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에서 쓰러진 적이 있었다. 수유역에서 서울역까지 가는 지하철에서 속이 조금 답답하다고 느꼈고, 그게 전부였다. 잘 앉아있다가 서울역에 도착해 내리면서 그대로 고꾸라졌다. 누군가는 나의 팔을 주물렀고, 누군가는 나의 머리에 자신의 패딩을 깔아주었다. 구급대원에게 연락하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그때가 공황장애의 증상을 제대로 겪은 날이었다. 그런 다음에도 소소한 무너짐은 자주 있었다. 귀가 멍해지고, 목에 얼음을 댄 것처럼 몸이 싸늘해지고, 손끝과 발끝이 저려오며 시야가 뿌옇게 일어나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고 곧 죽을 것 같은 느낌은 예고도 없이 고개를 내밀곤 했다.
정신과 상담은 생각보다 시시했다.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뭔가 해냈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아니고, 뭔가 제대로 바뀌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아니었다. 이제부터 삶이 달라질 것이라는 거창한 설렘 같은 것도 없고, 드디어 내 속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다는 해방감이 드는 것도 아니었다.
정신과를 처음 갔을 땐 바보같이 예약을 하지 않아 대기실에 앉은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만 한껏 받다가 나왔다. 뚝딱거리며 승강기 앞에 섰다가 아니 이럴 게 아니지, 생각하며 다시 들어가 예약을 했더랬다. 2주나 기다려야 했다. 지금 당장 상담을 받지 않으면 죽을 것 같거나 지금 당장 뱉어야 할 말이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2주는 꽤 길었다. 그리고, 은근히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누구는 운다고 했다. 누구는 속이 시원하다고 했고, 누구는 자신의 말에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 너무나 행복하다고 말했다. 나는 어땠더라. 나는 긴장했다.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누군가에게 나의 마음을 털어놓아 본 적이 없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털어놓아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말을 더듬었고, 최대한 현재의 상태를 이야기하려 애썼지만 종종 막혔다. 일목요연하게 말을 정리하는 일은 어려웠다. 나도 지금의 내가 느끼는 어찌어찌한 마음이 어디에서부터 기어 나오는지 알 수 없었기에. 유년시절에 문제가 있던 것도 아닌 것 같고, 초등학교도 잘만 다녔던 것 같은데 거기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기에는 너무 길어질 것 같아 말을 꺼내기도 전에 지쳐버렸다. 다들 어떻게 그렇게 후련한 정신과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걸까. 다들 어디에서부터 시작하는 걸까.
선생님이 최근 2주간 어떻게 지냈는지를 말해보라 했다. 최근 2주간 나는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났고, 오후까지 일을 했으며, 해가 저물 땐 약간 서글퍼졌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나에게 해가 저물 때 왜 서글퍼지는지를 물었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나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이곳에 온 것인데……. 이곳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답이 나에게 있다고 생각한 적은 더더욱 없었고. 선생님은 나에게 답을 있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나는 졸지에 답을 알면서 모른 척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선생님의 뜨거운 시선을 받으며 나는 겨우겨우, '그냥 지나간 사람들이 생각나서 그런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선생님은 모든 답이 나의 마음에 있다고 했다. 나는 선생님께서 모든 문제가 나에게 있다고 말하지 않아 다행스러웠다. 그런데, 답이나 문제나 그곳에서는 비슷한 뜻으로 들렸다.
어느 날은 선생님이 나로 보였다. 선생님은 나에게 내가 알고 있는 말만 해주었다.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는 내게 죽음은 원래 두려운 것이고, 피할 수 없는 것이라 일러주었고 떠난 사람은 떠났으니 산 사람이 잘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죽음은 원래 두려운 것임을 알고 피할 수 없는 것임을 알지만 떠난 사람이 너무 그리워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뛰는 현상에 대해 말하고 싶었는데 말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곳에 가면 덜컥 겁부터 나요. 얼른 집에 가고 싶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느낌이 들어요. 나의 말에 선생님은 기분이 그래서 그런 것이라고 했다. 기분이 그래서 그럴 수 있나? 나는 예고도 없이 나를 찾아와 무너뜨리는 공황장애가 나의 기분으로 인해서 찾아오는 것이라는 말이 조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공황장애는 일종의 각성 상태라고 볼 수 있어요. 공황장애가 올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불안해하면 증상이 더 빨리 찾아오니까, 그때가 되면 천천히 숨을 몰아쉬면서 주변에서 들려오는 청각과 촉각에 집중하세요. 그러다 보면 금세 증상이 가라앉아요.
이해가 가지 않았어도 나는 또 아, 그렇군요, 한번 해볼게요 하고 말았다. 언젠가 한번 공황장애가 왔었는데, 선생님의 말을 떠올리고 그대로 해보려 노력했다. 그런데 잘 되지 않았다. 촉각이나 청각은 개뿔. 그냥 지금 당장 죽을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헉헉거린 기억밖에 없다. 선생님이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절대.
그즈음에 나와 선생님이 나누는 대화는 늘 같았다. 선생님은 나에게 잘 지냈냐 묻고, 나는 잘 지냈다고 답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갈라지고 무너지는 마음이 있는데 그걸 하나하나 다 짚어서 이야기하기엔 너무 길었다. 내 돈을 주고 상담 시간을 갖는 것이니 마음 놓고 이야기를 하면 될 터인데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입술을 뗌과 동시에 빠르게 따라오는 선생님의 타자 소리와 지친 눈빛, 선생님의 흰 머리카락 같은 것이 나로 하여금 모든 것을 짧게 하도록 만들었다.
How are you?
I'm fine. Thank you. And you?
위의 지문과 같은 공식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정신과만 가면 나는 2주 동안 아무런 일도 겪지 않고 평범하게 잘 살았고, 문제가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사실, 문제랄 것도 없었다. 약을 먹는 동안 갑자기 훅훅 들이닥치는 공황의 증상들이 많이 사라진 것은 사실이었다. 고로…… 나는 그저 약을 받기 위해 정신과로 향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선생님과의 이야기가 나에게 한치의 도움도 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나는 그저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고, 선생님 말씀이 다 맞다고 느끼고, 나의 현재 상태에 대해서는 알다가도 더 모르는 상태가 되곤 했다. 무려 5분도 안 되는 상담 시간에 기가 다 빨리는 느낌이랄까.
어느 날 집에 오면서 나는, 정신과 상담만 받고 나면 왜 이렇게 피곤하고 힘든지에 관해 고민했다. 남들은 운다는데, 후련하다는데, 기분이 너무 좋고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라던데, 상담 시간만 기다린다던데, 나는 왜. 걷다가 걸음을 멈췄다. 어느 정도 답을 알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웃기 때문이었다. 마스크 안으로 계속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무슨 말만 하면 어, 맞아요 맞아요, 네 맞아요, 맞는 것 같아요, 아니요, 안 힘들어요, 네네, 괜찮아요, 네네 하느라. 무조건 괜찮다고 하는 것이 익숙해서 마음을 털어놓을 곳임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하고 웃느라, 온몸이 굳어버린 것이었다.
언젠가 친구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 적 있었다. 야, 정신과 선생님들은 진짜 힘들겠다. 매일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 상담을 해줘야 하잖아. 내 말에 친구가 답했다. 그래서 정신과 선생님들은 서로 상담해주기도 한대. 안 미치려고.
마음을 굳게 먹으라던 선생님이 떠올랐다. 마음은 어떻게 굳게 먹는 것일까. 마음은 어디에 있길래 굳게 먹을 수 있는 걸까. 마음을 굳게 먹어야지, 생각한 순간부터 굳게 먹게 되는 걸까. 나는 이런 질문을 선생님께 하지 않고 여기에만 쓴다. 선생님께는 질문을 하지 않고 그저 약을 꼬박꼬박 잘 받아먹는 환자로만 남는다. 선생님이 힘들 것 같아 내가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를 반만 하고 반은 숨긴다. 선생님이 괜찮냐고 물으면 괜찮다고 말한다.
어느 누군가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정신과에서도 발동했다. 나는 어쩔 수 없는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