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김치가, 만두를 낳고 생긴일

아기를 낳고 자꾸 신에게 기도를 하게 된다

by 짠지

임신을 하고 10개월간, 김치를 역시나 많이 먹었다. 그리고 3.6kg 여아, 옆에서는 입도코도 안보일 만큼 통통한 볼에 뾰족히 솟은 배냇머리 아기를 낳았다. 신생아실에서 눈을 꼭 감고 있는 아기를 봤을때 찐 만두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김치를 많이 먹고 만두를 낳았으니 그 속은 아마 김치로 채워진 ‘김치만두’일 것이다. 지금에서야 우리 딸을, 김치만두라고 부를 수 있지만, 처음 아기를 낳고 얼마간 나는 불안함과 우울감에 쌓인 산후 우울증을 겪게 되었다.


난, 내가 산후 우울감을 겪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애기를 낳기 전부터 아기들을 무척 좋아했고,이제는 나이도 먹고 꽤나 성숙해졌기때문에 산후우울감? 그런건 당연히 없을 줄알았다. 하지만 출산후 내 옆에 놓인 불완전하고 작은 이 존재를 바라보며 앞으로 몇 년, 아니 평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막막했다. 아기를 키운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인데, 왜 아무도 진짜로 어렵다고 귀띔해 주지 않았을까? 엄마도 언니도 이모도 약간 너무 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물론 누군가 말해줬더라도 그때의 나는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지만 말이다.


아기를 낳고 조리원에서도 4일만에 나왔다. 그리고 친정에 만두와 함께 들어갔다. 만두가 울기만 하면 젖을 물렸고, 젖을 물어도 울면 어쩔줄 몰라 거실을 안고 돌아다니고 그래도 달래지지 않으면 같이 울었다. 엄마는 내가 우울증이 온 것 같다고 말했다. 남편은 내가 혹시나 잘 못될까봐 늘 긴장했다. 점점 표정이 어두워지는 나를 보고 남편도 엄마도 자꾸 집 밖으로 나가 한바퀴라도 돌고 오라고 했지만, 나는 애기 곁에 있기도 떨어지기도 싫었다. 그래도 억지로 나가서 늘 걷던 동네 길을 걸었다.

길을 걷다 보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새롭게 보였는데, 모두가 너무 부러웠다. 술집에서 즐겁게 술을 마시는 사람들, 손을 잡고 자유롭게 걸어가는 남녀 커플들, 애들을 다키운 어른들, 내인생에 다시는 애기를 낳기전의 자유로움을 못느낄 것같아 가슴이 답답했다. 그러다 또 주책맞게 모든 사람들의 뒤에는 그들을 키워낸 어머니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나가는 행인들을 보며 눈물을 훔쳤다.


시간이 약이라는 그 답답한 소리가 결국에 답이긴 했다. 조금씩 만두가 나에게 그리고 내가 만두에게 적응해가면서 우리는 서로를 달래는 법을 배웠다. 아기의 울음소리만 들어도 왜 우는지 알게 되었고, 조금씩 재우는 방법도 터득하게 되었다. 사실 아기의 울음은 복잡하지 않다. 졸리거나 배고프거나, 혹은 안아달라는 것, 이 세 가지가 전부다. 이렇게 만두의 마음을 읽으며 우리는 점점 더 친해졌다.


만두는 아직 4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사이 나에게 많은 기쁨을 주고 있다. 시무룩하게 그네를 타고 있다가 내가 만두야~ 말을 걸면 활짝 웃고, 똥을 싼후 물로 씻어주려고 화장실로 갈 때는 이 다음상황을 아는 듯 몸을 들썩이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아침에 일어나면 짭짭, 킁킁 거리며 자기가 깼다는 신호를 보내는데 , 그때 내가 다가가 “잘 잤어?“라고 물으면, 자기를 알아봐 준 게 반가운지 방긋 방긋 소리내 웃는다. 4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만두를 돌보면서 크게 느끼는 것중 하나는 아기의 비율,곡선이 정말 예술이라는 것이다.

어디선가. 아기가 생존을 위해서 진화적으로 귀엽게 발달이 되었다는 설명을 들은적이 있는데 정말 그렇다. 하루종일 전적으로 돌봐야하는데 힘들어도, 얼굴과 몸통이 너무 귀여워서 다시 아기를 안게 된다. 아기를 보면서 사람이 외모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꼈다. 이렇게 예쁘니 하루 종일을 아기에게 내시간을 모두 받치게 된다. 우리 만두의 예술 포인트를 묘사해보자면, 일단 머리가 크고 동그랗고 솜털같은 머리털이 무진장 부드럽다.. 볼이 아주 말랑 말랑한데 아래로 조금 쳐져있고 외부 진동이 있으면 덜덜덜 움직인다. 손과 발은 작은데 손금도 있고 주름과 마디 모든것이 표현되어 있는것이 조금 어이가 없어서 귀엽다. 4개월이면 웃긴게 뭔지도 잘 모를것같은데,반응을 해주면 꽃이 활짝 핀것처럼 아주 커다랗게 웃는다.


남편은 출근 전, 자고 있는 만두를 보면서 “아기는 참 예쁘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살 수 없는, 그 중에서도 능력치가 높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진귀한 인형 같다”고 말했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잘 몰랐지만, 곱씹어보니 무슨 말인지 알 것도 같았다. 그 말이 하루 종일 생각났다. 그리고 나는 정말로 돈도 많지 않고, 뛰어난 사람도 아닌 내가 아기라는 걸 키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고 기도했다.


만두를 낳은 뒤로 요즘 자꾸 기도를 하게 된다. 임신을 한 이후로, 내 의지나 노력과는 상관없이 뱃속에서 아기의 내장이 생기고 팔다리가 자라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인간이 태어나고 자랄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한 창조자에 대한 경외감이 생겼다. 창조자가 정확히 어떤 존재인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을 넘어선 그 초월적인 존재가 분명히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아기를 낳자마자 젖이 돌고, 그 젖 하나로 3.6kg의 아기가 7kg까지 무탈하게 자라는 것을 보며 내가 키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랄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이 말도 안 되는 시스템에 경외감을 느끼게 되었다. 결국 아기를 키우는 것은 내가 아니라, 이 지구와 바람, 에너지, 햇살, 그리고 모든 것들이 아기를 자라게 하는 에너지, 혹은 창조자의 손길이라고 생각한다. 아기가 이유 없이 칭얼거릴 때면 나는 프로그래머에게 묻는다. “우리 아기, 어떻게 해야 하나요? 뭘 해줘야 하나요?” 물론 답이 오진 않지만, 내 느낌대로 따라간다. 어쩌면 그게 프로그래머가 미리 짜놓은 내 본능일지도 모른다.


최근들어 매우 신앙적이고, 아주 겸손해진 나는 김치만두를 안고 밤잠을 재우며 기도한다.

“오늘도 우리 만두가 건강한 하루를 보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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