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만 2곳을 졸업했다. 학부만 8년에 휴학 1년 졸업유예 반학기를 하게 되며 29살까지 대학교 기숙사에서 살았다. 지금에 와서야 내일 배움 카드나 진로를 결정하는데 다양한 방법이 알게 되었지만, 그때는 잘 몰라서 다시 학교를 가는 방법을 택했다. 그렇게 나는 29살 6월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기숙사에서 살았다. 그때의 난 자취를 하기 위해서 필요한 목돈이나, 월세를 낼 수 있을 정도의 여유는 없었다.
8-9년의 시간 동안 기숙사 죽순이는, 한 번도 내 냉장고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나에게 주어진 냉장고란 층마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냉장고가 전부였다. 학식 또는 대학가 주변 값싼 밥집에서 끼니를 해결하던 나는 집 김치와 집밥이 참 그리웠다. 그래서, 고향에 갔다 올라오는 날엔 맛있는 김치를 한통 가지고 올라오거나, 혹은 엄마가 김치를 기숙사로 부쳐주곤 하셨다.
기숙사를 살아본 사람들은 아마 공동 냉장고의 상태가 어떤지 알 것이다. 썩어가는 음식과 새로 들어온 음식이 한데 영켜져 있으며, 외국 학생들이 고향음식을 해 먹으려고 준비한 이국적인 식자재들과 먹다 남은 배달음식과 다이어트식품과 유통기한 지난 유제품이 뒤섞여있고, 음식물이 흐른 자국이 끈적이곤 했다. 나는 그 틈에 내 이름표를 붙인 김치를 꾸역꾸역 박아두었다. 관리가 안된 냉장고에 내 반찬을 넣기 위해서는 테트리스를 잘하거나, 혹은 기억을 잘해야했다. 열무김치는 1번 냉장고 맨 아래칸에, 배추김치는 2번 냉장고에 문쪽에 넣는 식으로 넣어야 했고, 가끔 나는 내 반찬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안 먹다가, 나중에 맛이 간 채로 발견되는 반찬봉지를 보면 가슴이 아팠다.
그래도 김치와 밑반찬들을 있으면 며칠은 밖에서 밥을 사 먹지 않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손이 큰 우리 엄마는, 엄마는 친구들과 나눠 먹으라고 더 푸지게 만들어서 보냈다. 엄마에게 아무리 작게 보내라고 해도 엄마는 그게 절대 안 되는 사람이었다. 엄마는 전혀 이해를 못 했지만 사실 기숙사에서 서로 반찬을 열어두고 먹는 문화는 거의 없었다.
우걱우걱, 기숙사 공동식당에서, 엄마 김치와 반찬을 꺼내 우걱우걱 밥을 먹었다. 엄마가 준반찬을 다 먹어치우기 위해서 나는 다들 배달음식을 시켜 먹을 때 반찬을 한가득 꺼내서 밥을 먹었다. 미처 꺼내지 못한 김치가 부풀어 빵빵 해져있을 때 나는 조금 더 조급해서 더 우걱우걱 먹었다. 착한 우리 엄마. 그리고 우걱우걱 먹다가 우량해졌다. 마음와 호주머니가 가난했던 나 , 그리고 기숙사의 냉장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