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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커피 May 29. 2024

밀면은 패스트푸드야?

밀면의 30분도, 친구와 나의 3년도 어느 하나 덜한 게 없었다

일주일에 두 번쯤, 장사하느라 가게에 발이 묶여있는 나를 찾아오는 친구가 있다. 예고도 없이 찾아와서 바라는 것 없이 커피를 한잔하고 가는데 친구집이라고 한 번을 계산 없이 커피를 마신 적이 없는 사람이다.


친구를 알게 된 건 약 3년 전이었다.

신기하게도 처음 알게 된 곳이 SNS였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님이 계신데 이 동네에선 그 작가님에 대한 혹은 책에 대한 대화를 나눌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찮게도 알고리즘에 의해 나와 같은 작가님을 좋아하는 이 친구를 알게 됐다. 사는 동네도 근처라니. 파워 E 성향의 내 적극적 액션으로 그 친구와 나는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으로 처음 만나게 되었다.


커피 한잔을 하면서 서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삶을 사는 사람인지 간단한 소개를 하고 자연스럽게 책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종종 만나서 한두 시간씩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하곤 했는데, 알면 알수록 성격은 비슷하지 않지만 생각하는 건 비슷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슷한 듯 비슷하지 않은 비슷한 너. 그렇게 우리는 이 구역의 베프가 되었다.



친구가 찾아오면 가끔 한가한 시간을 틈 타 옆 상가에 밥을 먹으러 다녀오기도 하는데, 최근에는 날씨가 더워져서 시원한 게 먹고 싶어 밀면집엘 갔었다. 간판 글씨부터 오래된 세월이 느껴지는 게 딱 맛집 포스의 밀면집이었다.


밀면 한 그릇씩을 주문하고 우리는 또 삶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어디 엉덩이만 붙이고 앉으면 대화가 물 흐르듯 이루어졌다. 그러다 한 번씩 삼천포로 빠진다고 한들 하나도 어색하지 않은 사이. 그렇게 삼천포로 빠졌다가도 다시 노를 저어 제 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사이. 우리 사이에 대해 이런 긍정적 생각을 하는 사이 밀면이 나왔다.


일을 하다가 잠시 나와서 친구와 함께 먹는 밀면은 생긴 것 이상으로 맛있었다. 빠르게 나왔고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인데 이렇게 맛있다고? 밀면은 패스트푸드야?

나의 혼잣말 같은 말에 친구는 "그러니까." 공감하며 받아쳤다.


잠시 부재중이라는 메모를 붙이고 식당으로 가서 주문하고 다 먹고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30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 갖가지 반찬에다 국물까지 나오는 백반을 먹을 때 보다도 꽉 찬 느낌이 들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왜지? 친구를 보내고 서 생각해 보았다.


빠르게 나온다고 그것이 정성이 덜 들어간 음식이라는 말은 아니니까.

빠르게 친해졌다고 그 우정에 진심이 덜 해진 것도 아니니까.


밀면의 30분도, 친구와 나의 3년도 어느 하나 덜한 게 없었다. 이게 나의 의문에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친구는 나보다 네 살 오빠다. 오빠라고 하는 것을 낯간지러워해서 그냥 이름을 부르고 친구라고 칭한다. 네 살 만큼 더 살았다고 네 살 어린 만큼 나를 무시하지도 않고 존중해 주며 항상 내게 진심을 다한다.

지난 3년 간 이 친구를 보며 떠오르는 표현은 딱 하나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정말로 나무처럼 키가 190이 넘을 정도로 크기도 하고, 자신의 키보다도 넘치는 마음을 내게 나눠준다.


쓰는 사람으로 슬럼프에 빠진 요즘의 상태를 이빨로 밀면을 끊어내듯이 쉬이 끊어낼 있도록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는 나의 친구에게. 당신의 다정함에는 큰 힘이 있다고.

받기만 하는 것 같아서 늘 미안하고 고마운 나는 이 글을 통해서라도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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