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내가 팬클럽 가입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팬클럽 닉네임: 팬아저

by 김촉

연말에 뭐 하세요?

몇 년째 연말이면 으레 인사처럼 ‘연말에 뭐 하세요?’라고 건네는 말들에 ‘저 성시경 콘서트 가요!’라고 답한 지 3년 차가 되었다. 소개팅에서 ‘가수 누구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에 무난하게 보이려면 성시경이나 아이유를 말하면 된다고 한다. 그만큼 소위 ‘머글‘들에게 익히 알려진 인기 대중음악인인 것이다. 성시경 노래를 좋아하는 여자친구와 함께 연말을 즐겁게 보내기 위해 티켓팅을 하는 커플들 덕분에 성시경 콘서트 티켓팅은 매년 매우 치열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유튜브 방송을 시작하고 나서 남성 팬들도 많이 생겨 티켓팅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팬들 사이에서는 이 모든 이들을 ‘머글’이라고 부른다. 나도 그 머글들 중에 하나였다.


성시경 콘서트를 처음 갔던 것은 3년 전인 2022년 연말이었다. 당시의 나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일정을 함께하고, 공연의 최대한 앞자리를 차지하고 내가 얼마나 더 좋아하는지를 경쟁하는 듯한 아이돌 팬덤 활동에 지쳐있었다. 수많은 팬들이 있는 공연장에서 가수의 진행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를 지르며 어떻게든 개인멘트를 하려고 혈안이 되어있는 일부 극성팬들이 있는 공연을 보다 지쳐 과감히 휴덕 선언을 하니 친구들이 머글들이 많이 가는 공연을 가보자고 권했다. 그즈음에 성시경 콘서트 티켓팅 일정이 있었고, 아이돌 공연 티켓팅을 수시로 성공하는 멋진 친구들과 자리 욕심을 전혀 내지 않고 티켓팅에 도전하니 성공할 수 있었다. 처음 갔던 공연장에서 우리 자리는 3층이었다. 성시경이 립밤 사이즈로 보이는 자리였다. 하지만 괜찮았다. 우리는 시경오빠의 얼굴을 보러 온 팬이 아니라, 노래를 들으러 온 머글이었기 때문에.


성시경 콘서트와 아이돌 콘서트의 다른 점이라 하면, 한두 곡을 진행하고 재정비를 하러 무대 뒤로 들어가는 아이돌 공연과는 달리, 성시경은 혼자서 4~5곡을 연달아 부른다는 점이었다. 기본적으로 아이돌 댄스곡과 발라드의 차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여러 멤버가 함께 추는 화려한 군무나 휘황찬란한 무대효과가 없어도 목소리 하나로 혼자서 공연장을 채운다는 점에서 남다른 내공을 느꼈다. 거기에 다년간 예능이나 라디오를 진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매끄러운 멘트와 함께 자연스러운 진행이 가능하고, 심지어 매우 웃기기까지 했다.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점은, 공연 중 일부 극성 관객이 개인멘트를 시도하려고 하거나, 손을 내미는 경우에 대해 매우 위트 있게 대처한다는 점이었다. 많은 공연과 많은 팬들을 경험해 보았기에 가질 수 있는 여유이자, 다른 팬들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깊이 배려한 것이라 생각했다.


성시경은 2000년에 데뷔를 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성시경을 ‘오빠’라고 부를 수 있는 세대는 아니다. 왜냐하면 2000년의 나는 초딩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나보다 한참 어린 아이돌 친구들의 공연에서는 할 수 없는 ‘오빠 부르기’를 할 수 있는 것도 성시경 콘서트의 장점이라 할 수 있다. 그 많던 내 학창 시절의 오빠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시경오빠는 2000년대를 지나 최근까지도 큰 사건사고 없이 활동을 해 온 덕분에 30대가 되어서도 그의 공연에 즐거운 마음으로 찾아갈 수 있다. 꾸준한 활동으로 인해 나의 초-중-고-대학시절을 가득 채운 노래들을 최소 후렴구부터는 다 알고 있는 것도 공연 관람의 매우 큰 즐거움이다. 어떤 곡은 도입부부터 관객들의 탄성이 나오고, 또 어떤 곡의 후렴구는 따라 부르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많은 이들이 사랑하고 있다. 콘서트에서 본인 노래가 아닌 다른 가수의 노래를 부를 때에도 이미 성시경의 목소리를 사랑하는 팬들은 금방 노래와 동화된다. 세상 편안한 마음으로 공연을 보고 있자니 ‘다음에도 공연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이돌 팬질을 휴덕하고 팬아저가 되다

2022년 연말 콘서트를 시작으로 축가 콘서트도 가고, 9월에 진행하는 콘서트도 가며 3년 동안 콘서트를 다녔다. 우리는 시경오빠의 얼굴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들으러 가는 것이었으므로, 늘 성시경이 립밤정도의 사이즈로 보이는 2층 자리를 고수했다. 공연 도중 성시경이 말하는 소위 ‘코어팬들만 아는 노래’를 도입부부터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굳이 굳이 팬클럽에 가입하지는 않았다. 배송비까지 거의 5만 원에 육박하는 응원봉을 사면서도 굳이 굳이 팬이 아니라고 했다. 아이돌 덕질을 해보니 공연 중에 응원봉을 흔드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서 응원봉이 없으면 3시간이 넘는 공연 시간 동안 손이 너무 허전하기 때문에 샀을 뿐이라고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러면서도 공연 중 응원봉 배터리가 닳을까 꼬박꼬박 공연 전 새 배터리로 교체했다.


그러다 올해 연말 콘서트 티켓팅에 처음으로 실패했다. 티켓팅 일정을 까맣게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팬까지는 아니었으므로 일정을 굳이 살피지 않은 것이다. 그제야 콘서트에 못 간다는 사실이 퍽 서운했다. 매년 연말은 성시경 콘서트로 마무리했었는데, 루틴이 깨진 것에 대한 아쉬움이라고 하기에는 서운함이 너무 컸다. 결국 취켓팅(취소표 티켓팅)에 열을 올리다 겨우 취소표를 잡았다. 팬은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매 콘서트에 어떻게든 열을 올려 티켓팅을 해서 찾아가는 나는, 막상 콘서트에 가지 못하면 세상 서운한, 사실은 팬이었던 것이다. 얼굴 보러 가는 게 아니라고 하면서도 공연장에서 LED 화면과 립밤사이즈 실물을 열심히 보고, 특히나 그의 목소리로 불리는 모든 노래를 듣는 것에서 어떤 안도와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그동안 팬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팬클럽 가입을 매 12월에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나는 올해 팬클럽에 가입했다. 그냥 공연 일정을 미리 알고, 늘 관심을 두고 싶은 마음이며, 행여 공연을 못 가면 서운할 것 같고, 올해 낸다고 하는 새 앨범이 퍽 궁금하기도 했다. 이게 팬심이 아니라면 뭐란 말인가. 데뷔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파릇파릇한 아이돌의 시시각각 이루어지는 일정을 따라가다 지쳐버려 그만 휴덕을 선언한 나는, 고요한 호수 혹은 사계절이 아름다운 깊은 숲과 같은 데뷔 25년 차 가수의 팬이 되기로 했다. 팬클럽 닉네임은 ‘팬아저’다. ‘팬이 아니어도 저장’하다가 팬이 되어버렸으므로.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