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은 나를 돌보고 , 나는 아기를 돌보고

by 짠지

아기를 데리고 고향집에 내려와 부모님과 몇 주간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제는 부모님이 약속 때문에 근교 카페를 가셨다가, 약속을 마치고 나를 데리고 다시 30분 넘게 걸리는 카페로 가주셨다. 내가 분명히 좋아할 것 같아서 꼭 가야 한다고 했다. 급하게 애기 귀저기 가방을 싸고서 , 대충 머리를 묶고 세수도 안 한 얼굴로 차에 올라탔다.


카페로 가는 길은 예전에 학창 시절 부모님이 드라이브를 시켜주시던 시골길 근처에 있었다. 나는 오랜만에 기분을 낼 겸 달리는 차 안에서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틀었다. 엄마는 나에게 아직도 지 맘대로 노래 트는 것이 여전하다고 했다. 어릴 적 차에 타면 엄마 아빠의 취향은 고려하지 않고 동방신기와 비 앨범을 주구 장창 틀곤 했다. 아빠는 듣다 듣다, 이제는 내 노래 좀 듣자라고 하면 나는 잠깐 동안 아빠가 원하는 곡을 듣게 해 드렸다. 어제는 원래 아빠의 플레이리스트였다가 이제는 내 플레이리스트이기도 한. 이문세 ,김광석, 이은하 노래를 차에 틀고 옛 추억에 잠겼다. 언니와 내가 학업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하여 , 야자후 부모님이 차를 태워 바람을 쐬주던 날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때 창밖을 보며 느꼈던 감정들도 기억났다.


오랜만에 예쁜 카페에 가니 참 좋았다. 나는 돼지처럼 빵과 라떼를 들이켜고 멍을 때렸다. 엄마는 나 혼자 카페를 즐기라며 나를 카페에서 제일 좋은 자리로 빨리 가라고 했다. 엄마는 내가 카페에서 멍을 때리는 동안 애기를 안고 서성이셨고 , 아빠는 혼자 앉아 있는 나를 자꾸 디에스엘알 카메라로 멀리서 찍으셨다. 나는 손가락으로 그만 찍으라고 엑스를 보였다.


집으로 돌아와, 거실에 애기와 나는 누워있고 컴퓨터로 아빠가 아까 찍은 사진을 같이 보았다. 카페에서 내가 아기를 안고 웃고 있는 사진이 있었다. 그 사진을 바라보는 아빠를 보며 딸이 딸을 낳아서 키우는 걸 보는 느낌은 어떤 기분이냐고 물었다. 아빠는 대견하다고 했다. 그리고 한세대가 가고 다음 세대가 시작되는 기분이라고 하셨다.


엄마 아빠가 나를 위해서 살아오셨던 그 세월이 흐르고 ,이제는 내가 다시 이 아기가 자라고 성장하고 자기 몫을 해낼 때까지 보살펴야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부모님이 나의 영유아기,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취업 시기를 옆에서 지켜봐주고 도와주시던 걸 내가 다시 해야 한다니. 가슴이 조금 묵직하고 부모님의 그간의 노고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효녀 같은 생각은 이렇게 글을 쓰는 시간에 찰나에 잠깐 왔다 간다. 실상은 오늘 아침엔 애기 낮잠 깬다고 기침 크게 하지 말라고 아빠 혼을 내고, 엄마는 왜 수건 젖은 걸 빨래통에 넣냐고 혼을 내고 , 엄마 아빠는 왜 그걸 진작에 그렇게 안 했냐 툴툴 댄다. 그러다 기분이 좋아지고 미안해지면 엄마 아빠에게 "내가 말야 00이 되면 000원을 줄께"와 같은 헛소리만 늘어 놓는다.

아직도 애를 키우고 있는 나를, 여전히 돌보는 엄마 아빠,

그리고 애를 키운다고 으름장 놓고 있는 나…


참 멀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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