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00원어치 눈물
노인은 퍽 난감해 보였다. 손에 든 쭈글쭈글한 천원이 노인의 마음 상태를 대변했다. 계산대 한 귀퉁이에 선 노인은 간헐적으로 울리는 삑, 삑 소리에 맞춰 쉼 없이 눈동자를 굴리고 있었다. 나의 앞에 서 있던 사람들이 삑, 삑 사라지고 나서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네모난 카드를 내밀었고, 점원은 나의 물건과 카드를 확인한 후 형식적인 말투로 봉투의 유무를 물었다. 필요 없다고 말하려는 순간, 노인의 목소리가 울렸다.
정말 여기 현금은 안 받습니까.
마스크 안에서 웅얼거렸던 목소리는 계산대로 삐져나와 나와 점원의 귀에 닿았다. 점원은 벌써 몇 번이고 이러한 질문을 받은 듯했다. 노인은 한 번밖에 질문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곳을 지키고 선 점원은 많은 사람에게 똑같은 질문을 듣고, 똑같은 대답을 해주어야 했겠지. 약간은 난감하면서, 약간은 신경질적인 점원의 목소리가 노인에게 꽂혔다.
그렇다니까요, 여기 현금 통도 없잖아요. 현금을 안 받는 곳이에요. 여기는 카드만 돼요. 카드를 가지고 오세요. 그래야 계산을 할 수 있어요.
노인은 자신의 손에 쥐어진 현금을 바라봤다. 세 장 정도 되는 듯했다.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 같은 사람은 어떡합니까. 나처럼 카드가 없는 사람은 어떡합니까.
나는 그때야 노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노인의 눈은 크고 맑았다. 손은 거칠었다. 구부정한 자세는 오랫동안 일한 사람의 것이었다. 그의 손엔 계속해서 현금이 들려있었다. 그는 말했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돈이 있는데 카드만 받는다니. 그래서 계산을 못한다니. 점원이 말했다. 요즘은 다 그래요, 할아버지. 키오스크 모르세요? 요즘은 뭐든지 빨리 진행되는 세상이라고요. 점원이 없는 편의점도 많아요. 그게 다 카드나 시스템으로 이뤄지는 거예요. 점원은 마치 자신이 그런 세상을 만든 것처럼 말했다. 노인이 다시 말했다.
그럼 나같이 잘 모르는 늙은 사람들은 어떡합니까.
점원은 노인이 미련을 갖고 시선을 떼지 못하는 과자 두 봉지를 들어 올렸다. 이거 치울게요. 다음에 카드 가지고 오세요. 점원이 계산대를 벗어나려 할 때, 노인이 움찔거리며 그를 따라가려 했을 때, 나의 입에서 어렵사리 한 마디가 나왔다. 지금부터 시작되는 장면은, 집에 오는 내내 머릿속에서 반복된다. 나는 그 상황을 가장 가까이에서 본 사람으로서, 조금 더 빨리 노인을 두려움과 그만 아는 어떤 감정에서 구제해주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조금 더 빨리 말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용기가 없어서, 용기를 내도 괜찮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점원의 톡톡 쏘는 말투에 쑥쑥 움츠러들며 자꾸만 커지는 소심함에 입만 달싹였다. 끝에 가서야 겨우 말을 꺼내긴 했다만, 후회는 여전히 발목에서 찰랑였다.
제가 계산할게요, 제 카드로요. 할아버지, 저한테 현금 주세요.
점원은 어떠한 표정도 짓지 않았다. 나에게 그저 카드가 있냐고 물을 뿐이었다. 나는 아까 전에 분명 나의 물건을 계산해주었으면서, 그것을 다시 한번 묻는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다. 어쩌면 의도라는 것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점원이 혹시 AI는 아닐까 한참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3800원이었다. 계산을 한 후, 나는 노인이 내미는 현금을 받지 않았다. 3800원이니까. 그냥, 받고 싶지 않았다. 그를 동정하거나, 그를 내 밑에 둠으로써 우월감을 느끼려 한 행동은 절대 아니다. 정말, 그냥. 3800원이라 받지 않았다. 받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저 건강하시라는 말을 뱉었다. 건강하세요, 건강하세요. 맛있게 드세요. 노인은 말했다. 자신을 도와주어 고맙다고, 이렇게 누군가를 도와주는 일은 다 돌려받기 마련이라고. 다 돌려받을 것이라고. 고맙다고. 나는 그저 웃었고, 속으로만 답했다. 돌려받지 않아도 되니, 이렇게 저렇게 나도 모르게 소외되는 많은 이들이 조금 더 양지로 나왔으면 좋겠다고. 그들이 따뜻한 햇살을 쬐었으면 좋겠다고.
노인이 먹고 싶었던 과자를 한 아름 품에 안고 길을 나서는 모습을 보며, 나는 조금 울었다. 지금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들이 보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이런 순간에 찾아오는 그리움은 정말 어찌할 바 없이 나를 휘청이게 만든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보고 싶었다. 점점 삭막해지는 세상보다 조금은 더 나을 (것이라고 믿는) 어느 공간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그들을 생각하려 무진장 노력했다. 울음은 쉬이 그치지 않았고, 나는 많은 노인들을 생각했다.
오로지 SNS을 통해 휴무 일정과 브레이크 타임을 선포하는 곳을 노인은 알기 힘들다. 오늘처럼 현금을 받지 않거나, 복잡한 키오스크 만으로 주문과 결제를 동시에 해야 하는 서비스를 노인은 어려워한다. 물론, 잘 해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지금 내 눈으로 본 어느 노인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카드가 없고, 키오스크가 뭔지도 모르는 그는 좋아하는 과자 하나 먹기가 무척이나 애달프다. 아직 이 세상에 계셨다면 내가 사랑하는 두 분도 이러한 일을 겪게 되었을까.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나의 엄마가 이런 일을 겪을 수도 있다. 이모가 겪을 수도 있고. 더 나아가서는 내가 겪을 수도 있었다. '그것도 모르냐'는 시선을 내가 받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으니까. 간단하고, 빠르고, 가벼운 것들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호기롭게 집을 나섰다가 지쳐서 돌아오는 늙은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