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를 낳기로 마음먹은 이유

by 짠지

아기를 낳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 시대다. 4개월 아기를 키우고 있는 나는, 주변에 미혼이고 기혼인 가끔 친구들에게 질문을 받는다. "너는 어떻게 애기를 낳을 결심을 하게 되었어?" 사실 큰 결심이 있었던 것은 아닌데, 그럼 별 생각 없이 낳기로 한 계기가 무엇이었을까 돌아보았다. 그 이유는 첫번째로는 엄마, 두번째로는 이모, 세번째로는 언니 이렇게 내 주변 여자들의 삶을 통해서 마음을 먹게 된 것같다.


이십 대 대학을 다니고 있을 때, 주말에 잠시 고향에 내려가서 밥을 먹고 쉬러 다녀오곤 했다. 엄마는 내가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먹고 싶은 목록을 미리 말하라고 하셨다. 그러면 내려가기 전에 모아두었던 먹고 싶은 리스트들을 말했다 “시래깃국, 닭 삶아서 파 싸 먹는 것, 집김밥…등등 “ 손이 빠른 엄마는 장을 한껏 봐다가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까지 열심히 해먹이셨다.


그러다 어떤 주말, 월요일 아침 기차를 타고 올라가려고 나는 일요일 저녁 일찍 잠자리에 누웠다. 새벽 1-2시에 부엌에서 소리가 나서 잠결에 일어 나가보니 , 엄마는 내일 새벽기차에 아침대신 먹기 좋을 감자샌드위치를 그 밤에 덜그럭 덜그럭 소리를 내며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새벽에 잠에서 깨서 거실로 나가 엄마에게 왜 이렇게 고생을 해 안먹어도돼~~ 하고 다시 침대에 가서 누웠다. 다시 잠을 청하려고 침대에 누운 나는, 갑자기 나는 늘 받는 이 흔한 사랑에 대해서 생각을 했다.


앞으로 내가 만날 어떤 사랑도,
엄마만큼 나를 진짜로 사랑해 줄 사람은 없을 거라는 확신과 함께
엄마의 고생이 헌신이라기 보다, 자식이라는 존재에게
무한한 사랑에 푹빠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애인을 좋아할 때 계속 뭘 해주고 싶어 하는데, 엄마는 나를 낳은 뒤로 그게 평생으로 지속되는 것같았다. 끝나지 않을 그 열렬한 사랑이 , 고되기 보다는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사랑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생기는 게 자식이고, 질리지 않고 계속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건 삶을 풍성하게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도 끝까지 사랑할 수있는 존재, 즉 자식을 낳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내가 아기를 낳기로 결심한 데는 또 우리 막내이모의 말이 컸다. 이모는 늘 자식은 꼭 낳으라고 주장했다. 이모는 아들만 둘인데, 중고등학생시절부터 지금까지 사촌동생들이 커가는 과정을 자주 지켜본 바로 육아 난이도가 최상에 이렀다. 아직도 자식걱정으로 힘든데 왜 늘 아기를 낳으라고 하는 걸까? 같이 지옥불로 가자는 뜻일까? 언젠가 이모에게 이모 자식을 낳는 것을 왜 추천하냐고 물었다. 이모는 ”속을 더럽게 썩여도 엄청 귀엽다 “고 했다. 나는 “어렸을 때 말고 지금도?”라고 물었다 “그럼! 속 썩이고 지랄해도 사실 귀엽다 “고 했다.” 사실 아주 많이 놀랐다. 이모한테 툴툴거리기만 하며 사고를 치는 저 커다란 남자애가 아직도 이모눈에는 귀여운 것이 놀랍고, 한편으로는 이모의 여유가 좋아 보였다. 그리고 이모는 덧붙여 애를 키우는 것만큼 뿌듯한 게 없다고 했다. 또 사람은 잘 안 바뀌는데 육아만큼 사람을 바꾸고 성장시킬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내 기준, 육아난의도 최상의 양육자가 그래도 자식을 낳는 것이 뿌듯하고 여전히 귀엽다 하니 그 말을 실험해 보아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가장 근래에는 언니의 아들 , 조카를 보면서 마음을 먹었다. 언니가 미국에서 아기를 낳았고, 100일쯤 만난 나의 첫 조카에게 나는 미친 듯이 빠졌다. 너무 작고 불완전한 이 아기를 내 옆에서 한두 밤을 자고 나니 나는 이 아이를 지켜야겠다는 미친 사명의식이 뿜어져 나왔다. 형부 언니 모두 건강하지만 혹시 우리 언니가 만약에 죽으면, 내가 우리 조카를 거둬야지 혼자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 떠나기 3일 전부터 조카를 보면 눈물이 흘렀다. 한국에 와서는 언니가 보내주는 모든 사진을 스크랩하고, 업무시간 중 사진과 영상이 오면 모든 일을 스탑하고 몰래 화장실로 가서 돌려보고 돌려봤다. 나도 내가 심각하다고 생각한 사건은 술을 먹고 취해서 애기가 너무 보고 싶어서 우는 미친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퇴사를 하고 미국에 가서 조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내가 돌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는데 언니가 징그러우니 그만하라고 해서 참았다. 내가 미국에서 살 수 없다면, 조카를 일 년에 많아야 한번 볼 수밖에 없으니 계속 가슴이 아플 것 같아서, 나도 우리 집에 저렇게 귀여운걸 얼른 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이 상사병이 끝날 것같았다.


그렇게 나는 아기를 낳아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올해 6월 출산을 하게 되었다.

나의 딸 만두가 커서 이 글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저런 짧은 생각으로 이 험난한 인생을 살게 나를 던져두었다고? 라며 욕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이 글을 읽고 비소라도 지어준다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 딸도 인생을 살면서 그리고 나를 보며 자식을 낳고 싶어 한다면 뿌듯할 것 같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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