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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한 Aug 08. 2022

사랑이 모든 것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다

김단한 <나이롱 시한부>

나는 사랑이 모든 것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다. 여자가 여자를, 남자가 남자를, 여자가 남자를, 남자가 여자를 일으킬 수 있다고 믿는다. 사랑은 사람에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식물이나 동물에게도 힘을 발휘할 수 있다. 하다못해 이름이 있는 모든 것들은 사랑의 구원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것은 엎어진 것을 일으켜 세울 수 있으며, 우는 것을 달랠 수 있으며, 떨고 있는 것을 끌어안을 힘이다.

(……)

사랑은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사랑에는 정답이 없다. 사랑은 사람을 도구로 하여 빚어진다. 안나에게서 배웠다. 모든 것을 사랑으로부터 배웠다

김단한 <나이롱 시한부> 中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을 나는 안나를 통해 알았다. 꽃에 파묻힌 안나는 예뻤다. 나에게 사랑을 가르쳐주고 간 안나. 


나는 나를 소개할 때, '사랑과 사람에 대해 지겹다 말하면서도 그것이 아니면 아무것도 쓸 수 없는 사람'이라 표현하곤 한다. 사실이다. 나는 사랑과 사람에 대해 지극히 대단한 믿음을 갖추고 있다. 사랑은 어떠한 종말이 찾아와도 결국 '구원'이라는 거창하디 거창한 이미지를 입을 수 있는 단어임이 분명하다. 단어가 가지고 있는 힘은 무지막지하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단 하나의 단어. 나는 이 단어를 맹렬히 사랑하고, 자주 내뱉으며 사랑을 사랑함을 표한다. 


안나는 다양한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곤 했다. 밥은 먹었냐는 물음으로, 만나게 되었을 때 손이나 등, 얼굴을 마구 쓰다듬는 행위로, 가끔은 잔소리로. 언제나 적응되지 않는 안나만의 방식도 분명히 있었다. 나는 모든 것이 사랑이었음을 이제와 천천히 깨닫곤 한다. 안나는 떠났지만, 안나가 남겨준 사랑의 불씨는 아직도 마음에 남아 숨 쉬고 있다. 안나와 나는 우리만이 아는 언어로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를 걱정하며, 무작정 사랑하며, 하루를 보내고, 또 하루를 보내곤 했다. 나는 안나가 만들어준 사랑의 막으로 한 겹 더 단단해질 수 있었다. 목적이 없는, 바라는 것이 없는 사랑을 받는 대상이 된다는 것은 무척이나 황홀한 일이다. 안나는 나를 황홀하게 만들어주기 충분한 사람이었다. 


이제 세상을 떠난 안나는 다른 세계에서 또 다른 사랑을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꿈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바쁘게. 바쁘게. 나는 아직 이곳에 남아 안나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그 부분이 조금 서글프다. 왜 꿈에 나오지 않는 거야. 작은 투정을 부려보기도 했지만, 그때뿐이다. 모든 것은 사랑이라는 이름 안에 다시 단단해진다. 나는 한층 더 굳건해진 사랑을 안고, 안나를 기린다. 니는 좀 더 단단해질 필요가 있다, 라던 안나의 말이 생생히 기억난다. 나를 겹겹이 안아 더 단단하게 만드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사랑'이다. 나는 많은 것을 사랑하며, 그 사랑이 다시금 순환할 수 있도록 나름의 최선을 다하며, 생을 살아내고 싶다.


한때는 무언가를 사랑하는 것에 무척이나 겁을 냈더랬다. 사랑을 함에 있어서 해내야 하는, 겪어야 하는, 거쳐야 하는, 견뎌야 하는, 헤쳐야 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고 생각했다. 버거웠고, 무거웠다. 이럴 거면 아예 사랑이라는 것을 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 싶을 정도로. 끝을 정해놓지 않은 사랑을 마음에 품었던 기억이 아직 생생히 남아있는 터라, 주고받지 못하는 사랑, 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사랑에 회의감을 느낀 적도 많았다. 콩 심은 데 콩이 나고, 팥 심은 곳에 팥이 나고, 사랑 심은 곳에 사랑이 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사랑 심은 곳에 미움이, 화가 자랄 땐 어찌할 줄 몰랐다. 덩달아 화를 내고 사랑을 부정했다.


사실, 무한한 사랑을 받아보았어도 나는 아직까지 어떤 사랑이 진정한 사랑인지, 어떻게 해야 사랑을 '잘'할 수 있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 그저 그때그때 느끼는 감정과 떠오르는 생각을 과감하게 표현하고 부딪힘으로써 사랑을 단단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뿐이다. 그거면 되겠지. 사랑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 아무튼, 나는. 여전히 '사랑이 모든 것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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