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믿음을 가진 집단의 행동력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이쯤 되니 크리스토퍼 놀란의 머릿속보다 아리 에스터의 머릿속이 더 궁금해진다.
영화 '유전'을 본 사람이라면, 그렇게 제대로 된 오컬트 무비를 본 사람이라면, 아리 에스터의 다음 작품을 기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랬고, 조금 늦었지만 '미드소마'를 보았다.
이 영화는 90년에 한 번, 9일 동안 열리는 스웨덴 한 마을의 하지제 '미드소마'에 초대된 친구들 이야기를 보여준다. 심리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는 주인공 대니로부터 시작되어 (사실상) 대니로 끝이 난다.
영화는 오프닝부터 흡입력 있게 흘러간다.
시종일관 어두컴컴했던 전작 '유전'과는 다르게 백야의 나라를 배경으로 컬러풀하고 불편할 정도로 밝은 영상이 계속된다. 때 묻지 않은 자연을 배경으로 이 지역의 공동체 '호르가'라고 말하는 마을 사람들은 지나치게 웃는 모습이었다가도 지나치게 심오하거나, 무기력한 표정을 짓는다.
기묘하게 흘러가는 축제를 경험함에도 불구하고 초대된 대니의 친구들은 각자의 생각에만, 욕심에만 빠져있고 궁극적인 이유를 찾지 않고, 묻지 않는다. 충격적인 의식을 치르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오는데, 대니는 그 장면들을 한순간도 피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피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게 맞겠다.
보기만 하다가 이후에는 참여함으로써 '호르가'에 동화되는 대니의 모습을 천천히 지켜보며, 고독을 해결하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이 얼마나 안타까운지에 대해 생각했다. 입이 마르고, 말랐다.
아리 에스터는 '유전'에서 가족은 선택할 수 없으니 받아들이라고 했다면, '미드소마'에선 '호르가'라는 공동체에게 내내 환영을 받은 유일한 사람, 대니의 선택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마지막 장면은 압권이다.
플로렌스 퓨가 오스카에서 (이 영화는 아니었지만) 여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 되었다는 게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았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완벽하게 이해했다. 그녀의 짓눌린 듯한 심리를 보여주는 연기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 것, 네 것으로 싸우지 않는 곳의 '호르가' 사람들을 선택함은 과연 옳은 일이었을까. 트라우마로 극심한 우울함을 서서히 극복하고 치유해가던 대니가 웃으며 영화는 끝나지만, 결코 해피엔딩이 아니라는 사실이 무섭다.
잘못된 믿음을 가진 집단의 행동력이 얼마나 무서운지에 대해서는 요즘의 우리도 많이 느끼는 부분이다.
대니의 선택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아리 에스터는 또 한 번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