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의 기상, 첫날
공항에서 만난 가이드 아저씨와 거의 ‘안녕하세요 이제부터 등산을 시작할 거예요’ 수준으로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 바로 버스에 올라 천문산 케이블카 웨이팅을 시작했다. 케이블카 승강장이 있는 건물에 구불구불하게 늘어 선 철로 만든 단단한 대기줄이 한 줄로 서서 한 사람씩만 들어갈 수 있게 건물 전체에 설치되어 있었다. 장가계의 관광지에는 대부분 나무나 철로 만든 단단한 대기줄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이게 없으면 넘쳐나는 인파에 금방 무질서해지기 때문이었다.(우리 가족이다, 우리 일행이다 쩌렁쩌렁 외치며 엄청나게 끼어들었다…) 대기를 시작했을 때, 한국인은 우리 일행 말고는 없었고, 젊은 한국 여성은 나뿐이었다. 장가계를 여행하는 내내 내 또래의 젊은 한국인 여성은 좀처럼 보지 못했다. 인스타그램 핫플 스팟에서 줄을 서가며 사진을 여러 장 찍던 여행을 하곤 했었는데, 젊은 한국인 여성이 없는 여행지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게다가 장가계는 한국 50~60대만 가는 줄 알았더니만, 가이드 아저씨의 말에 의하면 장가계 관광객의 95%가 중국인이라고 한다. 중국 관광객들은 우리같이 8명~10명 단위로 깜찍하게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한 패키지에 일행만으로 10개 정도의 조를 짤 수 있을 정도로 그야말로 ‘단체 관광객’으로 다닌다. 젊은 중국인 가이드가 손님들을 ‘몇 조, 몇 조’ 하면서 숫자로 파악하며 다니는 것을 여행 내내 볼 수 있었다. 중국 사람이라고 해서 장가계에 매일 오는 것은 아니므로, 모든 관광객들이 한껏 들떠있었다. 나는 중국 사람들과 함께 케이블카를 기다리면서 아예 읽지도 못하겠는 한자로만 된 광고 포스터를 구글 카메라로 검색하며 진짜 중국에 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여우가 어쩌구 하는 내용의 뮤지컬을 홍보하는 내용이란다.
케이블카에는 8명이 탈 수 있었고 편도 탑승 소요 시간은 30분 정도였다. 중간에 케이블카 정거장이 하나 더 있었고, 총 두 번에 걸쳐 천문산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긴 케이블카였다고 한다. 나는 몇 년 전 미국 여행에서 그랜드캐년 투어를 다녀온 적이 있다. 그랜드캐년이나 호스슈밴드를 관광하는 하루짜리 코스였는데, 미국 국립공원 관광의 경우 대부분 넓은 전경을 멀리에서 보고 광활한 대자연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는 식이었다면, 중국은 국립공원으로 삼은 산에 올라가서 관광객이 가까이에서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누가 철근을 박아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갈 생각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야말로 대륙의 기상이 느껴지는 관광 방식이었다. 천문산 외에도 대부분의 관광지에서 케이블카와 같은 편리한 수단을 통해 광활하고 거대한 중국을 여행할 수 있었는데, 같은 대협곡(grand canyon)이어도 두 나라는 그것을 대하는 자세에서 차이가 있었다. 덕분에 산의 지형을 매우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데, 사방이 모두 절벽인 산세를 거대한 대성당에 놓인 수십 개의 양초 같은 봉우리들이 둘러싸고 있다. 석회암 지형인 카르스트 지형이라고 한다. 아늑한 느낌을 주는 우리나라 산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고, 설악산의 울산바위가 깜찍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확실한 것은 장가계의 산들은 그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느낌이었다.
해발 약 1500m의 천문산은 그야말로 하늘의 문이 있다 하여 천문산인데, 산에 뚫려있는 구멍인 '천문동'은 석회암으로 형성된 자연지형이라고 한다. 관광지의 모습은 온통 중국스러워서(붉은색 바탕에 금색 한자 흘림체) 보통 해외여행에서 문득 떠올리게 되는 ‘아, 여기는 한국의 OO같다’는 생각을 할 틈이 없다. 한국에서 봤다면 고급 중식당에 있는 그림에서나 봤을까. 그야말로 대륙스러운 풍경들 뿐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 산은 정상 구경을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각종 잔도(귀곡잔도, 유리잔도 등등)를 만들어놓아 산을 한 바퀴 둘러볼 수 있도록 했다. 비행기를 타고 도착하자마자 듣도보도 못했던 풍경을 보고 있는 경험은 조금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쥐고 있는 휴대폰을 떨어트리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을 어렴풋이 저 너머로 보내며 신난 부모님과 함께 사진을 찍으며 잔도를 실컷 걷고, 잔도에서 내려와 천문산의 이름이 된 거대한 구멍 뚫린 바위인 천문동을 보았다. 천문산 정상에서 날다람쥐 같은 옷을 입고 뛰어내려 비행을 하거나, 천문동을 배경으로 외줄타기를 하는 등 다양한 액티비티를 진행하기도 하는 것 같았다. 대륙의 기개를 가진 전 세계의 사람들이 참가한다고 한다. 어우 나는 못하겠다며 12개의 에스컬레이터(이것도 최장길이라고 하더라)를 내려오면 천문산 관광은 끝이다.
천문산을 다녀온 사람들이 다들 사진을 찍는 스팟에서 사진을 찍고 나서 일정이 끝인 줄 알았건만, 저녁을 먹고 할 게 또 있단다. 아까 구글 카메라로 검색한 여우가 어쩌구 뮤지컬인 ‘천문호선쇼’를 보고 나야 오늘의 일정이 끝난다고 한다. 패키지로 간 덕분에 무리 없는 한식으로 저녁을 먹고, 세상 저렴한 칭따오 맥주에 연태고량주를 타서 한 잔씩 마시며 이것이 중국이로구나 한번 더 느끼고 나서, 어두워진 천문산 초입으로 다시 올라가 새삼 조명이 화려해진 공연장 앞에서 세상 화려한 메이크업을 하고 있는 여우 언니들과 사진을 찍고 공연장으로 들어갔다. 영험한 구미호(그런데 이제 약혼을 한)가 자신을 구해준 착한 마을 노총각과 사랑의 도피를 하면서 벌어지는 갈등을 극복하고 종족과 시간을 뛰어 넘어 천년의 사랑을 완성한다는 단순한 이야기를 무려 천문산 전체를 배경 삼아 500명의 배우가 그려내는 공연이었다. 한나절에 걸쳐 관광했던 천문산의 경관을 새삼 무대 배경으로 사용한 것과 홀로그램을 적절하게 사용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보통 공연이라고 하면 남녀주연은 각 한 명씩이지만, 이 공연은 무대가 너무 거대한 나머지 노래하는 사람은 따로 있고, 주연의 옷을 입은 여러 명이 도처에서 각각 튀어나와 연기를 하는 형태였다. 어릴 때 마당극 같은 것을 본 적이 없어서 이런 공연은 어떤 장르일까 생각했었는데, 최근 드라마 ‘옥씨부인전’에 나오는 천승휘의 무대가 비슷한 느낌이다. 그런데 이제 스케일이 매우 거대하고 출연진도 엄청 많은. 천문호선쇼가 끝나고 드디어 처음으로 캐리어를 꺼내 호텔 체크인을 하고 나니 밤 11시였다. 호텔 사진을 찍을 체력도 없을 만큼 지쳤지만, 그날 침대에 자려고 누우니 천문산 케이블카를 타고 본 지층의 모습이 눈앞에 움직이며 펼쳐졌다. 내가 중국 여행을 오기는 왔구나, 생각하며 첫날밤 겨우 잠에 들었다.
평소 대륙에 별 관심이 없었던 나는 첫날 천문산 관광을 23시까지 하며 내내 ‘산의 모양이 신기하다’, ‘중국인들의 기개가 느껴지는 관광 코스’라고만 생각하다 문득 ‘저 산이 가진 시간의 깊이는 얼마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다음 일정에도 이어지는 천자산과 원가계의 풍경을 보며 '시간'이나 '존재'에 대한 생각은 더 깊어졌다. 산이 가진 세월은 얼마이며, 그 산을 보는 나의 순간은 얼마나 찰나인가. 한국에서 아등바등 미워했던 직장 사람들이 생각났다. 기껏해야 1~2년 함께 근무하는 찰나의 존재들을 무얼 그리 미워하며 살아왔던 것일까 생각하니 마음이 한순간에 확장되는 느낌이었다. 바로 이 마음이 확장되는 느낌 때문에 나는 치열한 삶에 지친 사람들이 장가계 관광을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극적으로 장가계 관광을 추천하는 바이다. 비록 미운 사람이 또 미운짓을 하고 있는 걸 보면 또 상종하고 싶지 않아 지지만, 그때마다 나는 장가계의 첫날밤 나의 눈앞을 스쳐가던 천문산 봉우리의 지형들을 떠올리며 또다시 마음을 확장해 보는 것이다.
장가계의 대부분 지형이 천문산과 같은 느낌이기 때문에 첫날과 같은 신기함이나 감동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건만, 둘째 날 천자산과 원가계의 풍경은 굳이 방문할 필요가 꼭 있는 것들이었다.
우당탕탕 엄빠를 따라갔다 인생의 깨우침을 얻고 온 젊은이의 장가계 여행기는 계속됩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