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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간의 사랑. 마침내 이별.

그래도 아직은 욜로보다 멜로가 체질이길.

by 김커피

안 될 걸 알면서도 놓지 못하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누가 이렇게 묻는다면 나는 세 가지로 대답하겠다. 로또, 다이어트, 그리고 사랑. 세 가지 다 내가 절실하게 원해본 것들은 아니지만 특히 사랑에 대해서만큼은 냉소적인 나의 과거에도 남들 같은 뜨거움이 있었다.


사랑할 땐 사랑 노래 가사가 다 내 이야기 같고, 이별할 땐 이별 노래 가사가 다 내 이야기 같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 아닌가. 그중에서도 정말 이건 내 이야기다 싶은 노래는 화이트의 <7년간의 사랑>이다. 제목처럼 7년 정도의 시간 동안, 가사처럼 절절한 사랑을 했고, 목소리처럼 담담하게 이별했다.


“우리 그냥 친구야?”

내가 그에게 친구 이상의 감정을 가졌을 때 건넨 첫마디였다.

낯을 가리는 편인데도 호감이 가는 사람에게는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사람이기에 이 사랑의 시작도 나였다. 이미 오래 전의 이야기지만 그 사람에 대한 마음이 과거형이 되었다는 사실이 서글플 때도 있다. 내가 평생에 쓸 수 있는 사랑의 할당량이 있는데 그만큼을 그 사람으로 다 채워버렸기 때문에 여전히 그만한 사랑을 찾지 못하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나는 그를 온 마음 다해 사랑했다.

사랑의 정도가 커서였을까 그와의 연애는 굉장히 힘들었다. 마음이 아픈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내 마음 역시 아프게 하는 일이었다. 머리로는 알면서도 끝까지 놓지 않다가 끝끝내 헤어지고 마는 결말이 정해져 있던 이야기였다.


"이제 진짜 그만하자."

내가 그에게 여자로서 건넸던 마지막 한 마디였다. 화를 내거나 흥분하지도 않고 우리의 이별은 그저 고요했다. 7년 간 질질 끌었던 사랑의 끝은 예상외로 간단했다. 그렇지만 회복이 완전히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나간 지 한참이 되었는데도 어떤 부분에서는 완벽하게 통과하지 못해 여전히 트라우마 아닌 트라우마로 자리 잡고 있을 정도로 힘든 부분이 많았다. 길었던 시간만큼 상처가 말할 수 없이 컸고, 이별 후의 아픈 시간 역시 그것들에 비례했다. 이후로는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고, 실로 누군가 다가와도 철벽같이 그 마음을 걷어내기 바빴다. 내 삶에 집중하고 싶었고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고 싶었다.


그만하자는 나의 말로 관계가 끝나고 딱 일 년 후에 우리는 오랜만에 연락이 닿아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뒤라 서로에 대한 마음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을 때였는데 안부를 묻다가 자연스럽게 이별하던 그날에 대해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말했던 날, 사실은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 말을 왜 이제야 해? 왜 그때 말하지 않았어?"

울음을 터뜨릴 뻔한 걸 꾹 참고 원망 섞인 목소리로 묻는 내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칠 대로 지쳤다고 그만하자고 말하는 너한테 그 말을 하면 내가 또 너를 잡는 거잖아. 넌 또 힘들어지고. 내가 힘든 것보다 네가 힘든 게 더 싫어서 그랬어."

넌 참 끝까지 착하게 못됐구나.

속으로 이런 혼잣말을 하고 도저히 대화를 이어나갈 수 없어 전화를 끊었다.

그 후에도 우리는 친구 사이로 남았다. 필요한 때에 곁에 존재하기라도 해 주자는 암묵적 합의였다. 그 마음은 내 쪽이 더 컸는데, 어릴 때부터 상실의 아픔을 가진 그 친구를 위해서였다. 그에게 남은 가족은 없었다.


친구로 지내는 동안에도 여러 번 내 마음을 들쑤시곤 했는데 오히려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분명 흔들림 없이 잘 지냈던 것 같은데 어느 날 그에게 받은 연락으로 머릿속이 하얘지는 기분이 들었다. 결혼 소식이었다.

쿵 하고 내려앉은 마음은 누가 일부러 쥐고 흔드는 것처럼 내도록 흔들렸다.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내가 챙겨봤을 만큼 좋아했던 정이현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의 첫 화에서 주인공 은수가 옛사랑의 결혼 소식을 듣고 눈물을 보이는 장면이 있다. 별다른 감정이 없으면서도 그냥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데 그때 그 마음을 공감하지 못했었던 나는 드라마 속의 캐릭터를 내게 씌운 것처럼 그 장면 그대로 뚝뚝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마음과 더불어 눈물이 앞을 가려 내 시야도 흔들렸다.

나는 은수처럼 별다른 감정이 없지가 않았다. 나와 하려고 했던 결혼을 다른 이와 하면서 내게 결혼식에 와주었으면 한다는 말을 하는 그 사람이 미웠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나를 사랑하겠다니. 무슨 '내 눈을 바라봐 넌 행복해지고' 같은 황당한 소린가 싶으면서도 동시에 내가 아닌 누군가가 그의 옆에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지도 않았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충격은 컸지만 그의 행복만을 바랐고, 질기게 이별 연습을 하던 나는 마침내 진짜 이별을 했다.


이별을 겪은 계절이라 그런지 매년 가을과 겨울 사이의 나는 유난히 외롭고 힘들다. 미련이 있어서도 아닌데 이 시간만큼은 내가 슬퍼해야만 할 듯한 이상한 의무감을 느낀다. 나는 가을을 타는 사람이라기 보단 사람을 타는 사람인가 보다.

여느 때처럼 다시 그 계절에 서 있는 내게 새로운 시간을 만들어 줄 사람이 있을지. 그런 사람이 나를 찾아올 때 계절의 문이 당연하게 열리는 것처럼 내 마음도 열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쪼록 나는 나의 행복을 바란다.

아직은 욜로보다 멜로가 체질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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