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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네필 Kimcine feel Jun 23. 2021

나는 왜 셀카를 수도 없이 찍을까?

올리지 못한 셀카만 수 천장인 사람

"나는 왜 자랑할 만큼 예쁘지 않는 내 얼굴을 아침마다 이렇게 찍고 앉았는가?"



이 날은 바람이 좋은 날 아무도 없는 공원에 가서 책을 한바탕 읽었다.



1. 아침 운동하고 밥을 간단히 챙겨먹고 난 후 온라인 수업전의 이 시간이 너무나도 좋다. 요즘은 초여름같지 않게 선선한 아침바람도 불고, 그야말로 온도와 습도와 분위기가 좋다. 난 그럼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켜는데, 왜 자꾸 나는 올리지도 못할 셀피 셀프 동영상을 찍어대는 걸까? 스스로에게 궁금해졌다.








2. 어제부터는 종이로 된 경제 신문을 받아보고 있다. 온라인에서 보는 정보가 반복적이고 제한적이라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누가 골라준 내용 말고 내가 보고 싶고, 읽고 싶은 글이랑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내용을 스치듯이라도 경험하기 위함이다.









2-1. 인스타나 페이스북은 내가 검색을   번만 해도 다음부터는 친절히  내용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다보니 필요하지 않는 정보에 익숙해지면서 그것이 사실이 되어 체득화 되었다. 이해하기 쉬운 예로는 내가 여름 샌들을 검색하면, 다음부터  피드에는 샌들만 주구장창 나와서,  사지 않으면 안될  같은 느낌이 들어서는 쇼핑몰까지 끌려 들어간다. 아휴.








2-2. 그래서 이제는 내가 주체적으로 정보를 찾고 보고 싶다는 생각 끝에 경제지 신문을 구독했다. 아무튼 그건 그렇고. 구래도 알고리즘의 편리화는 무시 못하겠다. 내가 요즘엔 문학동네와 국립무용단, 백남준 아트센터 등등을 팔로우 하고 있는데 집 밖에 한 발자국 나가지 않아도 주옥같은 글들과 작품이 폰 안에 쏟아진다. (좋다)









1-1. 어제는 이런 글을 알고리즘을 통해 만났다.

"내가 느낌을 글로 쓰는 이유는

내 느낌의 열기를 낮추기 위해서다"

페르난도 페소아의 <불안의 서>라는 책에 나오는 구절이란다.

나는 글을 잘 써서 올리는 게 아니고, 오히려 쓰고 나면 내일 지울 글이 훨씬 많다. 읽다보면 입에도 눈에도 안 붙는 글이 대다수다. 어쩌면 매일 올리는 글 쓰기 훈련이란게 더 맞는 표현이다. 그럼에도 부족함을 자꾸 내다 던지는 이유는 내 온도를 낮추기 위해서다. 쓰고나면 그냥 괜히 마음이 정돈된다.








1-2. 다시 돌아가서 첫 질문이었던 '나는 왜 이뿌지도 않는 내 얼굴을 자꾸만 찍어대는가?'의 답을 찾아봤다. 먼저는  그래 난, 영화를 하니까 내 감정과 기분을 글보다는 영상으로 남기고 싶겠지?라는 그럴듯한 답. 하지만 그러기엔 난 아직 그 기준까지 도달할만한 내공을 갖추진 못했단 사실을 인정했다.









1-3. 그리고 만난 게, 아까 그 구절이었던 내 기분을 낮추기 위한 것. 분노의 일기를 쓰던 학창시절은 그 한줄 적고나면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학창시절 일기장은 깔깔, 흑흑, 헤헤, 푸하로 통일된다. 아무튼 뭐라도 쓰고 나면 그것이 데쓰노트이든 간에 내 안에 뭉친 뭔가를 꺼냈달까? 그리고 그 기분이 좋아 여태껏 글 쓰는 일을 하고 있지 싶다. 듣고 쓰는게 좋아 라디오 작가가 됐고, 찍고 보는게 좋아 영화를 시작했다.








1-4. 그래 맞다. 내 첫 번째 영화인 손톱달도 내가 인정받지 못함의 분노가 깃들었다. 그 때 영화 '화양연화'를 보면서 주인공들이 서로 외면하며 어두운 골목길을 서성이는 장면과 웅장한 음악이 멋졌다. 거기서 나는 아, 그래 해매려면 저런 멋진 자태로나 헤매야지. 단순히 그래서 멋진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기준이 생겨서 여태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한 길을 걷고 있다. 남들 기준 말고 내 기준이 서 있는 사람. 근데 아직 미완성형이라 진행중이다 ㅎㅎ 남들이 보기에 헤매는 것 같아도 정작 나는 내 기준을 만들고 멋지게 헤매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멋지다'와 '헤매다'는 순응된 단어 연결은 아니지만 멋지게 헤매는건 그야말로 멋진 일 같다.)







0. 그래서 나는 왜 이뿌지도 않는 셀카를 올릴까라는 질문의 답은 '내 온도를 낮추기 위함'이라고 느낀다. 기분 좋은 하루든 망친 하루든 그리고 너무 좋은 영화를 만났든 혹은 베껴 쓰고 싶은 책을 만났든. 그 좋은 걸 감출길이 없어서 쓰고 찍는다. 결국, 나도 내 안의 온도를 맞추기 위해 쓴다.





@김씨네필 21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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