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백호의 유명한 곡 <낭만에 대하여>의 가사처럼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생각할 때 내겐 이것이 필요하다. 닭발. 그것도 무려 불향이 가득한 뼈 있는 닭발이!
소녀 시절의 나는 둥글고 널따란 검은색 팬에 시뻘건 양념 색깔이 확실하게 보일 정도로 매운 엄마표 닭발을 좋아했다. 엄마가 닭발을 만드는 날이면 식구들은 물론 이웃집 사람들까지 우리 집 거실에 둘러앉아 각자의 발골 실력을 자랑했다. 매워 죽겠다고 쓰읍 쓰읍 거리면서도 멈추지 못하게 만드는 맛이었다. 가족구성원이 적어지며 바뀌는 세대, 이웃과의 교류가 점점 사라지는 때에 이런 모습은 명장면이 되겠구나 싶은 정이 넘치는 시간이었다. 그런 추억 때문인지 내게 닭발은 내 마음속에 특별한 메뉴로 자리 잡았다.
어른들이 비닐장갑을 낀 왼손에 닭발 하나를 들고 오른손으로는 막걸리 잔을 몇 번이고 들었다 놨다 하며 한잔씩 마실 때 나는 고작 사이다나 콜라를 홀짝였다. 그때엔 그것도 맛있는 먹을 것과 마실 것 조합이었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 깨달았다. 닭발엔 술이 찰떡궁합이라는 것을. 불난 혀에 부채질하는 알코올이 필요하다는 것을.
서울에서 직장을 다닐 때 유난히 닭발을 좋아하는 동료들이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엄마표 닭발이 최고라는 생각을 하던 나였지만 바깥 닭발을 내 돈 주고 사 먹는 일이 종종 생겼다. 당시엔 직화로 구워 불향이 가득한 닭발이 유행했는데 맛보다 향에 먼저 끌림 당할 수밖에 없는 나란 인간은 집 닭발의 정을 저너머로 보내고 바깥 닭발의 감흥에 익숙해졌다.
사람들과 어울려 놀고먹는 시간도 많지만 혼자서 뭘 한다는 것 자체를 잘하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하는 나는 언젠가부터 혼자 닭발을 먹는 날이 있다. 어쩌다 한 번씩이긴 한데 그럴 때 보통은 내 마음 한 구석이 뻥 뚫린 기분이 드는 날, 그 공허함을 닭발의 매운맛으로 메운다. 내가 맹탕 같은 기분이 들고 삶이 허무하게 느껴질 때 반드시 뼈가 있는 닭발을 맵기 단계를 최고로 해서 배달 주문을 한다. 삼십 분 정도를 기다리다 주문한 닭발이 오면 봉투를 열기 전부터 불향이 코를 찌르는데 그때 이미 반은 만족감을 느낀다. 작은 상을 TV 앞에 놓고 닭발과 양배추 샐러드와 술을 세팅하고 영화 한 편을 틀면 준비 끝. 그때부터 나머지 반의 만족감을 찾아 나선다.
매운 양념 맛이 혀를 자극하는 닭발 하나하나를 발골하며 먹으면 엄마 화장대에서 몰래 바른 립스틱처럼 입술과 주변이 제 멋대로 빨갛게 물든다. 불난 혀에 부채질하는 알코올로 입 안을 적셔주면 완벽한 만족의 상태. 틀어놓은 영화를 먼산 보듯 보면서 닭발을 씹다 보면 무의미한 것들이 유의미해진다. 생각 정리에 도움 된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게다가 매운맛을 빌미로 울 수도 있다. 혼자 무슨 청승이냐는 말을 나 자신에게 하고 있으면서도 '이건 다 닭발이 매워서 그래!' 하는 합리화가 가능하니까. 그렇게 눈물 콧물 쏙 빼고 나면 속이 좀 후련해진다.
요즘 나는 사람을 잃었는지 사랑을 잃었는지 나조차 모르는 공허함에 휩싸여 있다. 그래서인지 며칠 전에 입에서 불이 날 정도의 닭발을 먹고 다음 날 화장실에 몇 번을 드나들었는데도 또 떠올라서 사진을 보고 있다. 사람을 잃고, 사랑을 잃는 삶의 지속. 그럴 때면 도라지 위스키 한잔 대신 닭발을 들고 생각한다.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에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