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두 번쯤, 장사하느라 가게에 발이 묶여있는 나를 찾아오는 친구가 있다. 예고도 없이 찾아와서 바라는 것 없이 커피를 한잔하고 가는데 친구집이라고 한 번을 계산 없이 커피를 마신 적이 없는 사람이다.
친구를 알게 된 건 약 3년 전이었다.
신기하게도 처음 알게 된 곳이 SNS였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님이 계신데 이 동네에선 그 작가님에 대한 혹은 책에 대한 대화를 나눌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찮게도 알고리즘에 의해 나와 같은 작가님을 좋아하는 이 친구를 알게 됐다. 사는 동네도 근처라니. 파워 E 성향의 내 적극적 액션으로 그 친구와 나는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으로 처음 만나게 되었다.
커피 한잔을 하면서 서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삶을 사는 사람인지 간단한 소개를 하고 자연스럽게 책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종종 만나서 한두 시간씩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하곤 했는데, 알면 알수록 성격은 비슷하지 않지만 생각하는 건 비슷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슷한 듯 비슷하지 않은 비슷한 너. 그렇게 우리는 이 구역의 베프가 되었다.
친구가 찾아오면 가끔 한가한 시간을 틈 타 옆 상가에 밥을 먹으러 다녀오기도 하는데, 최근에는 날씨가 더워져서 시원한 게 먹고 싶어 밀면집엘 갔었다. 간판 글씨부터 오래된 세월이 느껴지는 게 딱 맛집 포스의 밀면집이었다.
밀면 한 그릇씩을 주문하고 우리는 또 삶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어디 엉덩이만 붙이고 앉으면 대화가 물 흐르듯 이루어졌다. 그러다 한 번씩 삼천포로 빠진다고 한들 하나도 어색하지 않은 사이. 그렇게 삼천포로 빠졌다가도 다시 노를 저어 제 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사이. 우리 사이에 대해 이런 긍정적 생각을 하는 사이 밀면이 나왔다.
일을 하다가 잠시 나와서 친구와 함께 먹는 밀면은 생긴 것 이상으로 맛있었다. 빠르게 나왔고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인데 이렇게 맛있다고? 밀면은 패스트푸드야?
나의 혼잣말 같은 말에 친구는 "그러니까." 공감하며 받아쳤다.
잠시 부재중이라는 메모를 붙이고 식당으로 가서 주문하고 다 먹고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30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 갖가지 반찬에다 국물까지 나오는 백반을 먹을 때 보다도 꽉 찬 느낌이 들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왜지? 친구를 보내고 나서 생각해 보았다.
빠르게 나온다고 그것이 정성이 덜 들어간 음식이라는 말은 아니니까.
빠르게 친해졌다고 그 우정에 진심이 덜 해진 것도 아니니까.
밀면의 30분도, 친구와 나의 3년도 어느 하나 덜한 게 없었다. 이게 나의 의문에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친구는 나보다 네 살 오빠다. 오빠라고 하는 것을 낯간지러워해서 그냥 이름을 부르고 친구라고 칭한다. 네 살 만큼 더 살았다고 네 살 어린 만큼 나를 무시하지도 않고 존중해 주며 항상 내게 진심을 다한다.
지난 3년 간 이 친구를 보며 떠오르는 표현은 딱 하나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정말로 나무처럼 키가 190이 넘을 정도로 크기도 하고, 자신의 키보다도 넘치는 마음을 내게 나눠준다.
글 쓰는 사람으로 슬럼프에 빠진 요즘의 내 상태를 이빨로 밀면을 끊어내듯이 쉬이 끊어낼 수 있도록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는 나의 친구에게. 당신의 다정함에는 큰 힘이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