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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커피 Oct 17. 2024

핫초코 미떼 같은 아빠

크리스마스 연휴가 시작되던 지난주 토요일에는 일찍이 병원에 들러 진료를 받고 가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아이들을 데려온 부모님이 많았다. 진료를 기다려야 하거나 진료를 다 보고 내려온 사람들 모두 따뜻한 것을 사가려고 우리 카페를 들렀는데 그날의 인기메뉴는 단연 핫초코였다.


평소에는 초코를 먹이지 않으려고 하는, 그러니까 그 중독성 있지만 이빨 썩을 것 같은 나쁜 맛을 최대한 늦게 먹었으면 하는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도 하듯이 하나같이 핫초코를 주문해 주셨다. 한 시간 동안 거의 스무 잔 가까이 팔았을 정도로 초코는 핫했다.


연이은 초코 주문을 받다가 잠시 텀이 생겼을 때 아빠와 아이 둘 손님이 들어오셨다. 역시나 핫초코 세 잔을 주문하시길래 나는 오늘 참 달달한 날이네 생각하며 베이스를 준비하고 스팀을 치기 시작했다. 얼른 세 잔을 만들고 서브를 하는데 아빠가 잠시 자리를 비운 상태라 망설여졌다. 이걸 지금 주면 혹시 아이들이 쏟지는 않을까 잠시 고민했지만 아이들도 이미 많이 커 보였고, 우유가 식기 전에 줘야 할 것 같았고, 내가 제일 바쁜 토요일 아침 시간대라 주문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자리에 앉아있는 아이들에게

"이거 뜨거운 거니까 조심해야 해요. 쏟지 않게 조심히 먹어요." 말하며 핫초코를 건넸다.


그렇게 말한 내게 "네"하고 대답한 지 1분도 지나지 않아서 살짝궁 어떤 소리가 들리면서 동시에 싸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둘 중 큰 아이가 "이거 쏟았어요." 하며 스마트폰 게임 화면과 나를 번갈아 보며 말하고 있었다. 초코 한 잔을 그대로 쏟은 동생은 멀뚱멀뚱 나만 보고 서 있었다.

주문이 밀리고 있어서 일단 얼른 동생에게 어디 다친 데는 없냐 물었고 없다고 하길래 얼른 물티슈를 챙겨주며 "일단 옷부터 좀 닦고 있어요. 손님이 기다리고 계시니까 음료만 다 만들어드리고 도와줄게요!" 말했다.

다행히도 그때 자릴 비웠던 아빠가 들어왔고 나는 커피를 내리다가 방향을 틀지 못하고 고개만 겨우 내밀어 상황 설명을 빠르게 했다.


"아이고."


이런 상황을 몇 번 겪어봐서 아는데 보통의 아빠 혹은 엄마는 아이들에게 짜증부터 내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그 아빠는 내가 겪었던 보통의 상황처럼 한숨도 쉬지 않고, 짜증스러운 목소리 한번 내지 않고 그저 아이고~ 괜찮아? 하며 테이블에 있던 물티슈로 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한 봉지를 다 썼는지 당신의 차로 가서 휴대하고 있던 물티슈까지 가지고 와서 테이블이며 바닥이며 닦는 걸 보는데 계속 들어오는 주문 때문에 돕질 못하는 내 마음이 불편했다.


"아버님~ 제가 이거 다 끝내놓고 닦을 테니 맨손으로 그러지 말고 그냥 두세요. 불편하실 테니 자리만 옮겨 앉으세요."


그렇게 만류해도 아니라며 열심히 어질러진 자리를 치우고 계셨다. 공교롭게도 이어지는 주문이 끝날 때쯤 그 정리도 끝이 났다.


옆 자리에서 얼어있는 아이들을 보며 아빠는 괜한 소릴 하며 웃으셨고 아이들도 점차 표정이 풀려갔다. 그러다 하시는 말씀이 "괜찮아. 지금은 괜찮은데 그래도 조심해야지. 크게 다칠 수도 있고 이렇게 피해를 주니까."


이런 게 교육이 아닐까 생각을 했다. 아이들은 충분히 자신의 실수를 인지하는 듯했다. 게임만 본다고 동생을 챙기지 못한 오빠와 조심하라는 안내를 받았는데도 조심하지 못했던 동생은 주말 아침부터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아빠를 곤란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굉장히 미안해하고 있었다. 착하고 귀여운 남매의 소중한 표정을 잊지 못한다.


거듭 사과를 하는 아빠에게 나는

"아니에요. 바쁜 거 아니었다면 제가 보고 있었을 텐데... 아이가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하고 말했는데 돌아오는 답은

"아이고 아닙니다. 제 잘못이죠. 제가 하필 자리를 비워가지고 이런 일이 생겼으니까요. 아무튼 너무 죄송했습니다." 였다.


아빠와 함께 아이들도 내게 죄송하다고 꾸벅 고갤 숙여 인사를 하고 쪼르르 아빠를 따라가는데 그 모습을 보니 겨울이면 볼 수 있는 초코 음료 광고가 떠올랐다. 나는 그 광고를 볼 때마다 아이에게, 가족에게 저렇게 다정한 남자라면 결혼해서 살 만하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그날의 아빠를 보면서도 같은 생각을 했다. 핫초코 미떼 같은 사람을 현실에서 볼 줄이야.


크리스마스 연휴가 시작되는 토요일 아침 초코는 핫했고, 아빠는 따뜻했다.


치운다고 치웠지만 아무래도 하얀 바닥에는 자국이 많이 남았고 손님들이 다 나가셨을 때야 나는 각을 잡고 새로 걸레질을 했다. 하얀색의 파벽에도 초코 색이 입혀졌지만 그런 것쯤이야 아무렴 상관없었다.

손님이 쏟은 음료의 얼룩마저 따뜻하게 남은 그날은 내가 장사를 시작한 지 딱 일 년 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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