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드는 집

이사를 와 보니 집에 해가 들었다

by 김촉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일조권은 얼마나 중요할까. 10대와 20대와 30대를 살아오면서 햇살의 필요성에 대해 느꼈던 적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즈음 외에는 없었다. 그때는 스스로를 가장 불쌍히 여겨 햇살 한 줌 받지 못한 채 형광등(LED조명이었겠지만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불빛으로 살아가는 것이 고달팠다. 운동장을 돌며 필사의 산책을 하던 학생은, 점심을 먹고 역시 필사적으로 광화문 광장을 배회하는 직장인이 되었다. 나에게 햇살이란 그런 것이었다. 점심시간에 잠깐 밖에 나가 충전하는 것. 아침 일찍부터 학교를 가고, 조금 지나서는 직장으로 향했다. 저녁에 해가 지고 나서야 집에 들어오는 삶이 익숙한 경기도민으로 지낸 지 어언 3n년, 나는 집에 햇살이 드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한 것인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이사를 오고 얼마 지나지 않은 주말 오후, 별생각 없이 침대에 누워있다가 방안 가득 들어오는 햇빛을 보며 저거에 흰 옷이 변색되려나, 하는 생각을 하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이 집에는 오후 1시부터 해가 들어오기 시작해서, 해가 질 때까지 집안에 햇살이 가득 들어찬다.


해가 들어오는 집에 살아 보니 이제야 햇살의 필요성에 대해 깨닫는다. 웬만한 경험에 별다른 감흥이 없는 재미없는 어른이 되었다 생각했건만, 일차적으로는 내가 아직도 직접 겪고 깨달을 것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다음으로는 이 집에 해가 들어오기 시작하면 내가 시간의 흐름을 지각하기 시작한다는 것이 무척 신기하였다. '아, 오후 한 시쯤 되었겠다'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점차적으로 길어지는 그림자를 보면 시계를 보지 않고도 시간이 가는 것이 느껴진다. 해가 드는 것을 보고 있자면 회사-집-회사-집의 흐름으로 살던 나는 기계가 아니라 돌연 대자연의 일부가 된다. 회사의 극히 일부분을 담당하는 작은 톱니바퀴 같은 내가, 집에서는 숨을 쉬는 유기체가 되는 것이다. 유기체로서의 자각이라니, 상당히 인문학적이라 하겠다. 해가 드는 집은 나를 인문학적인 인간으로 만들었다.


아직까지는 오후 내내 들어오는 햇살이 신기하여 주말에 웬만하면 약속을 잡지 않는다. 이것이 햇살의 단점이라면 단점이라 하겠다. 15년을 함께 살았던 강아지가 왜 햇살이 드는 창가 아래에서 잠들었는지 알 것 같은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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