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행 김치 캐리어
우리 언니는 어렸을 때부터 미국 유학을 꿈꿨다. 솔직히 말하면 넉넉지 않은 우리 집 형편에 실현 가능성이 낮은 꿈이었지만, 결국 우여곡절 끝에 언니는 그토록 바라던 유학을 떠났다. 언니가 미국에 들어갈 갈때, 가족들 중 한명도 언니에게 가보지 못했고 떠난지 1년 쯤 되던 해에 표값을 마련해 엄마와 언니를 만나러 갈 준비를 했다. 언니 역시 나처럼 김치를 좋아하는 사람인데, 그중 첫번째로 엄마표 김치만두가 먹고 싶다고 했다. 그 외에 먹고 싶은 리스트들을 계속 카톡방에 올렸다. 엄마는 하루 하루 아이템을 모으듯 언니에게 보내들 물건을 쟁였다.
출국 전날, 엄마는 150초반대 작은키에 양손 캐리어를 2개에 배낭을 메고 올라오셨다. 캐리어를 열자 배추김치는 한쪽면에 켜켜히 누워있고 반대쪽엔 고춧가루와 각종 건어물과 말린 나물로 채워져있었다. 김치만두용 김치 소도 얼려서 챙겼는데, 언니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만두를 빚어주려고 준비해오셨다고했다. 엄마의 캐리어 안에는 온갖 식재료만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고, 정작 엄마의 옷은 두어 벌이 전부였다. 옷은 가서 언니 거 빌려 입으면 된다며 최대한 언니에게 주고 올수 있는 걸 챙기셨다..
13시간 비행 후 공항에 마중 나온 언니와 눈물의 상봉을 하고 바로 언니네 학교 기숙사로 향했다. 언니는 긴 비행을 마쳤으니 뭘 먹고 가자고 했지만 엄마는 빨리 집에가서 김치만두를 해주고 싶다고 하셨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엄마는 짐도 풀지 않고 무서운 속도로 밀가루 반죽으로 하고, 만들어온 김치만두소를 넣고 만두를 빚기 시작했다. 찬물에 식힌 뜨끈한 김치만두가 언니 입으로 들어가자 언니는 감탄했다.
“ 엄마 진짜 죽인다 너무 맛있어.”
마치 오랫동안 굶은 딸에게 먹이는 것처럼, 엄마는 전투적이으로 김치만두를 빚어 먹였다. 그리고 그걸 좋아라 먹는 우리 언니를 바라보며 엄마는 참 행복해 하고 뿌듯해하셨다.
엄마는 미국에서 언니가 영어로 커피도 주문하고, 주변 이웃과 이야기를 나눌때마다 감탄하며 대견해하셨다. 사람들을 만나면 아이엠 보미 마더라고 본인을 소개하고, 기숙사로 초대해 한국음식을 대접하셨다. 특히 한인들에게는 가지고온 김장김치를 선물해주며 고향의 정을 나누셨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날이 다가오자, 엄마는 김치 더 해놓고 떠나기 위해 한인마트를 가자고 하셨다. 미국에서 처음보는 배추에 “ 이놈의 미국 배추는 참 히안하다.”며 사오셔서, 기숙사방안에서 배추를 소금에 절이고 한국에서 가지고온 고추가루를 뿌려 김치를 담그셨다. 그리고 혹시라도 언니가 미국에서 굶어 죽을까봐 갖은 반찬들을 출국 전날까지 만들어 댔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던 날 엄마는 어린아이처럼 우셨다.
한국에 돌아온 엄마는 영어공부를 시작하셨다. 엄마는 동사무소에서 하는 영어교실 에 등록을 하셨고 숙제를 해야한다며 돋보기 안경을 쓰고, “The Little Mermaid(인어공주)” 책을 소리내 읽으셨다. 줄을 긋고 단어 밑에 뜻을 쓴 우리엄마의 책을 보는데 괜히 마음이 따끔거렸다. 엄마에겐 괜히 “인어공주 책으로 영어공부를 해서 미국에가서 뭘 말하겠어 걍 때려쳐” 라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그 후로도 지금까지 꾸준하게 영어 공부를 하고있다.
그후로 언니가 이사를 한대서, 잠을 계속 못잔대서, 비자가 안되서 못들어온대서, 아기를 낳아서, 둘째를 낳아서 등등. 첫 미국 방문 이후, 엄마는 언니에게 무슨일이 생기면 미국으로 달려가셨다. 그때마다 식자재를 꽉채운 캐리어 두개에 배낭을 하나 매고 리무진 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오신다. 그리고 미국에 가서 호강은 커녕 하루 종일 언니와 조카들 뒷바라지를 하느라 한국에 오면 늘 골병이 나는데, 언제든 달려가신다. 엄마가 미국을 가시는 날이면 , 나는 공항으로 엄마를 마중 나간다.
“엄마, 자 입국심사할때 퍼포스(purpose) 뭐라 뭐라 말한다 하면 뭐라고 답하라고?“
“비코즈 마이 다러 하우스“
“....그래 그정도만 말해도 알아들을거야.”
“오케이”
엄마는 김치를 왕창 끌고 미국으로 떠나신다.
'비코스 마이 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