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했을 때 좋은 카페의 기준은 커피 맛과 인테리어가 주는 분위기, 음악이다. 커피 맛이야 기본이라고 생각하고 인테리어도 요즘은 대부분 저마다의 분위기를 갖고 있지만 음악은 좀 다르다. 음악 선곡이야말로 커피 맛도 공간의 분위기도 좌우할 수 있는 카페의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카페 사장의 감성 넘치는 플레이리스트'
'사장님 지금 나오는 노래 제목이 뭐예요?'
유튜브에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한 번쯤은 이런 제목을 봤을 것이다. 카페는 어쩐지 감성이라는 단어와 어울리는 공간이라서 그런지 실제로 운영하다 보면 그날의 BGM에 대해 이야기하는 손님들도 꽤 많다.
커피가 맛있다는 칭찬만큼이나 선곡이 좋다는 말을 좋아하는 나의 커피집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늦어도 오전 8시에는 문이 열려있다. 장사 준비를 위해 7시 반쯤에는 도착해서 커피 세팅을 하는데, 원두에 손을 대기도 전에 먼저 하는 것이 바로 음악을 고르는 일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음악을 찾아 듣는 것을 좋아했다.
형편이 넉넉지 않아서 CD플레이어나 MP3 같은 신문물을 가져본 적이 없던 10대 때 내가 유일하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은 라디오나 카세트테이프를 이용하는 것뿐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학교 근처 버스정류장 앞에 있던 레코드점의 사장님과 절친이었다. 이원종 배우와 비슷한 체격과 생김새로 언뜻 보면 좀 무섭지만 웃으면 한없이 다정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분이었다.
언젠가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새 앨범을 사면서 사장님께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아저씨. 저는 친구들처럼 CD플레이어나 MP3가 없어요. 그렇다고 집에 컴퓨터가 있는 것도 아닌데 팝송을 다양하게 들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레코드점 운영 철학이 남달랐던 사장님의 눈에는 그런 내가 예뻐 보였는지 한 가지 제안을 하셨다.
"네가 공테이프만 가지고 오면 내가 듣고 싶은 팝송을 녹음해 줄게."
당시에는 지금처럼 저작권이나 공연료 같은 문제가 있던 것도 아니고 녹음된 믹스테이프도 판매되던 때라 문제 될 것이 없었지만 단 하나 돈이 문제였다. 어릴 때부터 공짜라는 개념을 좋아하지 않았던 나라서 사장님께 그냥 부탁드리기는 싫었다. 어차피 틀어놓는 노래들을 녹음해 주는 건데 별일도 아니라며 괜찮다고 하셨지만 나는 꿋꿋하게 한 곡당 얼마씩 드리겠다고 말씀드리고 우리의 거래는 성사됐다.
사장님은 내가 부탁드린 대로 빌보드차트 순위권의 노래나 새로 나온 팝, 올드팝 등을 녹음해서 주셨다. 그 테이프 하나를 받으면 한동안 매일 그 음악만 들으면서 행복해했다. 그건 마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서 퀼이 엄마에게 받은 끝내주는 믹스를 들을 때와 다름없었다.
어릴 적부터 그 정도로 음악에 진심이었던 나는 여전히 매일 음악과 함께 한다.
예전과 좀 다른 것이 있다면 모르는 노래를 매번 찾아 듣는다기 보다는 알던 노래를 상황에 따라 골라 듣는다. 여기서 상황이란 날씨라던가, 기분이라던가, 요일이 될 수도 있고 전날 내가 본 영화가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비가 오는 날에는 주로 재즈나 피아노 연주곡을 고른다. 유동 인구가 많은 건물 1층에 있어서 정문과 후문이 내도록 여닫히며 웅성거리기 때문에 다른 장르는 피하고 쳇 베이커나 마일스 데이비스, 폴 데스몬드 등의 재즈나 지브리 애니메이션 OST, 브루노 바보타, 선우예권의 라흐마니노프 같은 피아노 곡을 틀어놓는다.
기분이 멜랑꼴리 할 때는 시가렛 애프터 섹스, 수프얀 스티븐스, 닐 영, 비틀즈를 듣고 월요일에는 산뜻한 시작을 위하는 의미로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와 엘라 피츠제럴드, 금요일에는 주말을 맞이하는 기념으로 마츠바라 미키 같은 시티팝을 듣는다.
전날 본 영화의 사운드트랙이 좋았을 땐 어김없이 그 영화음악을 고른다. 최근에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을 보고 류이치 사카모토를 기리며 그가 참여한 OST를 하루종일 틀어놓기도 했다. 마감 정리를 시작하는 노동요로도 <라라랜드>나 <맘마미아>, <보헤미안 랩소디>의 OST가 좋지만 퍼렐 윌리엄스, 마일리 사이러스, 다이나믹 듀오, 장기하와 얼굴들 역시 좋다.
오늘은 곧 비가 쏟아질 것 같은 흐린 날씨라 내가 좋아하는 올드팝 리스트를 듣고 있는 중이다.
매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라지 사이즈로 사드시는 단골손님은 잠시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쭉 들이켜 마신 후 "하~" 하고 소리를 내며 안도의 숨을 쓸어내리셨다. 커피와 음악은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지. 그러니 아침엔 꼭 필요하다.
쓰다 보니 끝도 없을 것 같은 나의 플레이리스트. 역시 중요한 건 끊기지 않는 BGM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