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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죽지않는돌고래 Dec 01. 2020

육아가 신체와 정신에 미친 영향에 관한 실증적 보고서

새벽의 육아잡담록 

제목에 30자 이상 들어가지 않는다. 이 탁월한 연구 보고서의 원제는 이렇다. 


"전업 육아가 인간 신체와 정신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실증적 연구 보고서(Feat. 노벨상 못 받음)"


그렇다. 내가 썼다.   


0.

지난 2년 8개월, 이론과 실전이 믹스된 융합육아인으로서, 나의 재능과 실력은 위로는 북두에, 아래는 태산에 비할만하다(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러다 제2의 오은영 박사가 되는 거 아닐까, 그렇다면 각종 매스컴에 시달려 가족과 조직을 못 돌볼 테니 이것 참 큰일이다…라고 홀로 고뇌했다.    


해서, 아내가 산후조리원으로 간 동안 '양가 부모님 도움 필요 없다!', '오롯이 나 혼자 본다!', 하고 14일을 보낸다....... 이 판단은 내 인생의 손꼽을만한 패착으로 현재로선 살아 걸어 다니니 다행이다, 정도로 생각한다. 


젊은 날, 끝이 보이지 않는 야근과 철야로 게임에 인생을 바쳤음에도, 소중한 교훈을 잊고 말았다. 가보지 않은 던전에 들어갈 땐 동료와 파티를 맺고 가야 한다는 사실을. 탱커가 있든, 힐러가 있든, 우짜등가 힘을 합쳐야 헤쳐나갈 수 있단 사실을. 


워킹맘(혹은 워킹 파파)도 고되고 전업 육아도 고되다. 헌데 이 두 가지는 완전히 다른 문화권에서 정착해 살아가는 것만큼 고됨의 결이 다른데 같은 것으로 착각했다.

   

아래는 그동안 내가 생각한 전업 육아의 이론과 현실이 얼마나 달랐는지에 대한 실증적 연구 보고서다. 

 

1. 아침 근무 3시간 난이도의 착각 

하루(2년 8개월)의 경우, 아침 7시쯤 일어난다. 집과 어린이집은 7분 거리, 보통 10시까지 데려다준다. 육아인의 아침 근무가 3시간에 해당한다는 말이다. 


기저귀를 갈아주고, 아침을 해 먹이고, 양치질시키고, 옷 입히고, 응가 치워주고 등등, 함께 시간을 보내고 어린이집에 데려다준 후, 집에 도착하면 10시 20분. 나는 아내가 산후조리원으로 떠난 날, 데카르트가 된마냥 보편적 원리에 입각해 추론했다.  


“어린이집에 보낸다. 고로 나는 쉴 수 있다!” 


넨장. 


하나부터 열까지 다 틀려먹었다.  


2. 힘이 아니라 진이 빠진다, 그리고 폭식의 최초 경험 

아침에 3시간 육아근무를 한다 해도 체력은 남아있다. 헌데 운동을 하지 않는 평범한 30대 후반 남성 체력 기준으로, 완. 전. 히. 지친다. 진이 빠진다는 표현이 적당할 듯하다. 


밥을 해 먹이는 동시에 함께 밥을 먹는 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기에 만족도가 0에 수렴하므로 대충 먹게 된다. 나로선 이왕 이렇게 된 거, 시간도 있으니 걍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서 여유롭게 먹는 게 속편하다 판단했다.


헌데, 어린이집에 다녀오면 뉴런의 연결이란 연결은 모두 끊기는 건 왜인가. 집에 돌아와 보는 풍경은 폭탄이 된 집, 설거지 거리, 빨랫감 등… 넨장, 아무것도 하기 싫다.

 

아침을 안 먹었으니 허기가 온다. 냉장고에 반찬도 있다. 햇반도 있다. 헌데, 그것조차 꺼내기 싫다. 아침육아 3시간은 뇌를 방전시킨다. 결국 14일 동안, 어린이집에 보내고 난 후 2시간 정도 존재하는 평일 오전 대부분은 밥도 먹지 않고 멍하니 소파에 누워 있었다. 


문제는 이때의 결식이 이후의 폭식으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하루를 재우고 난 오후 9시 이후에야 잠시 누웠다가 무언가 마구 먹어대는 나를 발견한다. 


내가 폭식 인간이 될 거라곤 상상조차 못 했다. 


나의 탄탄한 조각 몸매여, 안녕. 


...


조각 몸매에 대해선 시시비비를 따지지 말자. 대충 조각하는 사람도 많다.  


3. 인간 식기세척기의 기분과 아이가 아플 때의 수면부족 

요리를 하지 않은 쪽이 설거지를 한다, 가 우리집의 암묵적인 룰이다. 그렇다고 하루가 하진 않으니(무엇보다 태어난 지 2년 8개월밖에 안돼서) 아내가 저녁을 하면 내가 하고, 내가 저녁을 하면 아내가 설거지한다. 1일 평균 설거지 횟수는 1회인데 넨장, 혼자 있으니 설거지를 3번, 4번 해야 한다(아이는 간식도 틈틈이 챙겨 먹는다). 


10일 차쯤 될 때의 일이다. 아이를 재운 밤, 어두컴컴한 거실에서 보조등만 키고 쌓여있는 설거지 거리를 본다. 울컥, 했다. 드럽게 하기 싫다, 는 기분 외에 나 여기서 뭐 하는 거지, 라는 뜬금포 존재론적 고민과 함께 어느샌가 내 영혼의 복숭아뼈가 보이지 않는다. 왜? 늪에 잠식되는 중이니까!  


자식과 함께 웃는 경험은 이게 극. 락. 이. 다, 라는 확신을 주지만 완. 전. 히. 별. 개.로. 하루 종일 홀로 붙어 있으면(3세 이하 영아 기준입니다) 영혼이(내게도 그런 게 있다면) 늪으로 빠지는 기분이 반. 드. 시. 온다. 


어린이집을 모두 나갔으면, 괜찮았겠지만 코로나로 인한 외출의 부자유, 주말을 보내고 난 후 평일 어린이집만 바라보고 있다가 기관지염으로 열이 38.7도까지 올라, 며칠 데리고 있으면서 케어했던 영향도 크다.

 

둘이 있으면 잠을 나눠가며 아이를 케어할 수 있지만 혼자 있을 땐 1시간마다 열을 체크하고, 밤새 물을 적신 거즈로 열을 내리며, 3시간마다 약을 챙기고 상황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왜 그렇게 하냐면 의학적 룰이라서. 육아하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며칠 지속된 수면부족의 여파가 20대처럼 신속 정확하게 회복될 리, 없다. 초장부터 꼬였던 셈이다.

 

하루가 무척 건강한 편이라, 아플 확률에 대해선 1도 계산하지 못한 나의 상상력 부족이 패착이다.

 

4. 주담당자는 건강과 음식에 호들갑을 떨게 된다  

여기서 확장, 눈치챈 점이 하나 있다. 


자, 자, 잘 따라와 보자.  


아무래도 아빠 쪽이 아이를 케어하는데 터프하다. 음식도 막 먹이고, 좀 다치면서 크는 거지, 한다. 나는 그 정도로 터프하진 않지만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 엄마 쪽은 상대적으로 더 세심하게 음식도 챙겨 먹이고 조심한다. 헌데 혼자서 육아를 하다 아이가 아프니 아... 이런 것이었구나..!, 한다.

 

왜? 


3세 이하 영아의 경우, 혹시라도 다치면 어른처럼 병원 한 번 가고 약 몇 번 발라 끝나지 않는다. 돌발변수가 많다. 만약 상처가 생겼는데 제대로 연고를 바르지 않아 덧나면, 병원에 계속 데려다니며 상황을 지켜보면서 약을 챙겨 먹여야 한다. 그 부위를 간질지 말라고 해도, 만지지 말라고 해도, 먹힐 리 없다. 즉, 오래간다.

   

애를 케어하는 것만도 힘든데 병원에 데려 다니는 일이 추가되면 과연, 난이도는 배가 된다. 게다가 코로나 시기에, 긴 줄까지 한몫한다. 무엇보다 원인 모를 열이라도 발생하면 나의 수면, 없다.

 

그런 지옥(나의 경우, 하루가 어린이집에서 걸려 온 기관지염과 덤으로 38.7도의 지속, 농가진 등을 경험했다)을 미연에 방지하려면 평소에 신경 쓰는 편이 낫다. 여기서 알게 된다. 아, 주담당자가 아니었기에, 아이의 상태 이상 이후의 고난이 완전히 내게 떨어지지 않았기에 터프할 수 있었구나, 하고.

 

하나 더. 


주로 빡치는 아침밥 타임의 일로 흔히 아빠는 왜 엄마가 저렇게까지 밥에 집착할까,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나도 그랬다. 이것 역시 이번 기회에 이해된 점이다.  


밥. 시간이 없으면 간단하게 먹이거나 사 먹여도 된다. 헌데 매일 그럴 순 없다. 이것이 부사수가 아니라 오롯이 내 책임의 영역으로 돌아오면 불균형한 영양 상태에 따르는 배변 횟수(아이가 하루 이상 똥을 안 싸면 그때부터 긴장하게 된다. 변비가 심해지면 병원에 가서 똥을 빼내야 한다..!)와 피부상태 변화가 서서히 눈에 띈다. 오롯이 내 책임이니 부사수일 때랑은 완전히 다른 감각으로 아이를 보게 된다. 상태 이상의 모든 결과는 내 책임, 내 고난이니 말이다. 

  

그러니, 완전히 홀로 아이를 보다 보면, 어떻게든 먹이는데 집착하는 심리에 이런 것들이 깔려있구나, 몸으로 알게 된다. 이런 '체험, 삶의 현장' 이후 나 역시, 이런 과정을 거쳐 컸겠구나, 한다. 


‘나 때는 대충 컸는데’라는 사람의 대부분은 자신이 그 정도로 소중하게 케어 받았는지 기억에 남지 않았기 때문 아닐까.

  

나 역시, 인간이 기억을 모두 잊어버리는 시기에 소중하게 가족의 케어를 받았기에 이렇게 살아 투덜대고 있다. 모든 인간은 드럽게 배은망덕하게 프로그래밍되어 있나 보다.

 

나를 보면 알 수 있다.    


5. 책 대신 유튜브, 의미 없는 SNS 구독

나는 유튜브를 거의 보지 않는 구식 인간으로, 짬이 나면 책과 영화에 올인한다. 좀 더 짬이 나면 게임인데, 모바일 게임은 만족감이 느껴지지 않아 콘솔파(TV나 모니터에 연결하는 개별적 게임기를 가지고 즐기는 부류)로 분류되는 정통파다.   


책이든, 영화든, 게임이든, 옛날이었으면 평생 만날 일 없었던 천재들의 향연과 협업을 말도 안 되는 싼값에 즐길 수 있는 세상에 왜 저렇게 단편적이고 내용 없는 영상을 골라 볼까, 세상에 얼마나 굉장한 것들이 많은데!, 이 어리석은 녀석들!, 이라고 내심 생각했다. 


넨장. 


하나부터 열까지 다 틀렸다. 


나홀로 육아를 시작하고 나니 천재의 깊이고 협업이고 개뿔, 유튜브 중에서도 말초적인 유튜브가 더없이 재미있어지고 단편으로 잘라 놓은 예능을 무지막지 보는 내가 있다. 복잡한 것도 싫고 어려운 것도 싫고, 무엇보다 생각하는 게 싫다. 빠른 시간 안에 나에게 쾌락을 주는 게 최고다. 


SNS도 마찬가지다. 회사 업무 외에는 며칠에 한 번 들어가는 게 고작이었는데 매일 들어가 아무 관련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멍하니 보고 평소에 관심도 없던 영화배우 프로필을 보는 내가 있다.    


6. 쿠팡 중독

나홀로 육아 초반이 지나자 쿠팡 대주주마냥 쿠팡을 쓰게 되었다. 책, 초콜릿, 택시 외에는 거의 돈을 쓰지 않는 내가 쇼핑으로 스트레스를 푼다는 감각에 위대한 첫 발자국을 디딘 셈이다(안녕하세요, 닐 쿠팡트롱입니다).


다행히 대부분 무의미한 것들은 아니지만 14일 동안 식료품 외에 내가 산 목록을 뽑아보면 다음과 같다.

  

텀블러, 의자 발캡, 초콜릿(매우 많이), 찍찍이 테이프, 쌀벌레 퇴치제, 피스 마감재 볼트캡, 자바라 펌프, 리빙박스, 폰 거치대, 탈취제, 습기 제거제, 만능 집게, 마소재 주머니, 제올라이트 3kg, 화학용 압축 분무기, 그냥 분무기, 소독수 20리터, 고기 집게, UV플래시, 악력 측정기, 조도계, 레이저 거리 측정기, 청소기 필터 등. 


...... 


왜 샀는지 모르는 것도 있지만 왜 샀는지 모르는 것이 핵심이다. 참고로 100 LED UV 플래시는 동네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혈흔을 찾을 때 유용하다. 레이저 거리 측정기는 사건 해결을 위해 장소 간 거리를 측정할 때 쓰면 되니 역시 유용하다. 조도계는… 음, 뭐라도 할 수 있을 거다…!  


여튼 현재 집에 필요한 것을 적극적으로 찾아 소비의 정당성을 찾아내고, 합리화해 구매 버튼을 누르는 자신이 있다. 


하루를 재우고 눕힌 후, 오늘은 살게 없을까, 하며 사이트로 적극적으로 들어가 없는 이유도 만들어 내는 모습에 ‘아, 그래도 지금은 자금 사정이 나쁘지 않아 다행이다’, 했다(얼마 전까지 매우 나빴음). 자잘한 쇼핑이라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덕분에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던 그동안의 생활 패턴에 큰 삐끗이 왔으나 여타 가정처럼 아내가 돌아온 후 치료, 회복 중이다. 

 

7. 나는 화내는 사람이었다 

지난 10년간, 소리를 내서 화낸 기억은 없다(아마 있을 수도 있는데 여튼 남아있지 않다…!). 아내랑도 묘하게 맞아 싸운 적이 없다.  


아내가 이따금 하루에게 화를 내도, 성격의 명암이 확실한 편이고 안 되는 건 단호하게 해야 하니 그런갑다 했다. 무엇보다 주책임자에게 왈가왈부하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므로 조용히 부사수로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할 뿐.

 

헌데 내가 주양육자가 되니…  


넨장. 


큰 소리를 내는 내가 있다...! 


14일 동안 도합 4번, 이 짧은 기간에 내가 낸 큰소리 횟수가 지난 10년간 큰소리 횟수와 비슷하다.

 

지금 저녁을 해야 하는데 떼쓰고, 기껏 힘들게 고생해서 저녁을 차려놨더니 ‘안 먹어!’ 하며 식탁에서 내려가는 이 후레자식을 아, 어찌하아아압니까. 어떻게 하아아아알까요. 


...... 


문제가 여기까지면 좋은데, 더 큰 문제는 다음에 찾아온다.


8. 자괴감의 악순환

나는 오래전, 웬만큼 화를 끊었다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금연, 아니, 금화에는 다음과 같은 요소의 도움을 받았다. 


태생적으로 사람이랑 만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 섞일 일이 없기에 얻는 환경적 이점 하나(체질적으로 술도 못 먹음). 


목욕과 잠, 복기(매일 밤에 하는 나만의 의식 같은 것)의 세 가지 행사로 마음의 찌꺼기를 그날 밤 해치운다는 이점이 둘이다.

 

개인 특성상, 환경을 유지하고 충분히 생각할 시간이 주어지면 화를 내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알기에 그렇게 살아왔다. 해서, 이따금 주양육자들이 왜 그토록 분노하고 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미련한 중생들이여, 화를 내는 그 마음마저 버리면 될 것을...


... 은 개뿔, 둘이 할 땐 몰랐는데 오롯이 혼자 하니 알겠다. 사람이랑 섞일 수 없는 환경 자체가 불가능하고(아이랑 계속 같이 있어야 하니까) 목욕과 잠, 그리고 복기라는 세 가지 행사를 할 시간이 없구나, 하고. 즉, 고립된 환경이다.   


화를 낼 때 가장 더러운 기분은 이후에 찾아오는 후폭풍이다. 핵폭탄도 터진 후에 찾아오는 방사선과 낙진이 더 무섭지 않은가. 아직 태어난 지 3년도 안 된 녀석에게 큰 소리를 내니 마음의 찌꺼기가 남는다. 


그런 날은 자기 직전, 둘이서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보는 시간에 사과한다. 알아듣든 말든 진심으로 사과한다. 그럼 왠지 알아듣고 용서해주는 것 같다. 반성한다. 그리고 내가 저 작고 가냘픈 인간에게 큰 소리를 냈다는 후회와 함께, 내일 잘해줘야지, 하는데 아침에 열심히 차려준 밥 안 먹고 식탁에서 내려갈 때부터 빡치기 시작해,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면서 어린이집 갈 시간은 다가왔는데 계속 이거 한다, 저거 한다 하면 어젯밤의 다짐은 이미 무로 깔끔하게 회귀했다…!

 

자괴감의 악순환인 셈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두 가지뿐이다. 아이와 떨어지는 최소한의 시간 확보 그리고…  


9. 성인과 이야기를 하고 싶다

업무적인 일과 아내 외에는 그다지 사람과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내게 찾아온 가장 큰 변화다. 


아내가 산후조리원에서 돌아온 날, 폭풍 수다를 떨었다. 회사 출근 첫날, 이미 아이를 제법 키운 누나 사원들과도 그야말로 폭풍 수다를 떨었다. 월요일마다 하는 회의에서도 크게 말을 하지 않는 편인데 적극적으로 말을 하는 내가 있다.

 

그렇다. 나는, 성인과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2년 전의 일이다. 당시, 매일 하루를 재우고 아내와 1-2시간 수다를 떨었는데 아내는 이런 말을 했다. 


내가 ‘회사에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란다’, 고. 


그때는 내가 워낙 잘생겨서 그런가부다 했는데 이제서야 그 마음, 100% 캐취다. 

 

자식의 무균질 웃음은 전에 없던 극락을 주지만 내겐 성인과 말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마치 단 것을 싫어하는 사람조차 군대만 가면 미친 듯이 단 것을 갈구하듯, 100% 결여되니 100% 소중함을 알게 된다는 것을.  


나는 생각보다 훨씬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사실을.  


10. 고독의 비용  

여기까지가 14일 동안 나홀로 앤드 전업육아가 미친, 신체적 정신적 영향에 관한 실증적 연구 보고서다.

 

1년 차 되는 날, 아내를 휴가 보내고 하루와 일주일 동안 오롯이 함께 있었기에 이번에도 별 거 아니라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그때는 매일같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친구와 함께 했고 아이도 아픈 적이 없었으며, 지금처럼 활동적이지 않았기에 난이도 감각이 왜곡된 셈이다. 힘들지만 할만하네,라고.  


코로나 시기, 사람을 부를 수도 없고, 외출도 자제된 상황에서, 아이까지 아파 어린이집에 보내지 못하는 육아를 경험하니, 아아, 이런 환경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다 함께 고민하고 해쳐나가야 할 주요 현안이 아닌가, 정말루다가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

 

이 스트레스 비용을 각개격파로만 해결하기란 얼마나 고되고 고독한 일인가.

  

무엇보다 2년 8개월간 아내와 함께 육아를 했어도 처음 경험하는 감각 투성이라는 점이 소름 끼치게 무서운 점이 아닌가 한다.  


내일은 내일의 육아가 있겠지.

 

오늘 밤에도 둘째의 울음이 바람에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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