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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한 Mar 31. 2023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다 쓴 마음은 어디다 버려요?> 

종일 어떤 멜로디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을 때가 있다. 어떤 날은 만화 주제가였다가, 또 어떤 날은 동요다. 그러다 어떤 날은 가사가 없는 멜로디가 반복되는데, '내가 이걸 어디서 들었더라?' 기억을 더듬어 보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신발주머니를 빙빙 돌리며 집으로 뛰어가던 초등학생이 되어버리곤 마는 것이었다.


바이엘이나 체르니 같은 교재 앞에 엄마는 항상 아이들의 이름을 적어주곤 했다. 나는 그게 그렇게 부러웠다. 자기만의 책을 가진다는 것보다, 거기 나온 악보를 보고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다는 것보다, 나는 그냥 단순하게 그게 부러웠다. 우리 엄마가 예쁜 글씨로 아이들의 이름을 거기 적어준다는 것이. 


그래서 나도 그 책을 갖고 싶었다. 그냥 가질 수는 없었다. 피아노 교재를 가지려면, 피아노를 배울 의지가 있어야 했다. 엄마는 당시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이렇게 일주일에 세 번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쳤다. 화요일이나 목요일은 엄마가 쉬어야 했기 때문에 그날은 피아노를 배우기 어려웠다. 월, 수, 금에 끼자니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는 순간부터 해가 질 때까지 쉬지 않고 홀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엄마가 너무 버거울 것 같았다. 어찌어찌해서 잠시 피아노 앞에 앉은 적이 있다. 내가 그때 어디까지 뭘 배웠는진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다른 아이들처럼 피아노 앞에 앉아있고, 엄마가 옆에 서서 뭔가를 가르쳐준다는 것이 좋았다. 그런데…….


나는 피아노가 재미없었다. 어려웠다. 오른손과 왼손이 같이 움직이는데, 각각 다른 음을 짚어야 한다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마음만 조급했다. 빨리 다른 애들처럼 더 잘 치고 싶었다. 나는 항상 뭔가를 배우기 시작할 때, 첫 발걸음을 떼기 전부터 아주 오랜 뒤를 상상하는 버릇이 있었다. 아주 오랜 뒤에 나는 그 분야의 탑이다. 악보만 봐도 이게 어떤 음인지 알고, 건반에 손을 얹으면 미끄러지듯이 연주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게 도인지, 라인지, 솔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한 음을 오-------------------래 누르고 있다. 악보를 뚫------------어지게 본다. 그러다 시간이 다 가지. 나는 그때 생각한 듯하다. 그냥 피아노는, 나에게 피아노는, 그냥, 음이 예쁜 악기. 내가 그냥 듣기만 해야 할 악기.(엄마는 그래도 악기 하나는 배워야 한다며, 나를 바이올린 학원에 보냈고, 나는 그걸 곧잘 해냈다. 그건 재미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피아노를 배운다는 것에 목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냥 엄마한테 칭찬을 받고, 엄마한테 뭔가를 배우고 싶고, 그랬던 것 같다. 어디 가서, 엄마는 뭐 하시니? 물어보면 항상 자랑스럽게 '피아노 선생님이에요!' 했다. 그럼 돌아오는 답이자 질문은 항상 같았다. 이야, 그러면 너도 피아노 잘 치겠네? 그럼 나는 말했다. 아니요! 저는 학교종이 땡땡땡도 못 쳐요!


지금도 피아노는 그냥 보기만 한다. 아, 그건 칠 수 있다. 고양이 행진곡인가 쥐 행진곡인가 그거. 따라단 딴딴. 따라단 딴딴 하는 거. 그건 누가 가르쳐줬지… 아마 엄마가 가르쳐줬을 거다. 악보를 보지 않고 빈 피아노에 앉아 무언가를 연주하고 싶은 딸의 욕망(?)을 알았던 엄마가 가르쳐줬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요즘에도 피아노만 보면, 볼 일이 생기면 우아하게 앉아서 그 고양이 행진곡인가 쥐 행진곡을 경박스럽게 연주한다. 그때만큼은 또 초등학생으로 돌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다. 


오늘은 길을 걷다가 버려진 피아노를 보았다. 우리 집에는 검은색의 아주 멋진 피아노가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 그 피아노와는 작별 인사를 할 겨를이 없었던 듯하다. 나는 피아노 앞에 앉지 않는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쓴다. 엄마는 여전히 건반 앞에 앉아 악보를 본다. 엄마의 반주를 벗 삼아 부르는 성가나 노래는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준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집으로 걸어가던 복도가 유난히 그리울 때가 있다. 저 멀리서부터 들려오던 피아노 소리. 활짝 열려있던 대문. 집 앞이 바로 놀이터라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피아노 소리가 잘 버무려졌던 어떤 날. 나는 진도가 같은 수많은 아이들이 연주하는 똑같은 멜로디가 지겹지 않았다. 그저 그걸 따라 부르며 걸었다. 오늘은 유난히 그 노래가 자꾸 떠오른다. 지나가다가 본 버려진 건반이, 마치 그 음을 연주하는 듯이. 즐거운 집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


소리가 충분히 날 것 같은, 곧고 예뻤던 피아노

(골목에 버려진 쓰레기를 보며 쓴 다양한 에피소드가 담긴 <다 쓴 마음은 어디다 버려요>는 인터넷 서점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다 쓴 마음은 어디다 버려요? | 김단한 - 교보문고 (kyobo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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