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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혹시 다단계 아니야?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by 김커피

뭘 하고 살아야 할지 고민이 많았던 20대 중반의 내가 겪은 일이다.

당시의 나는 개인 사정으로 2년 동안 휴학을 하고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복학을 한 상태였다. 지방에서 올라와 자취를 했고 밤늦게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지내면서도 모두에게 항상 밝은 모습을 보였지만 심적으로는 매우 불안한 상태를 유지하던 때였다.

나는 이른 오전과 늦은 저녁 빈 시간을 활용하여 두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생계형 아르바이트생이었는데 몇 개월 동안 쉴 틈 없이 일을 했다 보니 많이 지쳐서 이후에는 저녁 일만 하게 되었다. 그렇게 일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하루는 낮잠을 자다가 꿈을 꿨는데 일하던 가게가 문을 닫게 됐다고 갑작스럽게 나오지 말라는 통보를 받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게 대수롭지 않은 꿈이라고 생각했는데, 이틀 후에 진짜로 내가 일하던 매장의 매니저에게 꿈에서와 같은 통보를 받게 되었다. 유지가 힘들어 가게를 내놓았다고 했고 당장 오늘부터 영업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황당함과 동시에 밀려오는 걱정을 막을 수가 없었다. ‘월세는 어떻게 하고 휴대폰 요금은 어떻게 하지? 생활비도 없는데..’ 생각할수록 스스로가 너무 비참했다.


그런데 마침 그 비참한 타이밍에 고등학교 후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현대 무용이 전공이었던 친구라 학교에서도 요즘 말로 '인싸'였던 후배였다. 오랜만에 서로의 안부를 묻다가 내 이야기를 듣고는 자신이 일하는 곳에 소개를 해주겠다고 해서 별다른 면접도 없이 출근 약속을 잡게 되었다.

그 후배의 연락을 받았을 때 친구에게 우스갯소리로 "이거 혹시 다단계 아니야?"라고 했었다. 친구는 설마 하며 웃었고 나는 떵떵거리며 "다단계면 그냥 나오면 되지 뭐"하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었는데..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사람의 촉이란 게 바로 이런 걸까, 그 후배를 만나서 먼저 식사를 했는데 대화를 하다 보니 점점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굳이 자기가 계산을 하며 식당을 나서는 후배가 이렇게 말했다.

"선배, 사실 제가 말씀드렸던 일이 취소됐어요. 제가 일부러 불렀는데 그냥 보내기도 그렇고 선배 사정도 있고 하니까.. 이 주변에 제가 아는 회사가 있거든요. 거기로 같이 가요!"

오랜만에 본다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던 후배의 눈빛은 이미 없었고 무언가에 미쳐있는 사람처럼 초점을 잃은 눈빛을 보이고 있었다. '이거 잘못 걸린 거 같은데' 생각이 드는 순간 힘을 주어 내 팔을 부여잡고 어디론가 끌고 가는 후배를 보며 나는 처음으로 사람이 무서웠고 낯선 땅에서 그것도 대낮에 벌어지고 있던 그 상황과 곧 이어질 상황이 너무나 두려웠다.


골목 안의 한 건물 앞에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그중 두 사람이 나와 후배에게 다가왔다. 이건 영화도 드라마도 아닌 현실인데 진짜 이런 일이 있단 말이야? 내 살아온 평생 중 제일 떨리는 순간이었지만 다행히도 정신은 멀쩡했기에 그 멀쩡한 정신으로 들었을 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대는 그 사람들에게 한마디를 지지 않고 반박했다. 30분 넘게 그 사람들은 나를 건물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려고 애를 썼고, 나는 반대로 ‘저 안에 들어가면 죽은 목숨이다’라는 생각으로 온 힘을 다해 버텼다.


"아니 도대체 저기가 어디라고 생각해서 안 들어간다는 거예요?"

"저기가 어디라고 생각해서 안 들어가는 것 같은데요?"

"일단 안에 들어가시면 원하는 대로 경찰 불러드릴게요."

"저기 안 들어가려고 경찰 부르겠다는 말인데 뭘 들어가서 불러요. 생각이나 좀 하고 말을 하세요."


긴 시간 동안 버티는 나를 마치 런 사람은 처음 본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 사람들에게 끌려가지 않으려고 나는 끝까지 발악했다. 긴장을 놓지 않으려는 노력 중에 멀뚱히 서서 여전히 풀린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후배를 보는데 배신감이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더니! 너라고 이러고 싶었겠냐만 그래도 왜 하필?

잘은 기억 안 나지만 마지막에는 나를 데리고 간 후배를 빌미로 협박조로 말하길래 ‘그런 식으로 살면 결국 모두를 잃게 되는 것은 당신들이다’라는 뉘앙스로 큰소리로 외친 뒤 그들이 당황한 틈을 타 홱 돌아서서 빠른 걸음으로 걸어 나왔던 것 같다.

반 오십 내 생애 가장 끔찍했던 순간이었다. 혹시나 건물 앞에 대기하고 있던 덩치 큰 사내들이 따라와서 힘으로 제압하고 끌고 갈까 봐 뒤도 안 보고 눈물만 뚝뚝 흘리면서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걷다 보니 세네 정거장쯤을 지나와있었다. 심호흡을 하고 그대로 가까운 친구의 집으로 가서 친구 앞에서 눈물 콧물 다 짜내며 서럽게 울었다.


요즘은 다단계 회사에 대한 무조건 부정적인 이미지가 덜하지만, 불법 다단계가 기승을 부렸던 그때는 주변에서 학교 동기나 후배에게 연락이 와서 다단계 회사에 끌려갔다가 휴대폰을 뺏기고 갇혔다는 경험담을 종종 들었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소름이 돋았으면서도 몇 년 만에 후배에게 연락이 왔을 때 '다단계 아니야? 다단계면 그냥 오지 뭐.'하고 생각한 나의 안일함에 지금도 놀란다. 남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은 내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걱정 고민으로 시간을 실속 없이 보내던 그때의 나에게 그 경험은 오히려 약이 되어 나를 지탱해주었다. 생각이 분명해졌고, 적어도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호랑이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절망적인 순간에도 자신에 대한 믿음과 의지를 잃지 않고 이겨낸다면 모든 게 희망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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