ㄴ..내가 ㄴ..난임이라니... (※ 긴 글 주의 ※)
브런치에 신혼일기를 열어놓고 지금껏 사라졌던 이유는, 지난 2년간 난임 극복에 모든 에너지를 쏟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남편과 31살에 만나, 34살에 코로나 중에 캐나다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때 바로 임신 준비에 들어갔어도 모자랄 판에 뭔 자신감인지, 다음 연도 한국 결혼식까지 올리고 임신을 하겠다고 1년간 피임을 열심히 했더랬다. 주기가 남들에 비해서 일주일 정도, 37-38일로 길긴 했지만 나름 규칙적이기도 했고, 항상 건강검진에서 좋은 결과를 받았기 때문에, 내가 난임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식을 올린 후, 약 1년을 배테기에 의지해 자연스럽게 시도해 봤지만 나의 비정한 임테기는 번번이 깔끔하게 한 줄이었다.
혹시나 임테기가 불량 인가 싶어서, 회사별로 다 사서 해봤지만... 다들 담합이라도 한 듯이 깨끗한 한 줄로 나를 비웃었다.
정말 정말 혹시~나 해서, 요리보고 저리보고 빛에 비춰보고 반전을 시켜봐도 한 줄.
그 사이 스트레스 때문이었을까, 생리 주기는 45-50일까지도 늘어나있었다 ㅠㅠ 한국에서 식을 올릴 때쯤 해서 풀타임 정규로 새로운 포지션을 시작하게 되어서, 이게 일 때문인 건지 난임 때문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 매 주기마다 기대에 부풀었다가 나락 치는 실망을 반복할 수 없기에, 2023년 8월 패밀리 닥터에게 난임 클리닉 리퍼를 부탁했다.
직장과 집에서 10-15분 거리에 있는, 나의 많은 동료들이 추천해 준 클리닉에서 회신을 받기까지 두세 달 걸렸던 것 같다. 패닥이 오더한 각종 검사와 난임 클리닉에서 오더한 각종 검사를 마치고 난 후, 또다시 서너 달을 기다려 2024년 3월쯤에야 난임 클리닉 주치의와 첫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캐나다의 의료시스템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결과적으로 모든 피검사가 다 정상이었고, AMH는 29.4(무슨 단위인지는 모르겠음)로 굉장히 많은 희망이 있다고 주치의가 말했다. 정확하게 그는 "There is lots of hope!"이라고 말했다. 단 하나의 문제는 fibroid가 있다는 것 정도? 처음에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넘 놀라서 눈물을 흘렸지만ㅠㅠ 꽤 흔한 거라 하고 내 fibroid는 자궁 바깥쪽에 위치해 있어서 임신에는 영향이 없을 거라고 해서, 큰 걱정 없이 인공수정으로 난임치료를 시작하게 되었다.
남편 역시 샘플 검사에서, 크게 문제 되는 부분을 발견하진 못했다. 그냥 조금씩 느리거나 조금씩 찌그러진 정도? 그렇기에 난 확신했다. 아 담달엔 애기가 내 뱃속에 있겠군!
생리 3일 차부터 레트로졸이라는 배란에 도움을 주는 약으로 프로세스를 시작했다. 2.5mg씩 9일간 복용 후, 배테기를 확인해서 LH가 피크에 도달하면 클리닉에 연락하게 되는데, 그러면 당일인가 담날엔가 남편의 정자를 오전에 채취하여 잘 씻은 후에 (sperm wash라고 했던 거 같음) 내가 오후에 내원하면, 나에게 주입하는 시스템이었다. 꽤 간단한 절차였고, 약 부작용도 없어서 순탄하게 흘러가는가 싶었다. 그러나, 나의 긴 생리주기가 문제였을까. LH 피크까지 2주가 걸렸다...
비슷한 시기에 나와 인공수정 절차를 시작한 직장동료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나와 반대로 생리주기가 21일이었는데, 나보다 늦게 절차를 시작했음에도 나보다 빨리 한 사이클을 끝냈다. (이러기 있음?)
게다가 인공수정 당일, 새로 온 간호사여서인지, 카테터를 넣을 길을 잘 못 찾아서 몇 번을 시도하다 결국 더 경력 있는 간호사 분을 불러와서 우여곡절 끝에 첫 시도가 10여 분 만에 끝났다. 그 간호사는 진짜 오자마자 쓰윽- 넣었다... 그 당시에는 꽤 트라우마틱했지만, 나름 짧은 시간이었고, 뭐 딱히 약 부작용도 없었기에, 이후 전개된 일들에 비하면, 이 프로세스는 정말 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 비하면 비싸지만, 시험관에 비하면 가격도 1/20 수준이니. 이 프로세스는 천사다. 약값이 $40 정도, sperm wash를 포함한 인공수정 전체 사이클 비용이 딱 $1,000이었다. (2024년 기준)
그러나 내게 임신의 길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임테기를 요리보고 저리 봐도, 아~주 깨끗하게 한 줄. 다른 한 줄이 나타나야 할 곳이, 이렇게 새하얄 수가 있을까? 정말 얘네들 두줄이 만들어지도록 설계된 게 맞나? 내 거만 잘 못 나온 거 아닐까?
나는 혈관이 얇아서 피 뽑는 것도 고역인데... 난임센터 간호사에게 "나 임테기 비임신으로 나오는데 피 안 뽑으면 안 돼?"라고 메시지를 날렸지만, 간호사는 간혹 늦게 착상이 되기도 하고 fake negative일 수 있으니까 우선 예정대로 피검사는 가라고 답장을 받았다. (나도 제발 그랬으면 좋겠어....)
예상대로 결과는 hcg level <1. 1도 안 됐다는 건 아마 착상도 안 됐다는 거겠지. 충격적이긴 했지만, "한 번에 되는 건 로또랬어!"라고 생각하며 훌훌 털고 다음 사이클을 준비했다.
그러나 2024년 7월 8일 호기롭게 실시한 두 번째 인공수정도....

두 번째 사이클은 충격이 컸다. 왜냐면, 같이 인공수정을 하고 있던 직장동료가 임신이 되었기 때문이다. 너무너무 기뻤지만, 슬펐달까? 그녀의 기쁜 모습이 너무 기뻤고 마음 깊이 축하했지만, '난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라고 계속 자책하게 되는 나 자신을 숨기기 위해, 직장에서 울지 않기 위해 엄청 힘내야 했다. 집에 와서 남편 가슴에 얼굴을 묻고 "너무 부러워엉어어어엉 ㅠㅠㅠㅠㅠㅠㅠㅠ"하고 엉엉 울었다.
다른 클리닉에 다니는 동료와 나의 프로세스를 비교해 봤더니, 해당 클리닉에서는 레트로졸 복용 후 배테기와 함께 초음파를 통해 난포가 크고 있는지 모니터링을 계속한 후, LH 피크가 되면 배란이 확실하게 되도록 트리거샷을 맞고 다음 날 인공수정을 한다는 점이었다.
'에? 나는 LH 피크 찍으면 내가 알아서 연락해서 투입받고 땡인데? 클리닉 옮길까?'라고 생각했지만, 또 첫 상담까지 6개월 걸릴걸 생각하면 넘 까마득해서... 우리 클리닉에 "나 다음 사이클에 난포 모니터링 해줄 수 있어?"라고 했더니 $300 내면 해준다고 했다.
그.. 그래? '이걸 너네는 돈 받고 해???'라고 생각했지만, 난포가 커가는 걸 보면 뭐라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쫄지 않고 말했다.
"오케! 진행시켜!"
그렇게 2024년 7월, Follicular monitoring ultrasound(난포 관찰 초음파)를 추가한 사이클을 시작했다. 그를 통해 알았다. 와- 내 난포는 진짜 드럽게 더디게 자라는구나. 이래서 생리주기가 45-50일씩 되는 거구나. 내 동료는 어제 갔다 오늘 가면 2-4mm씩 커있다는데, 내 난포는 일주일에 1mm씩 자랐다. 결국 완전 크게는 못 키우고 LH Peak이 와서 18mm엔가 이식을 했던 것 같다. 잘 기억이 안 남.
이 모니터링을 하면서, 나는 전원을 결정했다. 아침 9시 25분 출근시간에 맞춰 8시 첫 타임에 초음파를 잡아놨는데 40분을 기다려도 이 닥터가 안 오는 거다. 결국 베드에서 내려와서 나 가야 할 것 같아. 출근해야 해...라고 했더니 간호사가 자기도 볼 수 있다며, 크기 체크를 재빨리 하고 출근했다. 클리닉 리뷰에 배아 이식날 한참을 기다리느라 소변을 못 참아서 그 스트레스에 이식에 실패한 것 같다는 리뷰가 오버랩되면서, 난 이 클리닉의 시간관리 시스템을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 내가 워크인을 온 것도 아니고, 내는 돈도 한 두 푼이 아닌데...
내 동료는 같은 클리닉에서 인공수정 첫 사이클에 임신-출산, 또 다른 동료는 시험관 첫 사이클에 임신-출산을 했기 때문에 클리닉이 안 좋다는 건 아니다. 단 신뢰의 문제일 뿐!
어쨌든, 세 번째 인공수정도 실패. 네 번째 인공수정을 갈 것인가, 시험관을 갈 것인가의 기로에 섰다. 우리 주치의는 인공수정을 여섯 번까진 해봐도 괜찮지만, 수치상 이건 unexplained infertility라면서 시험관을 권유했다. 하지만 당시 난 이미 전원을 위해, 다른 클리닉 online family doctor를 통해 셀프 리퍼럴을 해서, records release가 진행 중이었지.
다른 클리닉 첫 상담이 10월 초로 잡혔고, 9월 말에 일본/한국 여행이 예정되어 있어서, 네 번째 인공수정을 해볼 건지 말 건지가 관건이었다. 대충 계산해 보니 생리 주기가 인공수정 한 사이클을 더 해볼 수 있을 것 같아, 마지막 트라이를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러나 인생은 항상 예정대로 흘러가지 않지. 이번 난포는 정말 세월아 네월아 자라서, 피크까지 3주가 걸리는 바람에 결국 못하고 가는 건가? 했으나, 가까스로 9월 21일에 4차 시술을 한 후, 9월 22일 일본으로 떠나게 된다.
임테기 두둑하게 챙겨서 일본 도착. 계속해서 테스트를 했지만... 계속해서 깔끔한 쓴맛만을 보고. 난 그냥 최선을 다해 여행을 즐기기로 한다. 젠장, 그냥 $1,000불 아껴서 맛집 10군데 더 갈걸.
연초에 여행을 계획하면서, 임신 준비 중에 이걸 가? 말아? 하고 엄청 고민했었는데. 만약 임신이 되면 기쁘게 여행을 취소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임신이 안되면 여행 못 간 거 넘 억울할 것 같은 마음에 여행을 가기로 마음을 먹었었다. 결과적으로 옳았다. 우쒸- 임신도 못했는데 여행이라도 와서 맘껏 먹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4차 실패는, 하루 종일 걷고, 먹고, 마시느라 우울할 틈도 슬퍼할 틈도 없었다. 다행-
사실 난 난임클리닉만 다니면 다 해결될 줄 알았다. 석사학위가 필수인 여초 직장인 데다가, 정규직 대기가 길고, nerd들이 모여있는 직종 특성상, 늦게 결혼하고 늦게 임신하는 경우가 직장 내에 워낙 많고 (70% 정도?), 난임클리닉을 통해 한 방에 쉽게 성공한 케이스들만 있어서...
그치만, 어림없지. 내 삶이 이렇게 쉽게 풀릴 리가 없지.
이렇게 네 번의 인공수정 실패를 거쳐,
다 괜찮았는데, 내 나이 31살 아직 남편을 만나기 전. 교회 모임 중, 동갑내기 교회 친구에게 "너 오늘 결혼해서 임신해도 노산이야."라는 말을 듣고 '뭐 저런 birdㄲ가 다 있지?'라고 생각했는데. 걔 말이 맞았던 거를 증명해 준 거 같아서 넘 분할뿐.
하지만, 사실 내 주변에는 30중 후반부터 45세까지 자연임신-출산한 케이스들이 많다. 그냥 내가 운이 나빴던 거라 생각한다. 그게 아니면, 내 성격이 하도 지랄맞고 예민하고 까탈스러워서, 인내심 좀 기르라고 준비시킨 거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이게 맞는 듯. 뭐 이유야 어찌 됐건, 운명을 받아들이고 나면 평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