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갈 데 없는 평화주의자
가끔 알파벳 네 개로 나의 성격을 탐구하는 테스트를 해보곤 한다. 할 때마다 달라지는 답이 있고, 굳건한 답이 있다. 나는 '논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남을 상처 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문항 앞에선 잠시의 망설임도 없다. 나는 논쟁에서 이기는 것이 나에게 가져다줄 무언가보다 남을 상처 줌으로써 두배 많게는 몇 십배까지 무너질 나 자신을 떠올린다. 나는 내가 논쟁이라는 단어와 멀다고 느낀다. 그렇다면 남이랑은 가까울까.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논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남을 상처 주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에 의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동의함에 있어서도 가장 큰 동의를 표하는 커다란 초록색 동그라미를 클릭한다. 이로 인하여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랬다. 언제부터가 시작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가 나의 행동을 지각할 때부터 나는 그래 왔다. 논쟁을 피한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논쟁이나 어떠한 다툼, 싸움이 일어날 만한 곳에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 것이 나였다. 나의 세상엔 커다란 목소리가 어울리지 않았다. 나의 어떠한 의견을 표하기 위해 고군분투를 해본 적도 없었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흘러감에 있어서 가만히 둥둥 떠 있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모든 것을 신경 쓰면서, 그러면서 정작 나는 신경 쓰지 않으면서 나는 그렇게 삶을 보내고 있었다.
의견이 맞지 않아 생기는 다툼은 불타오르기 직전에 끝나곤 했다. 사과에 능숙하고, 미안하단 말을 숨 쉬듯이 하는 나로 인해서 모든 것은 끝을 맺었다. 빠른 사과는 나의 마음을 편하게 했다. 나는 미안함을 말하므로 인하여 나의 마음에 생길 상처를 미리 방어했다. 미안한 마음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나는 모든 것에 대해서 자주 미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과를 늦추고, 미안하다는 말을 꺼내지 못해 미간을 찌푸린 채로 여러 감정과 마음에 치여 발을 질질 끌며 살아갈 나에게 미안해서라도 빠른 사과는 삶에 있어 필수적인 부분이었다.
최근에도 미안할 일이 많았다. 나를 아는 주변의 사람들은 나더러 미안하다는 말 좀 그만하라고 한다. 나는 너무나 미안한 것이 많고, 그것을 꼭 입으로 뱉어야만 마음이 편해져서 그러는 것인데 듣는 사람들은 낯 뜨거워한다. 그런데, 그러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미안해야 한다. 미안하다는 것을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할 필요가 있고, 미안하다는 말을 진심으로 들어줄 필요가 있다. 나는 미안하다는 말이 어떠한 씨앗과도 같다고 느낀다. 무언가 다시 발화하는 과정에 있는 말.
미안하다는 말은 내가 뱉는 말 중에서 가장 무거운 것 같다.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면서, 남은 오후를 어찌하면 조금 덜 미안하게 보낼 수 있을까 고민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