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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커피 Oct 17. 2024

커피집 사장이 축덕일 때 생기는 일

고백하건대 나는 축덕이다. 그것도 프로축구, 이름하여 K리그의 팀을 응원한 지가 18년 차인 고인물이다.

축구에 관심 없는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하지만 스포츠뉴스를 통해 축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카페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알 수 있다. 축구에 관련된 책들, 무엇보다 지금은 은퇴한 팀의 레전드 선수의 얼굴이 드러난 책과 팀의 단체사진을 두고서 '제가 K리그 팬입니다.' 하며 은근하게 티를 내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응원하는 팀의 연고지가 내가 사는 곳과 전혀 다른 지역이라 좀 생뚱맞기도 하고 하필 지역감정이라는 것이 가장 심하기로 유명했던 두 지역이기에 해두면서 조심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기대되기도 했다.

K리그를 보는 축덕을 우연히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그런데 신기하게도 축구장에는 사람이 많지만 주변에서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을 찾기란 힘들었다. 서점에 가면 사람이 많지만 주변에서 읽는 사람들을 찾기가 힘든 것과 비슷했다. 그리하여 감히 기대했던 마음을 고이 접어두었다. 하지만 역시 사람은 기대하지 않을 때 기쁨이 배로 다가오는 것.



엄마와 아들 손님이 오셨는데 두 분이 책을 진열해 둔 곳 앞에서 수군거리는 게 들렸다. 마침내!

내가 사는 지역을 연고로 한 팀의 서포터스를 만난 것이다. 나는 처음으로 만난 K리그 팬이 너무 반갑고 귀해서 7000원 치 음료를 사 가시는 분들께 2400원 치 쿠키를 서비스로 드렸다. 그 손님들은 덩달아 기뻐하며 다음에 또 올게요 큰 소리로 인사하며 가셨다. 흡족한 첫 만남이었다.



두 번째 만남은 대구로 원정경기를 보러 가기 전의 일이었다.

젊은 커플이 커피를 사러 왔다가 주문하는 포스에 자그맣게 붙여놓은 우리 팀의 엠블럼 스티커를 보고 물었다.

"어? 전북 응원하세요?"

깜짝 놀라서 그렇다고 대답했고 들어보니 그분들은 많은 구단 중 하필 원정경기를 앞두고 있는 상대팀 대구의 서포터스였다. 서로 신기하다며 인사를 나누며 곧 있을 원정경기를 나도 보러 간다고 이야기했다.

파워 E 성향을 가진 나는 그분들께 당시 대구에서 우리 팀으로 이적해 온 선수에 대한 이야길 꺼내고 상대팀 서포터스의 입장을 듣기도 했다. 와중에 남녀의 입장 차이로 셋이 빵 터지기도 했다. 재밌는 우연이었다.



그리고 최근, 마감을 앞둔 저녁에 커피 두 잔을 사러 오셨던 손님이 다음 날 아침에도 오셨었다.

그분은 매장을 둘러보다가 갑자기

"전북 팬이세요?" 묻길래

"네! K리그 보세요?" 했더니 민망한 듯 웃으면서

"저 울산 팬이에요." 대답하셨다.


맙소사. 오픈 년 만에 이런 일이 생기다니!

울산은 리그에서 몇 년 사이 우리 팀과 무려 챔피언 자리를 놓고 싸우게 돼 자연스럽게 라이벌 구도가 만들어진 팀이었다.


커피를 내리려다 말고 내 몸을 양팔로 감싸 쥐고

"진짜요???? 와 저 지금 소름 돋았어요!"

"왜요?"

"제가 매장에 전북팬인걸 티를 내놔도 K리그 안 보는 사람은 못 알아보잖아요. 그 와중에 그래도 언젠가는 울산 팬을 만나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그땐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는데 장사 시작하고 딱 일 년 만에 만난 거예요 지금!"


손님은 내 반응을 보며 주체할 수 없다는 듯 크게 웃으셨고 나는 진짜 닭살이 돋은 팔을 내보일 지경에 이르렀다. 이어서 그분은 자신의 K리그 역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울산에서 살아서 어릴 때부터 축구장을 다녔다며, 자신이 생각했을 같은 기업을 스폰서로 팀의 이런 구도가 K리그를 흥하게 해 줄 있는 요소라고 생각한다고. 그리고 잊지 못할 같던 몇몇 경기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며 항상 열정적인 우리 서포터스가 대단해 보인다고 말했다. 손님과 이런 이야기를 나눌 있다니, 공감할 있다니 감동적이었다.


병원 볼 일로 잠시 오셨다는 그분이 돌아가실 때 나는 또 그냥 보낼 수 없어 서비스 쿠키를 쥐여드렸다.

유럽처럼 축구 인프라가 부족한 우리나라의 축구 발전을 위해서는 자국의 리그에 관심을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나는 축구장 이외의 장소에서 K리그 팬들을 우연히 만날 때면 그저 반갑고 소중하다.


그리고 내 공간에서 내가 의도한 대로 우연은 일어났다.

그런 생각을 하니 2000년대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한 멜로 영화의 홍보 문구가 떠올랐다.

우연히 우연히 그러나 반드시.


나는 그 우연이 또 일어날 거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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