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건물에는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오는 병원이 있다. 선천적으로 거나 후천적으로 거나. 선천적으로 아픈 사람들은 그냥 볼 때도 티가 나고, 후천적으로 아픈 사람들은 주문할 때의 눈빛이나 행동을 보며 알 수 있어서 혹시라도 내 행동을 오해해서 상처받을까 봐 항상 더 조심스럽게 대하는 편이다.
어제 오후였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데 마침 한가하길래 크로스오버 피아노곡을 조용히 듣고 있는 중이었는데 손님이 오셨다. 발달장애가 있는 남동생과 누나였다. 누나는 차를, 동생은 초콜릿라테를 주문하고 자릴 잡았다.
점심때와는 다르게 너무 고요한 오후시간이었기에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을 안 들으려야 안 들을 수가 없었다. 서른 살이 됐지만 사고 체계는 아이 같은 남동생이 저지른 일을 수습하는 누나였다.
동생은 운 좋게 회사에 취직을 해서 서른 살이 돼서야 남들처럼 사회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남들 같은 사회생활을 할 순 없는 듯했다. 참을성이 부족하고 산만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없는 말까지 지어내는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 같았다.
"의사 선생님이 뭐라고 하셨어. 선생님도 아프고 그럴 때면 일하기 싫다고 하셨지. 그런데 아픈 환자들이 이렇게 오기 때문에 일하는 시간에는 꼭 일을 한다고 하셨잖아. 여기 사장님도 봐. 저렇게 힘든데도 서서 일하고 계시잖아. 누나도 그렇잖아. 그럼 너도 그래야지. 남들처럼 일할 때 일하고 놀 때 놀아야지. 그게 사는 거야. 네가 열심히 일해서 돈 벌고, 쉬는 날에는 하고 싶은 거 하고 먹고 싶은 거 먹으면서 놀고. 그게 사는 거라고. 남들 다 그렇게 살아. 너도 그렇게 살아야지."
누나는 타이르듯 하면서도 강단 있게 옳고 그른 것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어떤 지점에서 이입이 가능했는지 모르겠으나 유리잔 안의 얼음이 다 녹을 때까지도 음료에 입을 대지 않고 동생에게 집중하고, 교육하는 누나의 모습을 보면서 목구멍 끝까지 울음이 차올랐다. 갑작스럽게 올라오는 눈물을 참았더니 목구멍에 멍이 든 것처럼 아파왔다. 울고 싶었다.
어쩌면 사람의 내면이 저렇게 단단할 수 있을까.
일정 시간이 지나자 동생은 아이처럼 울어댔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도 못하겠는데 누나는 다 알아듣고 거기에 맞춰 피드백을 했다. 내내 울고 있는 남동생이 안쓰러워 커피바에 서있던 나는 조심스럽게 뒤쪽에서 누나의 눈을 보며 '냅킨 더 필요하세요? 드릴까요?' 하는 제스처를 취했더니 눈을 한 번 깜빡 괜찮다는 사인을 보냈다. 어느새 대화는 일단락이 됐고 누나는 동생에게 화장실로 가서 씻고 오라고 말했는데 동생은 누나 말이라면 다 듣는다는 듯이 얼른 화장실로 가려고 했다.
바로 옆쪽 창고 문을 열려고 하는 동생을 향해 누나는 다시 단호하게
"거기가 화장실인지 사장님께 먼저 여쭤봐야지."
동생은 우는 얼굴을 하고도 내게 화장실이 어딘지 물었고, 나는 설명해 주었다. 화장실을 잘 찾아가는지 뒷모습을 계속 보고 있던 나에게 누나가 말했다.
"죄송해요. 너무 시끄럽죠. 제 동생이 좀 아파요. 그런데 잘못된 건 잘못됐다 알게 해줘야 하니까... 사회에서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려면 제가 못된 누나가 될 수밖에 없네요."
나는 마음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끌어올릴 수 있는 진심이라는 진심을 다해서 대답했다.
"아니요. 너무 좋은 누나예요. 훌륭하세요."
그 순간 견고하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고맙다는 말을 뱉으면 순식간 흔들린 감정도 같이 뱉게 될까 봐 작은 미소로 대답하는 듯했다. 내 말에 위로를 받기라도 한 듯 자리에 앉아 가만히 생각하던 누나는 이내 다시 강한 누나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람에게서 나무의 냄새가 났다. 그만큼 올곧고, 견고했다.
세수를 끝낸 동생이 오고 나서야 두 사람은 자리를 정리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떠났다. 처음으로 경험하는 기분, 이상한 하루였다. 대화 내용으로 추측컨대 누나의 입장에선 모든 것이 최악일 것만 같았는데 아픈 동생에게는 최선의 마음이 담긴 최선의 말만 골라서 하고 있었다. 단단한 사람.
나는 알지도 못하는 이 남매에게 웃을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