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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여덟, 연애와 결혼에 관하여

사랑에 관한 짧은 생각.

by 김커피

며칠 전 평소보다 일찍 마감을 하고 기분전환도 할 겸 미용실에 갔다. 자영업을 준비할 때부터 미용실이라고는 갈 시간이 없어 머리도 지저분했고 요즘따라 몸과 마음이 몹시 피곤한 일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누군가가 머리를 만져주면 마음이 편안해져서 굳이 일찍 장사를 끝내고 미용실을 찾은 건데 역시나 샴푸실에 누워 머리를 감겨주는 것만 해도 약간의 치유가 되는 것 같았다.


내가 앉은자리 대각선으로 이발을 하는 남성분이 미용사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분은 탈모에 대한 걱정이 많은 분이었는데 대화 말미에 미용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머리 빠질 수는 있어도 머리 빠진 사람이 사랑할 수는 없잖아요."

뭔가 차별적 발언인 듯하면서도 묘하게 설득이 되는 그 말이 머리 하는 내내 귓가를 맴돌았다. '아니 왜? 하긴 그런가? 사랑이 뭐길래? 머리가 있고 없고가 좌우할 수 있나?' 시술 시간에 편하게 앉은 내 안에 여러 내면이 맞서 싸우는 중이었다. 손질까지 끝나갈 때 거울에 비친 나를 보면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런데 사랑이 대체 뭔데?



지난해 봄부터 초여름까지 나는 열 살 어린 연하남을 만났다.

남녀관계에 있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라서 연하는 절대로 만나지 않는다는 나름의 연애 철칙이 있었는데 그걸 무너트리고 수년만에 단단히 굳은 내 마음을 흔든 사람이었다. 7년의 사랑에 맞설 사람이 나타나긴 힘들 거라는 생각을 하고 지냈던 나는 그렇게 작년 봄부터 초여름까지 짧은 기간 동안 별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누가 다가오든지 이성으로 보는 조금의 낌새만 보여도 철벽을 치기 바빴던 내게도 봄이라는 계절을 받아들임과 함께 인생의 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나 믿을 뻔도 했다.


상대는 나와 아무런 관계를 만들 수 없던 입장과 상황 속에서도 용기 내어 먼저 다가와 준 사람이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그 사람의 고객이었던 나는 그때까지도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지만 그래도 솔직하게 나보다 열 살은 어려 보였다. 아무리 행동 하나하나가 신중하다고 해도 나보다 한참 어리게 느껴졌기에 일단 만나서 내 나이부터 오픈하고 분명하게 입장을 밝히려고 했다.


사적으로 처음 만난 날, 약속 장소에서 주문한 커피를 마실 때 마스크를 벗은 그의 모습을 처음 보았다. 생긋 웃는 모습이 정말이지 이상형에 가까웠다. 나는 순식간에 심란해지면서 나이고 입장이고 밝히고 나발이고 그냥 막무가내로 고하고 싶었다. 나야말로 도둑이 되겠구나, 커피의 쓴 맛과 내 인생의 쓴 맛을 동시에 삼켰다.

의도와는 다르게 욕심을 채운 몇 시간의 첫 만남이 마무리될 때쯤에야 서로의 나이를 밝혔다. 그와 나는 내 예상대로 딱 열 살 차이가 났다. 나는 그제야 우리의 나이 차가 문제가 될 것 같다는 말을 했다.

물끄러미 나를 보다가 또래인 줄로 알았다고 괜찮다며 나와 만나고 싶다고 입을 여는 그의 한 마디에 무장해제가 돼버렸다. 그렇게 나는 그 사람이 연락하자 해서 연락을 했고, 만나자고 해서 만났다. 천천히 만나볼 생각이었지만 마치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지금뿐이라는 듯 자주 서로를 보고 싶어 했고, 거의 매일을 만났다.

그러는 동안 확실히 문제는 있었다. 살아온 시대가 다른 남과 여는 모든 상황을 놓고 생각과 대처가 달랐다. 다름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달랐다. 정말 속상한 건 이런 다름을 '그러려니'하고 넘어갈 수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또 하나, 나이 차이는 능력치의 차이와도 비례했는데 내 입장에서는 그래야만 하는 사실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것이 자신이 내게 남자로 떳떳하지 못 한 이유가 됐다.


게다가 그는 열 살이나 어렸지만 결혼에 대한 마음이 나보다 열 배는 컸다. 그때쯤 이루어진 누나의 결혼에 영향을 받아 자신도 그 과정을 빨리 밟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지금도 추후에도 결혼 생각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생각보다 단호한 나의 태도에 상처를 입은 듯했다. 나도 그 사람이 너무 좋아서 잠시동안은 고려라도 해볼까 유튜브와 인터넷으로 열 살 차이 나는 커플에 대한 사례를 찾아보기도 했지만 뭘 해도, 뭘 봐도 결국엔 아니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서로에 대해 하루하루 알아 가면서 마음은 점점 무너져갔다. 용기를 냈던 네 마음이 고마워서 정말 오랜만에 용기를 냈던 내가. 그 용기만으로도 안 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그 관계에 점점 무뎌져 갔다. 내가 긴 시간 동안 쌓아 올린 마음의 벽을 짧은 시간에 무너트린 사람 때문에 마음 편할 날에도 편하지를 못하다가 결국 현재의 나는 나보다 당신을 사랑할 자신이 없다는 이유로 그와의 관계를 끝냈다. 오랜만의 연애가 정신적으로 고단했던 탓에 4개월이라는 시간이 4년처럼 느껴졌었다.


생각해 보면 매번 그랬다. 고백을 받고 한번 만나보자고 하는 사람에게 결혼에 대한 내 생각부터 전달을 하고 상대방이 괜찮다 괜찮다 우겨서 만나면 관계 유지가 상당히 힘들었고, 조금 더 극단적인 반응으로는 면전에서 없던 일로 하자는 경우도 있었다. 아무래도 나이가 있다 보니 내가 이기적이고 냉정하게 느껴지더라도 그 부분은 먼저 말하는 것이 상대방에 대한 예의와 배려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동갑내기 친구가 내게 작업을 걸다가 실패하자 "넌 뭘 믿고 그렇게 철벽이냐? 평생 혼자 살아라." 하며 악담을 퍼부은 적도 있다. 나는 정말 화나지도, 웃기지도 않았고 그저 "그래." 하며 진심을 다해 대답했다. 그 악담에 힘입어 나는 여전히 혼자인가? 한 번씩 이런 생각을 하면 웃음만 나온다. 이 나이에도 연애를 연애 자체로만 하고 싶은 내가 이기적인 탓일까. 사실 이기적이고 싶지 않아서 철벽을 치는 건데.


아무튼 마지막 연애 후 일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짧은 연애가 마음을 송두리째 태워놔서 힘들었던 그 사이에도 이성에게 몇 번의 호감과 고백을 받았다. 그럴수록 나는 나를 모르겠더라. 감정 쏟는 게 싫은 걸 보면 난 아직 사랑을 할 사람이 못 되나 보다 싶다가도, 마음만 흔들어놓은 그 사람과의 흔적 하나하나에 반응하는 나를 보면 내게 아직 사랑이 필요한 건가 생각도 든다.


연애는 곧 결혼으로 귀결되는 30대의 사랑은 어렵다. 30대도 30대 나름이지 나는 내일모레 마흔이다. 다시 마음의 벽을 쌓아 올리게 될지, 이전의 철칙을 깨트린 김에 기준 없이 사람과 사랑을 대할지 어떻게 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어느 드라마에선 서른 되면 괜찮아진다고 했는데... 서른에 안 괜찮았던 나는 마흔 되면 괜찮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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