 필요하다.  

3) 잠의 가장 큰 기능 중 하나는 ‘감정 균형’이다. 이를 획득하려면 정해진 시간에 매일 7-8시간을 자야 한다. 

4) 초기 육아에서 이는 불가능하다. 

5) 희망은 있다. 진화라는 대자연은 부모가 결코 아이를 포기하지 않게 하기 위해 모든 좌절을 초월할 강력한 감정, 새로운 유형의 유대감을 주었다. 사랑이다. 

6) 다만 잠을 제시간에, 제대로, 자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면 이 본성은 망가질 수 있다. 


이를 종합, 초기 육아에서 아내와 나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1) 수면교육은 반드시 성공시킨다.

2) 남편 존재의 사명은 24시간 밀착 방어 중인 아내를 틈만 나면 아이와 떨어트리고 재우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30개월 전, 첫째 하루를 낳았다. 


4. 

나의 장점은 치밀한 이론을 바탕으로 한 완벽한 계획에 있다. 단점은 그건 니 생각이고, 라는 거다. 초기 육아 시절, 상남자 중의 상남자(나)는 말했다. 


‘까페에서 2시간 쉬다 와.’

 

2시간 있다 온 아내는 언제나 껍데기뿐인 육체를 발견한다. 나는 늘 ‘별 거 아니던데!’,라고 말했다 생각했다. 아니랜다. 


아내가 까페에서 쉬고 오거나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언어능력이나 인지능력이 현저히 떨어진 한 남자가 매번 어부어버부..!, 하면서 마치 이산가족을 만난 듯 자신을 반겼다는 증언이다. 


5.

인간은 어리석기에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육아 1년쯤 되는 날이다. 어린이집 순서가 32번에서 꼼짝 않던 어두운 터널 같은 어느 날(하루는 이로부터 1년이 지난 후에야 다른 어린이집에 갈 수 있었다), 아내에게 해외여행을 갔다 오라 했다. 왜냐하면 나는 상남자이기 때문이다. 하루는 회사 휴가 내고 보면 된다. 육아는 ‘유캔두면 야나두’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초기 육아의 특징 중 하나는 생애 전반에 걸쳐 아무 도움 안 되는 사람(친구. 특히 백수에 미혼인 친구)조차 옆에 존재만 해도 큰 위로가 된다는 점이다. 고립감, 단절감을 차단시킨다. 해서 아내가 떠나기 전, 몇 없는 친구를 총동원해 방문 일정을 짰다.

 

물리적 장점으로는 화장실 갈 5분, 샤워할 7분, 밥 먹을 9분을 획득할 수 있다(이 시기, 존재 의미가 없다 생각했던 친구들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1주일 후 등장한 아내에게 이번에야말로 외쳤다. 


‘별 거 아니던데!’  


… … 


이 말을 할 때의 나는 과연 상남자인지 그렇게까지 울먹거리진 않았다고 한다.       


6. 

아내와 나는 요즘 초기 육아를 경험하며 느낀 이론과 현실을 복기 중이다. 둘째가 온다니 설레 하다가 ‘아 맞다! 유전자가 우리를 이렇게 생각하도록 설계해놨지, 나쁜 녀석!’ 하며 얼른 정신을 챙기고 방어전략에 집중하고 있다.

 

육아의 현실과 이상은 다르다. 초기 육아는 특히 다르다. 다만 본 투 비 상남자인 나는 말한다. 얼마 후 아내가 없는 2주쯤이야.


… … 


요즘 아내는 흥얼거리며 산후조리원으로 갈 짐을 싸고 있다. 


나는 마음이 평온할 땐 책을 읽고 쫄릴 땐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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