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봄에 첫 방문을 한 손님이 계셨다.
50대로 보이는 남성분이었는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뚜껑 없이 달라고 하셨다. 두 번째 방문 때도 똑같은 주문을 하시길래 기억해 놓으려고 얼굴을 자세히 봤는데 꼭 내가 아는 사람 같았다. 마침 보관하는 쿠폰의 이름도 내가 생각하는 사람과 같았고 세 번째, 네 번째 방문 때는 거의 확신을 하고 다섯 번째 방문 때 조심스럽게 여쭤보았다.
"혹시... 변호사님 아니세요?"
손님은 굉장히 놀란 표정으로 맞다고 대답하셨다.
"그렇죠? 제가 아는 그 변호사님, 영화에서 실제 모델이었던 그 변호사님 맞으시죠?" 했더니 약간 붉어진 얼굴로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어떻게 알았느냐고.
"저 그 영화 상영할 때 영화관 두 번 가서 봤었어요. 기사도 많이 찾아봤었는데 그때 실제 모델이라는 변호사님 사진을 봤어요. 영광이에요."
변호사님은 수줍어하셨지만 기분이 좋은 것 같았고 그날 내게 명함을 주고 가셨다. 알고 보니 사무실이 우리 바로 옆 건물이었고, 이후 나의 단골손님이 되었다.
그분은 정지영 감독의 영화 <부러진 화살>에서 박원상 배우가 맡은 박준 변호사 역할의 실제 모델인 변호사님이었다. 온갖 이슈가 있었지만 실제로 뵈니 당신이 변호사라고 너스레를 떨지도 않고 항상 내게 존중의 태도를 보이셨다.
신기했다. 우리 카페에서 이런 우연이 생기다니!
우연에 대해 생각하면서 거슬러 올라가 보니 이런 일도 있었다.
커피 일을 처음 배웠던 카페에서는 감독이나 배우의 인터뷰 때문에 미팅룸 예약이 간혹 있었는데 영화 상영 당시 주연이었던 박원상 배우가 인터뷰를 하러 온 것이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배우라는 것을 사장님부터 직원들 모두가 알고 있었는데 오후 출근을 하는 내게 오전 파트 직원이 미리 전화를 해준 것이다.
"오늘 미팅룸 예약 있대. 박원상 배우래!"
두근두근. 급하게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급하게 간식 선물을 준비해서 급하게 출근했다. 급했던 준비과정과는 달리 도착해서부터는 뭉그적뭉그적 괜히 홀 정리를 하면서 흘끔흘끔 쳐다보다가 박원상 배우의 인터뷰가 끝났을 때 냅다 배꼽인사를 하면서 선물을 안겨드렸더니 놀람과 동시에 고마워하셨다. 인터뷰를 담당했던 국장님이 평소 나를 예쁘게 봐주셨던 분이라 갑자기 선물을 전하는 날 보고 놀란 박원상 배우에게 간단히 소개를 해주셔서 그 덕에 사인도 받고 사진도 찍고 마 다했다. 그리고 잠시 영화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도 했다.
정말 공교롭지 아니한가. 그때 그 배우가 연기한 영화 속 실제인물을 손님으로 만나다니. 게다가 단골손님이 되다니 말이다.
최근에 내가 읽은 책은 <국선변호인이 만난 사람들>이다.
책을 읽으며 변호사님이 떠올랐고 한동안 못 뵈었네 생각하고 있는데 거짓말처럼 눈앞에서 누군가가 친근하게 "안녕하세요." 인사하며 다가오는데 변호사님이셨다. 오랜만이라며 근래에 많이 바빴다던 변호사님은 그때부터 다시 오고 계신다. 한참 전에 내게 소개해 주셨던 사모님도 함께 오셔서 커피를 사 가지고 나란히 걸어가는 뒷모습을 가만히 보는데 새삼 세상은 참 좁다고, 사람에게 그 좁은 세상이 주는 경험은 넓고 다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어느 순간에 어떤 일을 겪을지, 어떤 사람을 만날지. 사람 일은 정말 모르는 거다.
나는 내 카페가 이런 우연이 많은 재밌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