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애착 과정

by 짠지

어릴 때 나는 김치를 잘 먹고 싶어했다. 엄마는 다른 음식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지만, 유독 김치를 좋아하셨고, 맨밥에 김치만 자주 드시곤 했다. 엄마는 이웃들에게 직접 담근 김치를 받으면 엄청 좋아하셨는데, 그것들을 세상에서 제일 귀한 음식처럼 대하셨다. 나는 매운 것을 잘 먹지도 못하면서 엄마를 따라 기대하는 마음으로 김치를 먹어보려 했다. 하지만 어린 내 입맛에는 김치가 늘 너무 매웠다. 그런데도 엄마가 너무 맛있다고 하시며 드시니 나도 그 맛을 알고 싶어 어떻게든 먹으려고 애썼다. 특히 엄마가 무김치를 드실 때 와그작 와그작 씹는 소리가 참 듣기 좋았다. 나는 엄마의 씹는 소리를 더 잘 들으려고 엄마 등에 귀를 대고 소리를 듣던 기억이 난다.


내가 김치를 잘 먹고 싶은 또 다른 이유는 언니가 나보다 김치를 잘 먹었다. 4살 차이가 나는 언니는 나보다 매운 것을 잘 먹었고, 엄마는 김치를 좋아하는 어린 언니를 은근히 대견해하는 듯했다. 언니처럼 나도 김치를 잘 먹고 싶어서 김치를 먹고 매워서 물을 한입 머금고 밥을 먹거나, 아니면 양념을 씻어 먹기도 했다. (어쩌면 밥을 먹을 때 물을 많이 먹는 습관이 그때 생긴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또래보다 김치를 잘 먹는 어린이가 되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학교에서 점심을 먹기 시작했고, 그 당시 학교에는 잔반 남기지 않기 운동이 있었다. 반에는 김치를 못 먹는 애들이 있었는데, 선생님은 잔반을 못버리게 했기 때문에 점심시간이 끝날때 까지 식판을 바라보며 눈물을 뚝뚝 흘리던 애들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잔인한데 그때 나는 친구들을 조금 한심하게 바라보곤 했다. 그리고 내가 김치를 잘먹는 것을 무척 뿌듯해 했다. 일부러 배식을 받을 때 김치를 많이 달라고 했다. 친구들이 "와…너 그거 다 먹을 수 있어?”라고 물으면 나는 자신 있게 “ㅇㅇ"이라고 시크하게 대답했다. 집에가서 엄마에게 "엄마 애들은 김치를 잘 못먹더라?"하며 내가 얼마나 잘먹는 아이인지를 은근히 자랑하곤 했다.


중고등학생 때는 학식이 나오면 멀리서 김치 상태를 먼저 체크했다. 김치가 맛있어 보이면 밥을 많이 펐고, 맛이 없어 보이면 적게 펐다. 김치의 맛과 식사의 양은 비례했다. 김치가 맛있으면 전체적으로 많이 먹었고, 김치가 없어지면 식사도 끝이 났다. 고등학교 때는 마음에 안 드는 석식이 나오면, 5분 거리의 집으로 뛰어가서 엄마가 한솥 끓여둔 국과 김치를 먹으러 갔다. 나는 먹성이 좋아서 약 4-5끼를 먹곤 했는데, 엄마는 야자를 도망치고 집에 와서 밥을 돼지처럼 먹는 딸을 사실 좋아하셨다. 내가 맛있게 먹어서 밥을 해줄 맛이 난다고 했다. 나는 자주 밥 핑계를 대고 집으로 가곤했다.


부모님 밑에서 김치를 먹다 대학에 들어가 집을 떠나고 나서부터 나는 김치에 좀 더 집착을 하게 되었다.기숙사에 살면서 매 끼니 밥을 사 먹어야 했는데, 대부분의 밥집은 중국산 김치를 제공했다. 그 김치들은 한결같이 인위적인 신맛을 내고 있었다. 가짜김치. 김치가 있어야 밥이 잘 넘어가는 나는 어쩔 수 없이 먹긴 했지만 늘 밥을 먹을 때 마음을 붙이고 먹을 수 없었다. 배가 불러도 먹고나면 얼마뒤 매번 허했다. 엄마는 내가 찐쌀을 먹어서 그렇다고 했다. 늘 집김치가 그리웠고 허기졌다.


대학생활이 끝나고, 자취를 하게 되면서 내 개인냉장고가 생기게 되었다. 엄마는 김치에 환장하는 딸을 위해 김치를 해서 택배를 부치셨는데, 조금만 보내라고 해도 손이 큰 우리엄마는 4인가족이 한달은 먹을수 있는 김치양을 보내시곤 했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살림을 조금씩 하기 시작하며, 나는 김치가 얼마나 힘든 음식인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엄마가 김치를 보낸다고 하면 다시 넙죽 넙죽 아직도 받아서 먹고 있다. 내가 맛있다고하면 열심히 죽어라고 김치를 만들어 아침에 부쳐 다음날 오전에 받는다.


김치 , 엄마 나의 형성이 아주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

마음이 허하면 마치 엄마를 찾듯 김치를 찾았다.

가장 익숙해서 가장 편안한 맛은 나의 삶에 늘 함께 하고 있다.

가장 익숙하고 가장 좋은 김치, 그리고 우리 엄마.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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