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본 첫째줄을 찾아 떠나는 여행

인생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by 김촉

거지 같은 연애가 끝났다. 뭐… 꽤 멋진 연애였지만 결과적으로 끝나버렸으므로 거지 같았다고 하겠다. 연애의 끝이 다가온다고 느꼈을 때 나는 문득 가장 최근에 다시 읽었던 윤홍균 교수님의 <자존감 수업>을 떠올렸다. 책에서 작가는 이별은 지난 사랑과 나를 돌아볼 기회이며, 자신을 마음 놓고 돌볼 수 있는 기회라고 하면서 혼자 여행을 떠나볼 것을 권했다. 나는 당장 내 연애가 끝났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어 도피를 해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그동안 가보고 싶었던 혼여 추천 여행지 후쿠오카를 갈까 하였으나, 그즈음 병원에 다닐 일이 생겨 국내 여행을 하기로 했다. 평소 혼자 여행하는 것에 좀처럼 자신이 없었던 나는, 연애의 끝을 계기로 될 대로 되라는 마음이었고, 그래서 쉽게 떠날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나의 이번 여행 목적지는 나의 주민등록초본 첫째줄에 있는 주소지였다.


사업을 하기로 결정한 부모님의 갑작스러운 상경으로 인해 나는 지금 살고 있는 서울에 3살 때 이사를 왔다. 서울에서의 사업을 위해 모든 것을 정리하고 올라오신 부모님 덕분에 나는 이후 계속 같은 도시에서 살았다. 그래서 3살에 이사 온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생가(!)와 나 나신 곳(!)에 대한 이야기는 오로지 부모님의 대화 속에서만 있었다. 한글을 빨리 깨쳐 엄마 등에 업혀 동네방네 간판을 읽었다는 이야기와, 집에서 민정당사(무려 민정당…!)가 보였다는 이야기 같은 것들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곳들에 대해 어렴풋이 상상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여행을 하기로 하면서, 나는 바로 그 동네에 가 보기로 했다. 거창한 성찰을 계획한 것은 아니었고, 그저 나는 왜 태어났나 하는 생각이었다. 인생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으니, 태어난 곳에 가보면 그곳에서 나를 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했다. 특별히 무엇을 볼지나 무엇을 먹을지에 대한 계획은 하나도 세우지 않았고(그럴 정신이 없었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가볼 곳은 단 두 곳이었다. 하나는 나의 주민등록초본을 전체 포함해서 뗐을 때 주소지 기재란에 가장 첫 번째 줄에 기재되어 있는 주소지였고, 다른 하나는 내가 태어났다는 병원이었다. 나의 살던 고향(?)은 전라북도 전주시 풍남동으로, 한옥마을이 매우 가까이에 위치해 있다. 숙소를 정할 때 가격이 적당한 한옥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는데, 실제로 가 보니 그 게스트하우스와 나의 생가는 걸어서 3분 거리로, 같은 동네와 다름없었다.


별다른 계획이 없었으므로 전주에 밤차로 도착해 어영부영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룻밤 자고 일어나 게스트하우스에서 추천해 줬던 콩나물국밥집에서 첫 혼밥을 용감하게 마쳤다. 혼자 여행에 대한 자신감을 점점 채워서 나는 ‘나의 생가‘와 ‘나 나신 곳‘을 방문하려고 나섰다. 숙소가 가까웠던 덕분에 모두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내가 살던 집은 놀랍게도 30여 년이 지났음에도 주소지가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있었으며, 부모님께 사진을 찍어 보내니 골목의 형태나 동네의 구성, 집의 모양이 그대로라고 했다. 지금은 다른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라 집안을 들여다보지는 않았지만, 대문이 있는 작은 집이었다. 집에 대해 이야기하던 부모님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집의 구조를 어렴풋이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이제는 국민의힘 사무실이 된 민정당사 건물도 그대로였으며, 집 앞의 작은 골목을 나오니 조금 큰 골목으로 간판들이 즐비한 상점가가 있었다. 지금의 나보다 훨씬 젊은 시절의 나의 부모님은 이곳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해 나를 키웠을 것이며, 어린 나는 이곳의 간판들을 한 글자씩 읽었을 것이다. 과거에 대한 일들은 역시나 어렴풋이 상상할 뿐이었지만, 아직까지 변하지 않은 집과 골목들을 보며 실시간으로 부모님과 카톡을 나누는 것은 꽤 뭉클한 경험이었다.

‘나 나신 곳‘인 병원은, 기독교 병원으로 정문에 거대하게 성경 말씀이 적혀 있었다. 나와 같은 날 비슷한 시간에 태어났던 친구가 있었다고 했는데, 어린 시절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 혹시 부모님이 바뀐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당시 나의 부모님은 교회라고는 가본 적도 없었고, 종교에 뜻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으나 어쩌다 보니 그 병원에서 내가 태어났다고 했다. 병원 정문 사진을 찍어 부모님에게 보내니, 나를 낳는 데 12시간 이상의 진통을 겪은 엄마가 너무 힘들고 서러운 기억이 있는 곳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철없는 나에게는 ‘나 나신 곳‘인데, 엄마에게는 아직도 생생하게 힘든 기억이었다. 아빠로부터는 네가 태어났을 때 세상을 얻은 기분이었다는 수없이 들은 이야기를 한번 더 들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찍어 보낸 한 장의 사진은 부모님을 순식간에 그 시절로 데려다 놓았다.


생가와 나신 곳을 방문한 짧은 여행 동안, 얼마나 나를 돌아보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 사는 곳에 정착한 이후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나의 어린 시절 동네는 시간이 천천히 흐른 듯 그대로였다. 그동안의 수도권 도시들은 날마다 바뀌고, 내가 지금 사는 동네도 재개발로 한창이건만. 만약 그때 나의 부모님이 서울에서 사업을 하기로 결정하지 않고 계속 전주에 남았다면 나는 어떻게 지냈을까. 전주에서 살던 나는 언제 전주를 떠났을까. 어쩌면 아직까지도 한옥마을 근처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를 돌아보려고 떠난 여행에서 나는 전주라는 평행우주 속의 나를 어렴풋이 떠올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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