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쉬운데?
원래 첫 미팅은 다른 닥터였고, 2주 정도 더 뒤였는데. "나 11월에 당장 시험관 들어가고 싶어, 미팅을 좀 앞당겨줄 수 있어?"라고 했더니. 10월 초 병원장 닥터와의 미팅으로 땡겨 잡아줬다. 넘 좋았다. 십 대 딸 두 명을 해당 닥터를 통해 시험관으로 낳은 직장 동료가, "That guy knows what he's doing."이라며 꼭 그 닥터한테 가라고 했었기 때문이다. 그런 거 부탁 잘 못하는 나는 그냥 잊고 있었는데, 우연히 해당 닥터로 배정이 되었다. 럭키!
새 주치의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을 설명해 줬다. 지금까지 히스토리를 본 결과 그냥 배란보조제만 사용했었기에, 이번엔 과배란 약을 사용해서 여러 개의 난포를 키운 후에 인공수정을 해볼 수 있고, 그게 아니면 바로 시험관을 할 수 있다고 했던 것 같다. 워낙 심플한 인공수정 프로세스에 잠깐 흔들렸지만, 이미 굳게 먹은 마음. 난 바로 시험관을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다음 사이클에 시작할 수 없었다. 더 중요한 일을 해야 했다.
병원을 옮기면서 초음파를 새로 했는데, 용종이 하나 발견된 것이다.
와- C- 진짜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
울고 싶었다...

다행히 난임 클리닉에서 용종을 먼저 봐주겠다고 했는데, 크기가 작으면 여기서 떼주지만 크기가 크면 산부인과에 리퍼해서 떼고 와야 한다고 했다. 이 나라에서 전문의 리퍼는 기본 6개월인데, 아 그거 또 언제 기다려 ㅠㅠㅠㅠㅠㅠㅠ
1시간 전에 타이레놀 두 알 먹고, '제발 크기야 작아줘-'라고 열심히 기도하고 베드에 누웠는데...

나팔관 조영술도 "아, 이거 쫌- 아픈딩?" 정도로 넘어간 나였는데... 정말 이 프로세스가 시험관의 모든 프로세스 중에 제일 아팠다.
다행히, 내 폴립 사이즈가 작아준 덕분에 클리닉에서 떼주겠다고 했는데. 결국 생각해 보면, 아무런 마취 없이, 고작 타이레놀 두 알로 생살을 뜯어낸 것이다. 처음 겪어보는 통증에 악- 소리를 질렀더니... 간호사가 "좀만 참아. 이거 여기서 떼는 게 좋아. 잘하고 있어. 할 수 있어." 라며 손에 스트레스 볼을 쥐어줬다. 여기서 못 떼면 산부인과 6개월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고 생각하니, 참아졌다.
이걸 하고 나니,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
생리가 시작하면, 프로세스가 시작된다. 나의 경우:
생리 1일 차부터 2주간 피임약 복용.
피임약 끊은 후, 생리가 시작되는 4일 차부터 과배란 주사 시작.
과배란 1일-5일 차: 아침 Rekovelle 10.00 mcg, 저녁 Menopur 150 IU 주사
6일 차: 아침에 Cetrotide 0.25 mg 주사 추가, 그리고 첫 피검을 통해 estradiol을 체크하게 된다. 피검 결과에 따라, 저녁 Menopur 용량이 150에서 75로 용량으로 조절되었는데, 아마 약빨이 과하게 잘 들었던 것 같다.
7일 차: 첫 초음파를 본 후, 저녁 Menopur 용량이 150으로 다시 증량. 애들 사이즈가 괜찮았나 보다.
9-10일 차: 연달아 초음파를 본 후, 10일 차 아침 주사를 끝으로 과배란 주사 종료.
10일 차 저녁: 트리거샷 준비.
저녁 7시에 Cabergoline 알약 0.50 mg 복용. 이건 난포가 많아서 난소과자극 증후군(OHSS) 방지 목적이라고 들었던 것 같다.
정확히 11시 30분에 Pregnyl 2500 IU, Decapeptyl 0.2 mg (주사 두방, 디지게 아픔ㅠㅠ)
11일 차: Cabergoline 알약 한 알 더 복용.
12일 차: 2025년 1월 24일 오전 10시. 대망의 난자 첫 채취.
남편은 오전 7시 30분에 미리 정자 채취.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2025년 새해에 갑작스럽게 영국여행을 가게 되었다는 점. 남편의 베프가 영국에서 주재원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2025년 여름에 계획보다 일찍 귀국하게 되어 우리를 초대했기 때문이다. 당시엔 왜 이렇게 갑자기?라고 생각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나중에 밝혀짐.
암튼 어차피 그 기간은 피임약만 복용하면 되는 기간이기에, 시댁에 머물던 때부터 피임약을 시작해서 시차만 잘 맞춰서 매 24시간 주기로 몬트리올 저녁 5시, 런던 10시에 약을 먹었다. 거지 같은 런던의 대중교통 시스템과 사악한 가격으로 인해 걷고 또 걷고, 또 걷고, 물이 준비가 안돼있을 때가 종종 있어서 약 시간을 놓칠 때가 있긴 했지만... (내 걸음으로 20분 거리인데ㅠㅠ 택시 기사가 그 거리를 택시를 타냐고 비웃으며 태워주지 않았다. 고관절이 빠질 거 같은디요ㅠㅠ?) 거의 제시간에 맞춰 잘 챙겨 먹었고, 딱히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러나, 여기서 내가 했던 가장 큰 실수는, 이게 내 마지막 자유라고 생각하며 음주를 좀 했다는 것? 아직 난포를 기르기 전이라고 생각하고 연말연시 분위기에 취해서 잘 놀고 잘 마셨다는 것? 해봤자, 이틀 정도 남편의 맥주 파인트를 홀짝홀짝 뺏아먹은 정도였는데. 지나서 생각해 보니 참 어리석었던 것 같다.
꼭 술과 밤늦게까지 돌아다닌 게 패인이라고 볼 순 없지만, 시험관 준비하는 사람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당신은 꼭 금주하시고 저녁 10시 이전에 잠을 자도록 합시다ㅠㅠ
역시 딱히 어렵지 않았다. 주사 비디오를 보고 또 보고 긴장됐던 순간이 있었지만, 그것도 몇 번 해보고 나니 이제 비디오 안 보고도 척척. Rekovelle과 Menopur는 전혀 아프지 않았다. 이 날을 위해 난 배에 지방을 모아 왔던 것인가? 단, Cetrotide는 좀 따끔하고, 맞고 나면 항상 주변이 빨개지면서 간지러웠다.
남들 보면 남편이 놔주기도 하던데, 나는 남편의 위생관념을 믿을 수가 없기에... (남편 미안) 내가 그냥 직접 놨다. 나는 우리 집 공식 왕엄살쟁이인데, 생각했던 것보다 막 아프진 않았다.
먼저 이 길을 걸었던 친구가 말해주길, 이게 아픈 게 알콜솜으로 문대고 나서 바로 주사를 놓으면 아픈 거 같다고 해서. 난 항상 알콜이 다 마르고 나면 맞았는데 (엄살쟁이라, 어차피 주삿바늘 찌르기까지 시간이 걸림) 그게 정말 엄청난 팁이었던 것 같다.
단지, 일주일에 하루는 저녁 근무가 끼어있어서, 항상 같은 시간, 12시간 차이 지키는 게 약간 귀찮았을 뿐. 그치만 앞뒤로 1시간 정도 차이는 괜찮다고 해서 그냥 그것도 최대한 맘 편히 맞으려 했다.
첫 초음파에서 닥터가 말하길, 약에 아주 잘 반응하고 있다며. 10개의 난포가 뷰티풀 하게 자라고 있다고 보여줬다. 정말 칸이 일정하게 딱딱 나뉜 게 아주 예뻤다. 그땐 몰랐지. 얘네들이 겉멋만 잔뜩 든 애들이었다는 걸.
특이사항은 닥터가 나에게 선택권을 줬다는 점. 난소과자극증후군이 우려가 되는데, 트리거샷을 최대한 써서 모든 난자를 채취할 건지, 약간 보수적으로 쓸 건지. 이왕 뽑는 거, 그냥 최대한 뽑아주세요!라고 부탁했다. (뭐, 한국은 40-50개도 뽑던데여...?)
약병에 있는 약 전부를 주사기에 옮겨야지만 종이에 적힌 수치가 맞춰졌는데, 아무리 해도 바닥에 깔린 애들이 주사기로 넘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찔러서 약제를 다시 병에 넣었다 뺏다 하는 중에... 갑자기 바람이 빠지면서 약제가 뿌슉하고 대거 튀어나왔다 ㅜㅜ 패닉. 일단 그거라도 맞고 응급 라인에 전화했더니. 간호사가 왜 그런 걸로 이 저녁에 전화해라는 말투로... 괜찮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뭐 안 괜찮으면 어쩔껴 36시간 후에 채취해야 하는데...
그 후에 데카펩틸 두방을 맞아야 했는데. 얘는 주사기채로 약이 들어있어서 조합하지 않아도 되어서 편했으나. 와- 이건 진짜 아팠다. 첫방은 모르고 맞으니 그냥 맞았는데. 두 번째 애를 찔러야 할 때는... 정말 엄두가 안 났다. 아픈 걸 아는데 또 찌르라고? 가혹했다.
아침 일찍 일정이었고 남편은 새벽같이 가야 했기에 근처 숙소에 묵기로 했다. 그러나 숙소가 일반 헤리티지(라 쓰고 오래된이라 읽는) 가정집을 개조한 B&B라 겁나 추웠다ㅠㅠ 덜덜 떨면서 샤워.
게다가 오래된 집냄새를 감추려는 것인지 디퓨저 냄새에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 난자는 배아에 취약하다 했는데, 이 냄새를 달고 채취하러 가게 되면 어떡하지 걱정됐다. 채취 전 날 마음정돈을 위해서는, 그냥 내 집이 최고다 싶다.
암튼 그렇게 잠 못 이루는 긴 밤을 보낸 후, 간단하게 조식을 먹고 병원으로 출발. 장을 비우고 오라 했는데, 결국 장을 못 비워서ㅠㅠ 과배란으로 부푼 자궁 + 무언가로 가득 찬, 똥똥한 장 콤보의 무거운 배를 부여잡고 클리닉으로 향했다.
진통제 주는 거 먹고, 심박/혈압 체크한 후, 정맥주사를 잡으니, 진통제? 수면제? (동료에 따르면, 그것은 의료용 펜타닐)가 들어왔다. 정신이 엄청 말짱했던 것 같은데, 잘은 기억이 안 난다. 그냥 한 10분 정도 툭툭툭툭 하더니 다 끝났다고 원래 있던 대기실로 돌아가라고 해서 휠체어에 앉아서 돌아갔던 것 같다. 남편이 기다리는 곳으로.
거기서 헤롱헤롱 거리고 있다가, 좀 정신이 드니 간호사가 들어와서 괜찮냐고 물어보고, 21개의 난자가 채취되었고, 내일 수정 결과를 알려줄 것이라며, 다음 일정을 설명해 줬다. 괜찮으면 언제든지 집에 가도 된다고 했다. 사실 진통제 덕분에 통증은 딱히 없었기에 컨디션은 꽤 괜찮아서 바로 집에 가기로 했다.
그러나, 집에 가는 길도 쉽지 않았다. 난자 채취 시 작성하는 서류에 주의점이 적혀있는데, 그중 하나가 당일에는 약에 취해있을 것이므로, 큰 결정을 내리지 말고, 큰돈을 써야 하는 구매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날, 난 작은 돈을 써야 하는 조그마한 잘못된 결정을 내리게 된다. 남편한테 죽을 사서 집에 가자고 한 것. 난 그냥 집에 갔어야 했다.
죽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점점 멀미인지, 약 부작용으로 인한 구토증상인지 속이 안 좋아졌고. 남편이 죽을 픽업 하러 간 사이에 난 장바구니에 거하게 토를 했다. (다행히 방수 잘 됨) 결국, 남편에게 죽집 다시 가서 비닐봉지 얻어오라 해서, 비닐봉지 귀에 걸고 어떻게 집에 가는지 모르게 집에 갔다.
난소과자극증후군 때문에 배가 빵빵하게 부어올라서,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있는 통에 거동에 제한이 생겼다. 그냥 죙일 누워있었다. 배가 점점 부풀어오는 것 같아서 이거 괜찮은 거 맞나 싶었는데, 인터넷 후기 보면 내 배 정도는 양호한 편에 속하는 것 같았고, 소변도 잘 나와서 그냥 포카리스웨트와 게토레이 무한 드링킹하며 괜찮아지기만을 기다렸다. 또 배꼽 주변으로 멍이 생겨서 이거 어디서 뭔가 잘못된 건가 하고 걱정했지만, 널스는 채취하면서 손으로 잡은 곳이 그럴 수 있다고 했다. 한 5일 차부터 배가 가라앉기 시작해서, 일주일 정도 지나니 복수 찬 건 많이 빠졌던 것 같다. 움직이기 괜찮아질 때까지, 직장은 5일 정도 병가.
신체적인 고통보다 더 힘든 것은, 나의 배아들의 발달 상황에 대한 업뎃을 기다리는 동안의 정신적 고통이었다. 21개나 채취됐으니 10개 정도는 포배기 배아가 되겠지?라고 두근두근 기다렸건만, 현실은 생각보다 가혹했다.
채취 21개 중 > 성숙 난자 14개 중 > 12개 수정 성공 중 > 5/6일 배아 3개 포배기 도달, 7일 차 배아 2개 포배기 도달. 21개 중 5개만이 포배기에 도달했다.
그렇게 살아남은 아이들의 성적표는:
- 5일 배양 5AA
- 6일 배양 5BB
- 6일 배양 6BB
- 7일 배양 6CB
- 7일 배양 5BB
이 다섯 배아들은 검시되어, 미국의 PGT 검사기관으로 보내졌다.
그리고 억겁 같은 2주일의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 과배란 약 (Menopur, Rekovelle, Cetrotide): $4306.00
- 미세수정과 PGT-A 테스팅 절차를 포함한 IVF Cycle 비용: $13,150 (set-up, 난자 채취 및 수정, 미세수정 추가, 배아 검시, PGT-A set-up/coordination, 배아 냉동, 4개월 배아 저장 포함)
- 트리거 약 (Cabergoline, Pregnyl 2500 IU, Decapeptyl): $267.00
- PGT 테스트 비용: $3500.00 (배아 1개당 $700)
피임약이 얼마였는지 생각이 안 나서 미포함이다. $20-50 사이였던 듯. 다른 친구들에 비해 귀여운 약값이라 클레임을 안 해서 기록 누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