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할 때 보는 드라마와 영화
집안일의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일까? 신체적으로 힘들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세탁기, 건조기, 식기세척기, 로봇청소기 등 각종 기계의 도움을 받으면서 하는 집안일은 신체적으로는 아주 큰 힘이 필요하지는 않다.
전업주부가 된 지 만 6년이 조금 넘었고, 이제는 집안일에 두루 능숙하다. 요리는 잘하는 편이 못 되지만 반찬가게의 도움을 빌리고, 몇 가지 간단한 요리를 해서 적어도 아이 밥상을 매일 차려 줄 정도는 된다. 집안일의 가장 큰 문제점은 '끝'이 없다는 것과 너무나도 지루하다는 것이다.
청소기를 돌릴 때, 설거지를 할 때, 빨래 널고 걷고 갤 때, 손빨래를 할 때, 화장실 청소할 때 모두 무언가를 듣거나 보면서 한다. 청소나 빨래를 할 때는 영상을 보기 어려워서 주로 EBS 라디오 앱으로 영어 회화 방송을 청취하는 편이다. 영상을 볼 수 있는 설거지나 빨래 개기를 할 때는 영화나 드라마를 본다. 사실상 영화나 드라마를 보지 않으면서 설거지나 빨래 개기를 하는 건 어렵다. 설거지와 빨래 개기는 너무나도 지루한 작업이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지 않으면 그 시간을 견디기 힘들 정도다.
하루 종일 무언가를 듣거나 보면서 집안일을 한다. 그냥 집안일을 하는 법이 없다. 집안일이라는 게 능숙해지고 나면 큰 집중력을 요하지 않기 때문에 점차 수월해지지만 지루함은 날이 갈수록 더해간다. 또 시간은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 각종 기계들에게 도움을 받고 있으면서도 세 식구 살림을 혼자서 하는 건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 주인공의 엄마가 주부는 "정말 바쁜데 정말 심심하다"라고 말한다. 나는 그 말에 공감했다. 지루한 주부의 일상에는 아침 드라마 스토리 같은 파격적인 무언가가 끼얹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가사가 고돼서가 아니라 너무나도 지루해서 답답증이 오기 쉽다.
나는 영화와 드라마로 나를 마취시키는 일상을 산다. 영화와 드라마에 푹 빠져서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개다 보면 오히려 그 시간이 기다려질 정도이다. 드라마 다음 화를 아껴두었다가 다음에 빨래 갤 때 본다. 그러면 빨래 개는 일이 기다려진다. 얼른 빨래를 개고 싶다. 빨래를 개면서 드라마를 보고 싶다. 빨래도 개고 드라마도 보면서 효율적으로 시간을 보내고 싶다.
내가 전업주부가 적성에 맞기는 맞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겨우 드라마 보는 일 정도만 해줘도 지루하고도 지루한 집안일을 어느 정도 견디면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탁소나 옷수선집, 작은 공장 같은 곳에서 하루 종일 라디오가 켜져 있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주부인 나와 비슷한 이유에서 일 거다. 하루 종일 이어지는 노동 속에 스며드는 영화와 드라마의 기승전결이 지루함을 잊게 한다. 스토리라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즐겁게 하는지, 매번 감탄하며 손을 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