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층간소음과 함께 산다

벽을 타고 흐르는 말

by 김단한

위층에 사는 여자가 이미자 씨의 '동백아가씨' 노래를 좋아한다는 것은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정보였다. 하지만 나는, 노래를 시작하는 첫 가사처럼 '헤일수 없이 수많은 밤'동안 그 노래를 들었다. 벽과 천장을 뒤덮으며 내려오는 노래는 볼륨이 작지 않았다. 나는 층간소음으로 인해 위층에 사는 여자가 이미자 씨의 '동백아가씨' 노래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달갑지 않았다.


여자가 노래를 듣는 시간은 정해져 있었다. 어떤 날은 오전이나 정오쯤이었다. 양쪽의 모든 창문을 열어젖힌 채 집을 청소하며 여자는 이 노래를 엄청난 데시벨로 따라 불렀다. 여자는 그때마다 이곳이 본인 혼자 사는 단독주택이 아니라 누군가와 더불어 살고 있는 빽빽한 아파트라는 사실을 잠시 잊는 듯했다. 나는 여자의 노래가 끝날 때를 기다렸지만, 그 곡은 단번에 끝나는 적이 없었다. 몇 번의 반복 끝에, 그러니까 모든 노동이 얼추 끝났을 때 그 노래는 멎었다. 노래가 멎고 난 뒤에 찾아오는 동네의 고요함은 그때마다 색다르게 느껴졌다. 아니 우리 동네가 이렇게 조용한 동네였단 말이야? 이런 생각이 저절로 들게 했으니까.


어떤 날은 저녁에 노래가 울려 퍼졌다. 노래는 꼭 이미자 씨의 동백아가씨였다. 여자는 밤이면 이 노래를 더 구슬프게 불렀다. 가끔은 병이 굴러다니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쾌쾌한 담배 냄새가 창문을 타고 들어오기도 했다. 노래가 서너 번 반복이 되면, 여자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리곤 울었다. 어떤 날은 언니를 부르며 서럽게 울기도 하고, 어떤 날은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깔깔 웃곤 했다. 나는 수화기 너머의 누군가가 말하는 목소리는 들어보지 못했지만, 여자의 목소리만큼은 정확하게 들었다. 여자는 말의 시작과 끝마다 한숨을 길게 뱉으며 말을 이었다. 말은 끊어질 듯, 끊어질 듯 길게 울렸고 나는 계속해서 그것을 들었어야 했다.


우리 아파트는 지어진지 몇십 년이 훌쩍 넘은 옛날 아파트라 서로의 소음이 피할 수 없는 하나의 옵션으로 자리하고 있다. 화장실에서 기침하는 소리, 가래침을 뱉는 소리, 오줌 누는 소리, 변기의 물을 내리는 소리부터 시작하여 쿵 쿵 쿵 쿵 집 안을 울리는 발 망치의 소리는 상대가 어디쯤에서 어디쯤으로 움직였는지 파악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윗집에서 울리는 진동 소리가 나의 핸드폰에서 울리는 진동 소리인 것 같아 핸드폰을 찾아본 일이 있는가. 나는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뭐든 잘 들리고, 비밀이 없다.


책상에 앉아서 진행하던 업무를 모두 끝마치면, 나는 잠을 준비하기 위해 침대로 들어선다. 나의 침대는 벽의 한쪽 모서리에 정확하게 들어가 있기 때문에 공교롭게도 앉아서 책을 읽기 위해서는 벽에 몸을 기댈 수밖에 없다. 나는 책을 아주 천천히 읽는다. 어떤 소리가 나를 방해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어떤 작은 소리라도 들려오면 나는 읽던 문장의 제일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서 글을 읽는다. 귀에 무언가를 꽂는 것은 답답하다. 귀에 무언가를 꽂고 빗소리나 천둥소리, 번개 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며 어딘가에서 미세하게 울리는 소음을 이겨내 보려 노력한 적이 있었다. 별로 그렇게 도움이 되진 않았다. 들려오는 소음을 막아주는 것에는 큰 역할을 했지만, 책을 읽는 것에는 오히려 방해가 되었다. 책에 등장하는 모든 배경에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었다. 쓰는 글 역시 담담하고 눅눅해졌다. 밝은 노래를 듣는 것은 되려 집중력에 방해만 되었기 때문에 자연의 소리를 택했는데, 정말이지 당황스러웠다. 쾌청한 날씨에서의 즐거운 마음가짐을 담은 글도 천둥과 번개에 휩쓸려 축축 늘어졌다.


나는 윗집에 올라가 문을 두드리고 좀 조용히 해달란 말을 건넬 자신이 없다. 당신이 듣고 있는 노래가 나를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를 알릴 방법이 없다. 생각은 해보았지만, 먹혀들 것 같지 않았다. 더불어 사는 공간 안에서의 배려를 일찍이 잊어버린 사람이라면, 내가 가서 설득해도 별 효력이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매번 시작도 전에 지레 겁을 먹곤 했다. '굳이' 일을 크게 만들 필요 있을까, 나 하나만 참으면 되지 뭐. 라는 생각이 팽배했다. 이렇게 또 하나 쌓였다. 나는 항상 모든 것을 내 안으로 흡수해 쌓고 쌓는다.


처음에는 소음을 무시하고 읽던 책을 계속 읽었으나, 그것은 끊임없는 소음에 관한 스트레스와 결국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해 시간만 버린다는 스트레스까지 동시에 가져왔다. 나는 윗집에 올라가서 나의 권리를 말하지 못하는 이 소심함이 조금 더 몸집을 키우기 전에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그냥, 멍하게, 그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소음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터였다. 어차피 소음의 원인이 사람은 잠을 자야 마련이니까. 말을 하지 않을 때도 있으니까, 나는 그때를 기다리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정확한 단어는 당연히 들려오지 않고, 웅웅웅 거리는 소리만 들린다. 누군가가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나는 여자가 이미자 씨의 동백아가씨만은 제발 참아주기를 바라면서 벽에 머리를 대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노래는 부르지 않는다. 오늘은 노래를 부를 마음이 들지 않았나 보다. 대신 그녀는 아주 많은 사람들과 전화를 했다. 언니, 아저씨, 아들, 선생님, 대체로 누구를 칭하는 것인지 모를, 정말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단어의 뜻에 맞는 이들인지 잘 모르겠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통화를 한다.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하고, 투덜거리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아파트에도 터가 다 나뉘어 있대. 층층마다. 그러니까 어떤 층은 좋은 기운이 돌고, 어떤 층은 안 좋은 기운이 돈대. 언젠가의 술자리에서 언젠가의 친구가 한 말이다. 아파트의 층층마다 터가 다 있다는 말이 처음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선 아파트니까 다 똑같은 거 아니야? 싶었는데, 나의 윗집을 보며 그 말이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영 신빙성 없는 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동백아가씨가 이사 오기 전에는 어떤 부부가 살았는데, 그들은 오전 여섯 시만 되면 부부싸움을 해댔다. 정말 대단한 부부였다. 오전 여섯 시에 싸움을 하다니. 싸움을 할 힘이 아침부터 들끓다니.


아파트에 들어서는 입구나 슈퍼에서 마주치는 그 집 아이들의 표정은 늘 한결같았다. 옆에서 소리를 질러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이 담담한 표정. 어딘가 좀 멍해 보이기도 하고, 모든 것을 다 놓아버린 것 같기도 한 그 표정은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갖고 있기에는 이른 감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이미 그들은 그것을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섣불리 판단하는 것보다 더 진하고 깊은 감정의 표정을 갖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 가족은 어느 날밤에 우당탕탕거리며 밖을 나섰다. 집 앞에는 커다란 봉고차가 있었고, 가족들은 우르르 그곳에 몸을 실었다. 그리곤 그게 끝이었다. 다음날부터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우리 집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들이 야반도주라는 것을 했다는 것을, 우리 집이 그 집인 줄 알고 험악하게 문을 두드린 사람들로부터 알게 되었다.


별로 알고 싶지 않은 거, 살면서 알지 않아도 되는 것, 몰라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 자꾸만 벽을 타고 흐르는 느낌이다. 소리가 들리니까 듣게 되고, 들으니까 해석하게 되고, 해석하다 보면 알게 된다. 어느 날은 동의 출입구에 A4용지 하나가 붙어있었다. 오후 10시에서부터 오전 2시까지는 제발 조용히 살자는 내용이었다. 물을 흘려보내거나 세탁기를 사용하는 것을 하지 말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어제는 노래까지 부르시더라고요. 이것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같이 사는 공동 주택에서 누구나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굵은 글씨로 쓰여있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 그 종이를 과연 누가 붙였을까 생각했다. 붙이려면 내가 먼저 붙였어야 했는데 선수를 빼앗긴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그러다가도, 내가 썼으면 요점은 쏙 빼고 어찌 되었건 읽는 사람들 상처 받지 말라고 온갖 이모티콘을 덧붙이며 오버스럽게 '우리 둥글게 둥글게 살아요' 이딴 식으로 적었을 것 같아 차라리 나보다 먼저 저 사람이 글을 써붙인 것이 다행이다 싶었다. 누가 썼을까. 나는 2층에 살고 있으니까, 우리 집 밑에 사는 사람이 썼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노래를 불렀었나. 집에서 노래를 부른 기억은 없다. 오후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세탁기를 돌린 적도 없다. 늦게 들어오게 되는 날에 씻은 적은 있었어도. 나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혹시 내가 뭔가를 잘못한 건 아닐까 싶은 감정에 지나간 날을 훑어보며 혹시 모를 나의 잘못을 찾는 일을 지겹지도 않게 반복한다. 매일. 시간은 거의 밤 정도.


다른 층에 사는 사람들끼리의 문제인가. 나는 또 다른 집을 타고 흐르는 벽의 소음에 관해 생각했다. 사실, 너무 오랫동안 이곳에 살아서 소음이라는 것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익숙해졌다고 하더라도, 가끔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내가 들었을 때 윗집 여자는, 무언가를 많이 쌓아놓고 지내는 것 같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것이 모두 엎어져 천장을 구른다. 그럴 때면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깜짝 놀라곤 한다. 그리곤, 작게 한숨을 쉰다. 올라가서 따질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저 읽었던 문장을 또 읽을 뿐.


오늘은 여자가 울면서 계단을 오르고 있다. 탕. 탕. 탕. 탕. 하이힐이 계단을 누르는 소리는 총소리 같기도 하다. 여자는 더 올라갈 힘이 없는지 우리 집 앞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몇 번이고 도어록의 비밀번호를 틀린다. 그리곤 집에 들어가 그대로 현관 앞에 엎어진 것인지 모든 물건이 흐트러지는 소리가 난다. 냐옹. 여자가 키우는 고양이가 여자를 반겼지만, 여자는 울기만 했다. 울다가 울다가 겨우 손을 뻗어 현관문을 닫았다. 여자는 방 이곳저곳을 배회하며 울었다. 가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를 받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여자가 한 곳에 엎어져서 울었다. 아마 바닥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을 것이었다.


나는 내 머리 위에서 우는 여자를 생각하며 천장을 한번 바라봤다. 어쩌면 그곳에서 물이 샐지도 몰랐다. 흥건히 고인 물이 뚝뚝 떨어지면, 나는 그것을 양동이로 받았다가 돌려줘야 할까. 이건 당신 눈물이니 가져가소. 운 당신이 책임이니 우리 집 천장 고치소. 나는 내가 그렇게 말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기에 그런 상상을 마음껏 했다. 나는 윗집 여자를 모른다. 모르는데 자꾸만 벽을 타고 그녀에 관련된 이야기가 흐른다. 나에 대한 이야기도 어느 밑집으로 흘러내리고 있을까. 오늘은 여자가 동백아가씨를 틀어도 미간을 찌푸리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도 층간소음을 참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