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커피 Oct 17. 2024

양귀자 선생님의 글로 이어진 손님과 나

주문을 받는 포스기 옆에는 항상 내가 읽고 있는 책이 자리하고 있다.

손님들이 주로 테이크아웃을 하는 곳이라 한잔 한잔 주문이 이어 들어오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곳에 두고 틈새 독서를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가끔 주문을 하면서 책을 보고 아는 척을 하거나 말을 걸어오는 분들이 계신다. 짧은 순간이라도 그런 인사가 내 입장에서는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양귀자 작가님의 소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을 읽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카페라테 한 잔을 주문하신 손님께서 책을 가만히 보시더니 먼저 말을 건넸다.


"이건 개정판인가 봐요. 제가 학생 때 이 책을 처음 읽었거든요. 그때 읽었던 건 표지가 이렇지 않았는데."


고등학교를 다닐 때 그 소설을 처음 읽었다는 손님은 여고시절을 회상하시는 듯 얼굴에서 아련한 느낌이 물씬했다. 나는 반도 못 읽었을 때라 책 한 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순 없지만 어떠냐는 손님의 물음에 50페이지만 읽어도 좋다는 말이 나오는 소설이라며 신나게 대답했다. 손님께 커피가 아닌 책에 관한 질문을 받는 것이 묘하기도 하고 즐거웠다. 그것은 나와 손님이 카페라테 한 잔을 주고받는 시간으로 가진 찰나의 행복이었다.


꽤 두꺼운 그 소설을 읽는 걸 멈추지 못하고 빠르게 완독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저녁, 50대로 가늠되는 여성분들이 커피를 드시러 오셨다. 풍기는 느낌이 다들 둥글둥글하고 점잖으신 분들이었다. 차를 주문하고 담소를 나누다가 생각보다 빨리 자리를 정리하고 나가시면서 계산을 하셨던 분이 내 눈을 보며 "잘 마시고 가요." 인사하셨다. 마감하기 전 마지막 손님이었는데 웃으며 인사를 해주신 덕분에 하루를 기분 좋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 5분쯤 있다가 그분이 다시 오시더니 내게 배터리 충전을 부탁해도 되냐고 물으셨다. 주차해 뒀던 차를 타러 갔는데 갑자기 차 문이 열리지 않아서 서비스 기사님을 불렀다고, 전화를 받아야 하는데 배터리가 거의 없어서 이렇게 다시 왔다고 하셨다. 연락이 가능할 정도라도 충전이 필요하시다길래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보조배터리로 충전을 해드렸다.


고맙다며 주문을 새로 하시겠다고 하시는 손님께 일부러 안 그러셔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괜히 불편해하실까 봐 하던 정리를 마저 했다. 그 사이 손님은 책을 하나 꺼내어 앉아서 읽고 계셨다. 그러다 내게 물으셨다.


"매장에 둔 이 책들 다 읽은 거예요?"

"대부분은 읽은 거예요. 제가 좋아하는 책을 골라서 가져다 놓은 거거든요."

"진짜요?" 하면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그럼 혹시 이 책이요. 제가 살 수 있을까요?" 하셨다.

그분이 들고 있던 책은 교롭게도 양귀자 작가님의 <모순>이었다. 잠시 읽어봤는데 좋아서 계속 읽고 싶다고 하시길래 가져가서 읽으시고 다음에 오실 때 갖다 달라고 더니 엄청 놀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그래도 돼요? 아니 저는 진짜 살 수 있음 사가려고 했는데. 처음 보는 사람인데 선뜻 이렇게 책을 빌려준다고 하는 게 신기해요." 하셨다.

나는 진심을 담아 있는 그대로 대답했다.

"저 양귀자 선생님의 <모순>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책 한 분이라도 더 읽으면 좋으니까요."


굉장히 감동받은 눈빛을 하고 나를 보며 그럼 미안하지만 빌려가서 읽고 가져오겠다고 말씀하시면서 내게 명함을 꺼내어주셨다. 명함으로 봐서는 인테리어 회사의 외주 업체를 운영하는 분이었는데 그분은 자신을 "제가 사실 시인이에요." 하고 소개하셨다.

본업은 다르지만 시도 쓰고 계신다며 당신이 쓴 시집을 알려주시고 일주일에 한 번씩 지역신문에 시를 해석하는 글도 쓰고 계신다고 했다. 한 번씩 갖는 이런 우연한 만남이 정말이지 신기했다. 그리고 그 감정은 나를 투머치하게 만들었다.


"와아! 저 어릴 때 꿈이 시인이었어요."

"어머 그래요? 아~ 책도 그렇고 글 자체에 관심이 있나 보다."

"사실 저책 중에 제가 참여한 에세이집도 있어요." 했더니 또 한 번 놀라시며

"세상에! 그럼 혹시 그 책도 읽어봐도 돼요?"

나는 공저 작가들이 있어 내가 쓴 부분은 많지 않다고 말씀드리며 흔쾌히 빌려드렸다. 그리고 시에 관한 좋은 행사가 있으면 불러주겠다고 전화번호까지 받아가셨다.



다음날 아침,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메시지가 왔다.


주영씨!

책 잘 보았습니다

글솜씨가 좋던데요

후다닥 넘어가는 책장 때문에 행복했어요

곧 돌려줄게요



난 언제나 내 글이 부끄러웠다. 글로는 여전히 부족함을 많이 느끼지만 글을 쓰는 내 마음은 부끄럽지도, 부족하지도 않았다. 그런 마음을 현역으로 글을 쓰고 계신 분이 알아봐 주신 것 같아 아침부터 행복감이 퍼졌다.

이게 바로 글로 소득 아닐까. 글을 통해 수익보다 귀한 경험과 사람을 얻는다는 것.


그리고 나의 '글로 소득'은 계속되는 중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