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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어른 흉내

새로운 것을 경계하지 않고, 익숙해지는 과정 겪기

by 김단한

가보지 않은 길은 기어코 가지 않는 이상한 고집이 있었다. 내가 가고 있던 길보다 내가 가보지 않은 길이 목적지에 훨씬 더 빨리 도착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알고 난 이후에도, 나는 굳이 내가 가고 있던 길을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길을 잃을까 봐 두려운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새로운 상황을 접하고 그로 인해 생겨나게 되는 여러 변수를 감당할 용기가 나지 않아서 그랬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상하게도 작년 하반기에는 더욱 고집이 세졌다. '원래'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으면서, 오히려 내가 더 그 말을 많이 하고 다녔다. 나 원래 이 음식 잘 안 먹어, 나 원래 편식해, 나 원래 듣던 노래만 들어, 나 원래 영화 잘 안 봐 봤던 것만 봐……. 말에는 힘이 있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원래 그런 사람으로 남았고, 듣던 노래만 듣고, 봤던 영화만 보며, 그러나 이젠 그마저도 하지 않으며 점점 취향도 없고, 재미도 없고, 취미도 없는 사람이 되고야 말았다.


새로운 것을 많이 접해보고 싶다는 욕망과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은 두려움 사이에 나는 한참이나 끼어 방황했더랬다. 그러다가 내린 결론은, 어느 방향으로 보아도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이루는 새로운 여정은 나에게 나쁜 것을 가져다주지 않을 거라는 것이었다. 나는 매번 새해가 시작할 때마다 새해 목표를 세웠다. 이룬 것도 있었고, 근처에도 가지 못한 것도 있었다. 머쓱해하면서 내가 이렇게 거창한 목표를 세웠었나? 중얼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건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내가 시도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예 내 인생에서 그것은 실현될 가능성조차 부여받지 못했을 뿐이었다.


목표는 거창하게 잡는 것이 좋다는 말을 주워듣곤, 매번 목표를 거창하게 세웠다. 거창하게 세운 목표를 이번에는 꼭 이루겠다는 다짐을 하며, 조금 무리하게 움직여보기로 했다.


길었던 1월 말 설날 연휴에 나는 운전면허를 가져보기로 결심했고, 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 4일간의 빠듯한 시간분배를 통해 마침내 그것을 이뤘다. 장내기능시험부터 필기시험, 그리고 도로주행까지 엄청나게 힘들었다. 도로주행 연수를 여섯 시간 받았어야 했는데, 시간이 촉박해서 어두운 밤에 연수했다. 그리고 시험을 치는 날엔 비가 엄청 내렸고, 완전히 긴장한 상태로 도로를 달렸다. 시험이라는 것을 정말 오랜만에 치러봤기에, 모든 것이 끝나고 난 다음에는 집으로 돌아와 기절하듯 잠들었다. 꿈은 달콤했고, 나는 주말이 지나고 내 사진과 내 이름과 내 주민번호가 적힌 운전면허증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나는 상상을 아주 구체적으로 하곤 하는데, 예를 들면 이렇다. 그저 단순하게 '운전면허를 딴 후, 혼자서 운전하는 나'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운전면허를 딴 후, 혼자서 운전하며 좋아하는 노래를 듣기도 하고 따라 부르기도 하고, 바깥의 풍경을 아주 잠깐 보다가 혼자 운전하는 나를 대견해하는 나, 이때 아주 잘 컸다고 육성으로 말해도 좋음'이라는 식으로 상상한다. 요즘엔 아주 멀게만 느껴졌던 그 행위를 직접 해내고 있다. 혼자 운전하고 다니고, 스스로 대견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예전엔 엄두도 못했던 나 홀로 여행을 계획하기도 한다.


운전면허 하나 땄을 뿐인데, 머릿속의 지도가 훨씬 선명해진 기분이다. 갈 수 있는 곳이 많아졌고, 또 시야도 그만큼 넓어졌다. 걸어 다닐 땐 몰랐는데, 운전해 보니 도로가 정말 살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더 조심히, 더 잘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직 모든 것이 서툰 '초보'라는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굴러갈 예정이다.


이렇게 되니, 무언가에 도전하고 새로운 것을 내 삶의 방식에 적용시키고 조금은 어색해하는 것이 즐겁게 느껴졌다. 과정은 힘들지언정, 무언가 하고 나니 나에게 남는 것이 많다. 그렇다고 자격증 마니아가 되겠다는 뜻은 아니고……. 나는 요즘 나를 조금 갱신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하지는 못하더라도, 가끔 새로운 것을 반영시킬 필요가 있겠다고 느꼈다. 듣던 노래만 듣다 보니, 새로운 가사나 멜로디를 접해보지 못했다. 영화도 요즘 어떤 이야기를 담았는지 알 수 없다. 주목받는 배우가 누구인지도 모르겠고, 가장 잘 나가는 아이돌이 누군지도 모르겠다.


유행에 무조건 민감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아는 건 나쁘지 않다고 느낀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새로운 것을 더 많이 접해보기 위해 노력하려 한다. 우선,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나열해 봤다. 나는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고, 밴드 음악을 좋아한다. 처음 듣는 노래를 선정할 때 중요하게 보는 것은 가사이며, 책을 고를 때는 표지가 눈에 들어오거나 제목이 와닿는 것을 고를 때가 많다. 조용하고 사람이 없는 곳을 좋아하며, 약속을 그리 많이 잡지 않고, 내일 중요한 일정이 있는 날엔 그 전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것을 택한다. 좋아하는 영화는 한정적이다. 인턴, 리틀포레스트, 로맨틱 홀리데이, 타이타닉, 어바웃타임, 코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 런던프라이드. 이 외엔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봤던 영화를 또 보는 것을 좋아하고, 딱히 장르를 가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굳이 고르자면, 로맨틱 코미디나 판타지, 혹은 사람들의 연대나 목표가 같은 이들이 모여 그 목표를 이루는 영화를 좋아한다.


나라는 사람의 취향은 우습게도 6~7 문장에 전부 쓰인다. 어쩌면, 나는 나를 잘 모를 수도 있다. 또 어쩌면, 나는 정말 단순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나는 조금 더 풍성한 문장을 추가해서 나를 채우고 싶다. 억지로 돈을 들여 취미를 만들거나, 시간이 없는데 쥐어짜 내어서 나를 혹사시키면서까지 그러고 싶지는 않고, 내가 심히 즐거워하면서, 재미있어하면서, 충만함을 느끼는 선에서 그러고 싶다. 안 하던 행동을 하면서 나를 깨우고 싶달까?


매일 누워있을 수 있을 정도로 몸을 움직이기 싫어하지만, 이번엔 반대로 몸을 움직여보고 싶다. 헬스장이나 다른 운동을 배우러 가고 싶지는 않으니 노래를 들으며 산책하거나 아예 댄스학원에 가서 몸을 격렬하게 흔들고 싶단 생각을 한다. 재미있지 않을까? 조용한 곳을 좋아하지만, 반대로 소리로 가득 찬 공연장에 가보고 싶다. 내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싶고, 언젠가 사놓고 여태 방치한 우쿨렐레를 연주하며 살면서 연주할 수 있는 악기를 하나 만들고 싶다.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계획을 세우는 것만으로도 약간 즐겁고 붕 뜨는 기분이다. 안 하던 행동을 하면서 생기는 부작용이야 당연히 있겠지만, 어찌 되었건 재미는 보장되어 있을 테니 한번 뛰어들어봐도 좋을 것이다. 살면서 전혀 느껴보지 못한 세세한 감정과 기분을 요즘 조금씩 느껴가고 있다.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아예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는 것만큼 바보 같은 일은 없으므로 걱정하지 않기로 한다. 생각만 하다가는 몸이 굳어버릴 수 있으므로.


익숙해지는 것에는 여러모로 품이 들겠지만, 그것이 익숙해져서 내 삶의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게 된다면 무척 아름다울 것이다. 취미가 생긴 듯하다. 무언가를 이룸으로 인해 생기는 다양한 감정을 수집하는 것. 오늘부터 이것이 나의 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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