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들은 보양식이라고 하면 삼계탕을 떠올린다. 이외에도 소고기나 오리, 장어, 전복 등이 들어가는 음식들을 보양식으로 많이 찾지만 나에게는 어떤 것보다 몸보신을 제대로 했다는 기분이 드는 메뉴가 따로 있는데 그게 바로 짱뚱어탕이다.
전라남도 순천에서 유명한 짱뚱어탕은 추어탕과 조금 닮아 있다. 짱뚱어를 갈아서 무청시래기 등등을 넣고 끓여낸 짱뚱어탕은 분명 걸쭉한데도 시원하다는 느낌이 먼저 다가오는 신비의 국물 요리다.
처음 짱뚱어탕을 먹기 전에는 두려운 마음이 있었다. 그것은 내가 추어탕을 못 먹는 이유에서 오는 두려움이었다. 딱 봐도 추어탕 사촌쯤 돼 보이는지라 이걸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지만 결국 맛에 대한 호기심이 두려움을 이겨버렸고짱뚱어탕을 처음으로 먹어버리게 된 것이다.
처음 만난 짱뚱어탕의 모습은 달리 특별해 보이진 않았다. 장을 푼 것 같은 색의 국물에 잘게 썰어 넣은 각종 건더기들이 보였다. 탕과 함께 나오는 밥은 일반 공깃밥이 아닌 솥밥이었는데 콩과 단호박이 들어있는 밥을 먼저 그릇에 옮겨두었다. 그리고 테이블 가장자리에 있는 제피가루를 국물 위에다 톡톡 흔들어 적당히 뿌렸다. 제피가루가 잘 섞이게 저은 다음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어보았다. 신세계가 열렸다. 내 입은 너무나 한국 사람 입이라 국물 맛을 보고는 자연스럽게 밥을 몽땅 넣어 말았다. 국물에 빠진 밥이 입으로 들어올 때마다 감탄했다. 이것이 짱뚱어 유니버스란 말인가!
먹다 보니 좀 의외였다. 내가 추어탕을 못 먹는 이유는 특유의 냄새도 있지만 추어탕의 주 재료가 되는 미꾸라지가 '갈아서' 들어갔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추어탕 한 입을 넣을 때 자꾸만 팔딱대던 미꾸라지가 내 입으로 통째로 들어오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생선을 날 것 그대로도 잘 먹는 사람이 말이다.
그런데 짱뚱어탕은 만드는 방식이 비슷함을 애초에 짐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맛있게 먹혔다. 그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예상하는 바로는 내가 짱뚱어의 생김새를 전혀 모르기 때문인 것 같았다. 생김새를 모르니까 짱뚱어가 '갈려서' 들어갔대도 추어탕의 미꾸라지처럼 내 입에 통째로 들어오는 것 같은 소름 돋는 느낌이 들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게다가 나는 향신료에 약한 편인데 생선이 들어간 요리에 많이 쓰는 제피가루나 산초가루는 전혀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참 요상한 입이다. 요상한 내 입에 짱뚱어탕이 들어왔을 때는 그 입 속이 요지경, 요지경 속이었다.
뚝배기를 뚫을 것처럼 남은 국물까지 싹싹 긁어먹고 깔끔하게 마무리 한 나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여태껏 삼계탕을 먹을 때도 못 느꼈던 보양의 뜨거움이 속 안에서부터 느껴졌다. 와! 이게 진짜 보양식이구나. 괜히 짱뚱어를 갯벌의 소고기라고 하는 게 아니구나.
짱뚱어탕에 대한 사랑이 날로 커가던 어느 날, 순천이 고향인 지인과 대화를 나누다가 짱뚱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지인은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짱뚱어 생긴 거 알면 못 먹을 수도 있어."
본인도 짱뚱어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짱뚱어를 비하하자고 한 발언도 아니라고 했다. 그저 비위가 약하면 그럴 수도 있다는 점을 참고하라는 투였다. 점점 궁금해진 나는 그 자리에서 스마트폰을 열어 포털사이트에서 짱뚱어를 검색해 보았다. 생김새가 좀 특이했는데 사는 방식은 더 특이했다. 보통의 물고기처럼 물속에 헤엄을 치며 숨 쉬는 것뿐만 아니라, 가슴지느러미를 이용해 갯벌 위를 기어 다니며 공기 중에서도 호흡이 가능했다. 알고 나니까 짱뚱어라는 친구가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진정한 능력자.
그래서인지 짱뚱어탕을 먹으면 왠지 어른의 음식을 먹은 기분이 든다. 구수하게 한 뚝배기 후루룩 들이키고 땀을 빼고 나면 이전에 쌓인 나쁜 기운을 털어내고 으라차차! 긍정의 힘을 얻는다.이런 최고의 보양식을 계절에 상관없이 먹을 수 있다는 점이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