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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카타 핫초코, 하카타 라멘

하카타역의 크리스마스와 신신라멘

by 김커피

후쿠오카의 중심역인 하카타역으로 갔다. 크리스마스까지 보름은 더 기다려야 하는데 이미 그날처럼 여기저기 반짝거렸다.



반짝이는 12월의 저녁 무드와 어울리게 역 앞에서는 달곰한 냄새가 풍겼다. 멀리서부터 바람을 타고 가까워져 올수록 진하게 침샘을 자극해서 본능적으로 그 냄새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트리처럼 빨강과 초록을 입은 다양한 마켓들이 늘어선 곳. 걸을수록 달달한 냄새의 주인공을 확신하게 됐다. 초코. 그건 분명 핫초코의 깊고 진한 냄새였다.


걸음을 멈추고 보니 역시 초콜릿을 파는 마켓. 그런데 여기만의 특이점이 있었다. 테이크아웃이라면 보통은 일회용 컵을 사용하기 마련인데 그곳은 커다란 보온통 같은 곳에 끓고 있는 핫초코를 퍼서 머그잔에 담아주었다.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핫초코를 받아 든 사람들은 두 손으로 머그잔을 소중히 쥐고 후후 불어가며 핫초코를 마셨다. 앉을 데도 없는 마켓 앞에 서서 행복한 표정을 짓던 사람들. 천천히 맛보고 머그잔을 반납하고 돌아서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만족의 미소가 만연했다. 행복이라는 거 딱 한 컵으로도 느낄 수 있는 거구나.

겨울의 냄새가 달달하게 풍기는 하카타역은 이미 크리스마스였다.



하카타 미리 크리스마스!



하카타 핫초코는 충분히 유혹적이었지만 저녁을 먹어야 할 시간이었기에 패스하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어떤 메뉴가 좋을까? 고민을 하는데 갑자기 떠오르는 이치란에서의 실망감. 돈코츠 라멘의 본고장인 후쿠오카에서 라멘에 대한 안 좋은 기억만 안고 간다면 안 될 일이었다. 라멘집을 찾자!

내가 서있는 곳이 어딘지도 모른 채 걷다가 우연히 낯익은 로고를 보았다.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던 신신라멘. 이치란처럼 지점이 여러 군데 있고 후쿠오카 내의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밀키트 제품을 흔히 볼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라멘집이었다.


라멘집을 빨리 찾았고, 라멘집에 빨리 들어갔다. 저녁시간인데 운 좋게도 대기 없이 다찌석에 남아있는 한 자리로 바로 안내받았다. 모든 게 빨랐으니 덩달아 내 주문도 빨랐다. 고민할 필요도 없이 토핑이 다 들어간 라멘 한 그릇과 생맥주 한 잔을 주문했다. 속전속결. 느낌이 좋았다.

그런 의미로 맥주도 빨리 주면 좋겠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욕심을 부리고 있었는데 내 생각을 읽은 건지 정말 빨리 나와버린 생맥주. 아사히를 쓰는데도 신신라멘의 로고가 그려진 전용 맥주잔을 사용했다. 뿐만 아니라 나무젓가락까지도 로고가 그려진 개별 포장지로 싸여있었다. 왠지 HOME SWEET HOME! 하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은 건 기분 탓이었을까. 정처 없이 걷다가 로고에 끌려 여기까지 왔으니 이 로고는 제 몫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것이 내가 원하던 라멘의 비주얼.. 맛...



시원한 생맥주를 두 모금 마셨을 때쯤 라멘도 나왔다. 맛보지 않고 그냥 비주얼만 봐도 이게 내가 원하던 라멘의 모습이었다. 돼지뼈를 우려낸 국물로 만드는 돈코츠 라멘은 후쿠오카에서 시작되었고, 후쿠오카 중심부의 역사적 이름인 하카타를 따서 하카타 라멘이라고도 부른다. 하카타에서 하카타 라멘을 먹는 기회가 이렇게 찾아올 줄이야.


먼저 국물을 한 번 떠먹었다. 나는 돈코츠 국물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냄새에는 굉장히 민감한 편이라 일반적인 고기 국물 냄새 이상의 누린내가 난다면 입도 대질 못하는데 신신라멘의 국물은 합격이었다. 면의 굵기와 삶은 정도, 계란과 차슈 등의 토핑양과 맛도 적당했다. 생맥주 한 잔과 라멘 한 그릇은 내가 후쿠오카에 와서 첫 끼로 먹은 메뉴였는데. 이제야 이 조합의 조화를 누린다는 생각에 미소가 번졌다.


그렇게나 유명하고 다들 먹어보라고 추천하던 이치란의 라멘이 너무나 의외의 맛이라 놀란 나머지 한국에 돌아와서 이치란과 신신의 후기 비교를 해보았다. 한국 사람들은 그래도 이치란라멘을 더 선호하는 것 같은데 나는 신신라멘이 훨씬 좋았다. 뭐, 사람 입맛은 다 다르니까. 다른 건 틀린 것도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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