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씨네필 Kimcine feel Mar 09. 2017

멈추고 싶을 때 멈추는 나라

일본 후쿠오카 여행글 1

여행을 준비하는 자세


일본 여행을 이틀 아니 스물네시간 조금 넘게 남겨둔 날이었다. 

나는 평소에도 골골대는게 일상이고 적지않은 지병을 가지고 있어서 늘 여행을 앞두고서는 미리 비상약을 받아두는 게 당연하게 되었다. 그래서 아침 일찍 부지런을 떨어 가까운 병원에서 약을 받았다. 처방받은 약은 감기약을 비롯한 비상약. 장이 약한 탓에 아무 약이나 먹었다간 화장실에서 큰 변?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여행이야 그렇다지만 멀리 외국을 나갈때면 서툰 영어실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내 몸의 상태를 위해서 미리미리 받아두는게 훨씬 맘이 편하다.  




한 번은 그런 적이 있었다. 몇 년 전, 정말 까마득한 때. 그러니까 내가 연애에 대한 물음표를  느낌표로 만들고자 노력하던 때. 친구를 통해 소개를 받은 동갑내기 회사원 소개팅남과 저녁을 먹고나서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고민이 많아 누가 불러도 시원찮은 대답으로 일관하던 내게 그 소개팅남은 엄마의 말을 빌어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머니가 말씀하시기를 고민이 많으면 오장육부가 상한다는 것. 그래서 자기는 괜찮으니 사실을 말해달라는 거였다. 당시에도 워낙에 장이 안좋았던 나는 내 마음은 물론이고 내 몸속 오장육부까지 들킨것같아 순간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러자 정답을 맞춘듯한 표정의 소개팅남은 싫으면 싫다고 말하는게 서로에게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사실, 깔끔한 외모에 직업까지 확실한 사람이 나도 그리 싫을리는 없었다. 하지만, 철두철미하게 계산하고 직진하려는 소개팅남의 태도에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나와의 인연은 아니겠다 싶었다. 그리고 그 후 한 달 정도 만난 후 우린 그렇게 서로에게 수 많은 궁금증만을 남긴채 끝이 났다. 시작도 안했는데 끝이라는게 웃기는 표현이지만 어쨌든 적당히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방향으로 가장 어른스럽게 악수를 나누고 헤어졌다. 장트러블이 연애사까지 관여한다는 내 나름의 큰 그림을 설명해보고 싶었다. 이해안가는 사람들은 설득할 방법이 없다는게 아쉬울 뿐이지만. 아무튼 나는 비상약을 챙겨들고 집으로 돌아와 끙끙대며 짐을 쌌다. 그리고 그 날밤 38도를 넘나드는 고열에 시달리고 만다. 아뿔싸. 일본 여행은 사요나라구나.



강철체력을 가진 나


[우리 먼저 가있는다! 얼른와]

[늦지마! 오늘 살거 다 사게]


일본으로 함께 떠날 친구들과의 단체톡방이 아침부터 요란하다. 늦는다는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고, 아프다는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지만 친구들은 내 전날 밤 상황을 알기라도 하는듯 나를 재촉했다. 왜냐면 일본에 가서 무얼사고 무얼먹을지 즐거운 고민에 빠진 카톡방에 읽씹으로 일관한 내 입장때문이었다. 신나는 카톡방을 들여다보는데 화면에 하얗게 김이 서렸다 없어졌다. 코가 막혀 입으로 숨을 쉬는데다가 열기운까지 있어서 액정이 하애졌다가 손으로 다시 지우고 그러기를 반복했다. 즐거워하는 친구들에게 차마 열이 난다는 말을 할 수 없었고, 얼른 열이나 내기리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특별히 여행맞이로 예약된 네일아트도 취소할 수 없었다. 세 명이 동시에 하기 때문에 싸게 해달라는 거래가 오갔기 때문이었다.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본 여행은 못가더라도 네일샵은 반드시 가야겠다는 의리를 위해서. 그런데 네일아트를 받는 동안 온 몸이 찌뿌둥하고 하품만 하느라 이걸 돈 주고 받는 내가 바보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내 손을 케어해주는 직원은 가장 어린 연배에 경력인 듯 보였고, 비실거리는 나를 보며 그 흔한 농담도 없이 손톱에만 매진했다. 옆에서는 꺄르륵 웃으며 네일아트를 받는 친구와 네일케어 직원들을 보면서 따돌림을 당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아프니까 별게 다 서러워지는구만.


그리고 곧장 돌아와 이불속에 파묻혔다. 밥맛도 없고 힘도 없고, 나는 친구들이 올려주는 일본 사진이나 봐야겠구나 확신이 들면서도 제발, 제발 하면서 강철체력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며 잠이 들었다. 


나도 참, 그 아픈 와중에 일말의 희망을 잡아보려는 듯 오전 7시 30분에 알람을 맞춰두고 잤다. 8시 30분에 버스가 출발하니 상태를 봐서 어쨌든 일어나보자는 거였다. 알람을 끄기 위해 아이폰을 이불속으로 쑥 가져왔다. 그리고 네이버에 뜬 기사들을 줄줄 읽었다. 다 보고나서는 페이스북에 들어가 사람들의 근황을 살폈고, 낙담하는 표정을 지으며 핸드폰을 이불밖에 꺼냈다. 왜냐면 나는 감기때문에 도저히 갈 수 없을 것 같아서였는데, 낙담하는 몸 치고는 꽤 기분이 좋았다. 

아싸, 감기가 나았다. 나는 나도 모르는 강철체력이었던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브런치 먹고 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