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25년 차 가수의 팬서비스에 몸 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성시경 팬클럽에 가입한 지도 벌써 세 달이 되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비록 유료 팬클럽에 가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성시경이랑 결혼할 거야' 수준의 열성적인 팬은 아니므로 팬클럽에 가입했다고 해서 갑자기 성시경 씨가 나의 일상을 온통 물들일 일은 없었다. 하지만 비록 닉네임이 팬아저이긴 하더라도, 어엿한 팬클럽 3개월 차로서 성시경 팬클럽의 장점을 나열해보고자 한다.
팬클럽에 가입한 것도 잊고 있던 중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제목이 Happy birthday 어쩌구 하는 내용이었다. 발신자는 성시경의 소속사였다. 메일에는 님의 생일을 축하드리며, 님의 생일을 맞이하여 가수가 준비한 생일 축하 영상이 있다고 적혀있었다. 축하 영상에는 매우 성시경스럽게(담백하게라는 뜻) 소중한 사람의 생일을 축하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여느 아이돌들의 호들갑스러움은 없었지만, 조금 뻘쭘한 듯 카메라 너머의 팬을 생각하는 데뷔 25년 차 가수의 마음이 전해오는 듯했다.
그동안 아이돌 팬질을 꽤 해보았고 팬클럽에도 가입해 봤지만, 팬 생일이라고 영상을 보내는 가수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내가 아는 한 팬의 생일이라 함은 브이앱(언제 적이냐)이나 인스타 라이브 같은 곳에서 "저 오늘 생일이에요!! 생일축하해 주세요!!"라며 타 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라이브 진상댓글 3대장이었건만. 아이돌 덕질을 하면서 아이돌의 생일을 챙겨준답시고 사비를 털어 생일카페를 차리는 데 일조하거나, 생일카페에서 무맛무취의 디저트를 비싼 돈을 주고 사 먹는다거나 하는 것이 전부였을 뿐, 아이돌이 내 생일을 챙겨준 적은 없었다. 영상의 내용은 물론 개별 맞춤이라기보다는 포괄적인 내용이었지만, 이전에 가입했던 팬클럽에서는 받아보지 못했던 생일 팬서비스였다. 성시경 팬클럽에 가입하고 느낀 점은, 이 데뷔 25년 차 가수는 모든 것을 어색하고 뻘쭘해하는 것 같지만, 꿋꿋하게 팬들을 위한 서비스를 챙겨준다는 것이었다.
시그란 무엇인가. 시그라는 것은 시즌스 그리팅(Seasons greeting)의 준말로, 다이어리나 달력 상품을 묶음 판매함으로써 연말연시 굿즈 판매에 혁혁한 공을 세우는 상품이라 할 수 있다. 예전에는 홈마(홈페이지 마스터, Homepage master: 매 스케줄마다 고성능 카메라로 아이돌의 좋은 사진을 찍어 업로드하는 킹갓제네럴존잘님)들이 만든 시그들이 많았지만, 요즘에는 소속사에서 자체적으로 아이돌의 특별한 사진을 담아 만든 다이어리나 달력 묶음을 소속사 자체몰에서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만 해도 몇만 원은 훌쩍 넘는 가격이건만, 비싸게 주고 산다 해도 보통 사놓고 한번 펼쳐보고 행여 닳을까 아까워서 1년 내내 책장에 꽂아두고 한 해가 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리의 시경오빠는 올해 팬클럽 가입을 위해 유료 결제를 한 팬들에게 시그 수준의 팬키트를 만들어 보냈다. 얼마 전 팬클럽 카드와 함께 팬키트가 도착했는데, 거대한 성시경이 담긴 포스터와 함께 성시경 달력과 다이어리가 들어있었다. 생각 없이 회사로 주문했다가 열어보고 그날 웃을 웃음은 다 웃었다. 팬클럽 카드에 시경오빠 사진이 없는 건 매우 매우 아쉬운 일이었지만(요즘은 그게 촌스럽나…), 시그 수준의 고퀄리티 팬키트 구성에 닉네임 팬아저는 그만 감동해버리고 말았다. 물론 행여 닳을까 아까워서 고이 보관할 예정이다.
바로 어제 성시경 팬미팅 선예매가 있었다. 그동안은 머글로서 콘서트를 가면서 3층 이상의 높은 자리에서 노래를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하였으나, 덕후에게는 전진뿐이므로 팬클럽에 가입한 이상 전진해 보기로 했다. 시간에 맞춰 예매를 하러 들어가니 머글 티켓팅에서는 볼 수 없었던 고오급 자리들이 남아있었다! 뉴비의 행운인지 시경오빠의 숨소리가 들릴 것 같은 1층 자리 예매에 성공했다.(덕후 전진 성공!) 팬클럽에 가입하니 치열한 머글 티켓팅보다 한발 빠르게 선예매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격하게 감격하는 순간이었다. 이런 것에 감격하는 것을 보니 이젠 팬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겠다.
애초에 머글들이 좋아하는 공연이라 가기 시작했던 성시경 콘서트지만, 팬들 위주로 이루어진 팬미팅 공연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하는 마음도 생겼다. 여기에서는 옆 사람 공연감상에 방해가 되든 말든 아랑곳 않고 눈치 없이 모든 노래를 다 따라 부르는 민폐 관객은 없겠거니 기대를 해 본다. 내 인생에 덕질은 또 없으리라 생각했건만, 내가 무려 성시경 팬미팅에 가게 되다니… 아직도 실감이 나지는 않는다.
역시 일상이 무료할 때는 덕질이 적당한 활력소가 되어준다. 팬이 아니라고 생각한 오랜 입덕부정기를 겪은 덕분에, 또한 과격한(?) 아이돌 팬질을 해 본 경험에 의해, 이제 나는 내 삶의 균형을 맞추면서 가수를 좋아할 수 있는 훌륭한 팬으로 자라났다. 그리고 담백하지만 팬 하나하나를 소중히 생각하는 25년 차 가수 덕분에 균형을 더 잘 맞출 수 있을 것 같다. 살랑 봄바람이 불어 올 즈음 팬미팅을 다녀오고 나면, 나의 일상이 한껏 다채로워지리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